태그 : 하늘
2009/06/21 [Singapore Sling] 해가 지지 않는 바다 [2]
2009/06/14 [일기] 20090614004419


# by | 2009/06/29 13:12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2)
2009.06.10
우아한 클래식 음악에 깨는 마지막 아침. 첫날 사두었던 탐포포 델리의 밀크티 푸딩을 윤희와 나눠먹었다. "잘 다녀와." 그리고 나도 미뤄두었던 알바 일을 조금. 미리 짐을 챙겨두고, 보물상자 같은 윤희의 하드에서 이것저것 복사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자아, 마지막 코스를 돌아보자.
오늘은 이전에 갔던 코스를 되짚어 필요한 물건을 사고, 어제 놓쳤던 공원에 가는 일정, 단 거기서 나의 취미인 "직통 시내버스 악착같이 타기" 옵션이 붙는다. 사실 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기본으로 20분은 날려먹는 것이 낯선 곳에서 버스 타기인데 어쩜 이게 그리 포기하기 어려운지. 어제 내렸던 정류장에서 열심히 노선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거나 지하철에서 환승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2층 버스가 멋지구리한 싱가폴 버스 시스템이건만 노선도 표시는 아주 엉망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전체 노선이 아닌 현 정류장에서부터의 노선 정류장명, 번호 그리고 요금 구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정류장명이 완전히 암호 같다. 거리 이름을 중요 지명으로 사용하는 나라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무슨 거리 몇 블록째라고 써놓으면 이걸 어찌 가늠해야 하는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해도 완전 격자무늬 거리에다가 번지수가 평행으로 일치하면서 m 단위까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알기 쉬운데. 여기는 지하철 역 이름으로 대표되는 정류장명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그나마 한두 군데 정류장에서는 지하철 노선도처럼 위치가 보이는 주요 버스 노선도가 있어서 얼추 추리해본다. 만. 도저히 모르겠어 ㅠㅠ
내가 가려는 곳은 Clarke Quay야, 너네 나라에서 나름 주요 지점 아니냐고! 몇 분째 서성이는 나를 보다못한 아저씨 한 분이 "어디 가는겨?"라며 친절히 도움을 건네신다. "아, 나 거기 가는 버스 알아, 186번이야"라는 말과 정류장이 있는 방향을 세 번씩 반복하며 가르쳐주시기에 "땡큐베리마치!"하며 활짝 웃어보인다. 5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헤매다가 마침 지나가는 186번을 보고 쫓아갔더니, 배차 간격이 10~21분이네 oTL 기다려서 실제 타고 간 거리는 5분이 과연 되었을까?;

2시가 넘어 힘겹게 도착한 Liang Court의 탐포포에서 돈코츠 국물의 흑돼지 샤브샤브 칠리 라멘을 먹는다. 오, 첫맛은 보통, 근데 한 숟갈 한 숟갈 먹어갈수록 더 땡기는 이 맛! 그러고보면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혼자 식사하는 거다. 사실 나한테 혼자 식사하기란 아주 자연스런 일인데. 지금까지 매끼 챙겨준 윤희에게 새삼 고마움을 ㅠㅠ
이곳과 또 직통버스 한 건으로 가는 Great World City에서 옷도 좀 구경하고, 봐두었던 음식도 사고, MEIDI-YA슈퍼와 키노쿠니야 서점도 들렀다. 이 동네는 완전 일본타운에 가깝네. 양손에 비닐봉투를 들고 이걸 집에다 놓고 와? 고민하다가 눈앞에 지나가는 버스가 시내로 가기에 얼른 올라탔는데, 엇, 이거 내가 가려는 공원에 가는 거잖아? 약간 인도계의 아저씨가 "이거 오챠드 로드 가요 ^ㅁ^"하면서 나를 반겼는데 "혹시 East Coast Park도 가남요?"하고 되물었더니 "엉 물론이지. 도착하면 알려줄게용"하며 상냥하게 웃어주는 기사님. 아아 정말 친절한 미소는 여행의 활력소야. 화려번쩍한 백화점 거리 Orchard Road를 뚫고 해변으로 달리는 버스, 그리고 바깥 풍경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어느덧 꾸벅꾸벅 조는 나.

한 40분 지났을까? 눈을 들어 보니 기사님이 손을 흔들어 나를 부른다. "공원 가는 방법 알아요?" "아뇨 모르는데" "내리면 파란 간판이 있어요. 그걸 따라 가면 지하도가 있거든. 그리로 내려가면 공원이 나와요" 하고 운전하면서도 친절히 가르쳐주시는 기사님! 다시 한 번 땡큐베리마치! 그렇게 도착한 East Coast Park는 누가 올린 해변 사진을 보고 한 번 가야지, 하고 생각한 곳인데, 올루는 해산물 먹으러밖에 안 가봤다고 했다. 사실 고즈넉한 해변을 기대했던 나, 가보니 벅쩍한 공원에 가깝다. 모래사장은 특이한 해안작용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여 좁다랗고 조심하라는 빨간 줄이 쳐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오래되고 높다란 나무가 나름 울창하게 줄지어 있어 대부분 자전거를 빌려타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긴다. 또 몇십 개의 바베큐 시설이 설치되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고기를 싸들고 나와 숯불에 구워먹는 모습이 그야말로 연기 나는 진풍경! 바다 너머에는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만 늘어서 있어 그다지 감수성 넘치는 풍경은 아니었건만, 그럼에도 바삭한 느낌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짭짤한 산들바람이 바닷가에 왔다는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바다에 가자!"라고 작정하고 도시를 탈출해서가 아니라, 그냥 장 보고 와서 살살 거닐다 가는 그런 느낌의 바다가, 조금 부러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연안 공원을 양손에 비닐봉다리 낀 채로 걸으며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시침 뚝 떼고 슈퍼샘플러를 들이댔다. 사실 야경 대신 멋진 노을을 보려던 내 작정은 완전히 실패였다. 여긴 이스트 코스트 파크잖아!! =ㅅ=;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져서야 나타난 수산센터 앞에서 대체 어떻게 하면 도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던 차에 윤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 "오늘 밤은 역시 Esplanade에서 No Signboard?" 약속을 확인하고 룰루랄라. 이곳은 외진 곳이라 대중교통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다른 곳의 셔틀버스를 얻어타야 하는데, 수줍게 공짜냐고 묻자 "오케이, 노 프라블람."하며 싱끗 웃어주는 기사 총각. 내려서 뭘 타야하는지 친절히 가르쳐주었건만 나는 내려서 어제의 그 버스를 발견하고 다시 잡아 탔다. 오늘밤은 불안해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데서 정확히 내릴 수 있어!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거를 다시 먹자-라는 취지 하에 고른 No Signboard. 물론 칠리크랩을 다시 먹지는 못하고 황홀하게 맛있었던 볶음밥만 간단한 요리와 함께 시켰다. 점심 때는 너무나 바빠서 빵을 사다먹었다는 윤희는 이내 숟갈을 내려놓았지만, 조용히 꾸준하게 마지막 밥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는 나. 어때, 뿌듯하지?


# by | 2009/06/21 20:34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06/14 00:54 | I a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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