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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 가장 이기적으로 기부를 하는 방법

기업의 사회환원은 중요한 이슈가 된다. 어떤 회사들은 매출이익에 비해 너무 적은 환원을 해서 욕을 먹고, 어떤 회사들은 머리 좋게 그런 환원 활동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거기에 왈가왈부하는 개인은 얼마나 기부를 하고 있을까.
나는 생겨먹은 게 못 돼서, 기부활동이든 환경보호활동이든 순수하게 좋은 마음으로 못하고 비틀어진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해야만 움직인다. 이를 테면, "기부도 전혀 안 하고 살면 찔리니까 마음 불편해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식이다. (환경문제라면, "난 더운 게 딱 질색인데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큰일이니까 자원절약하고 산다"는 식?) 그러나 타성에 젖은 일상에서 기부를 한다거나 봉사를 하는 건 정지마찰력을 없애기가 쉽지 않다. 때 맞추고 장소 맞춰 해야할 때가 있고, 막상 하루 밥 한 끼 먹을 때도 손이 떨리는데 기부를 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게 힘 들이지 않고 돈 들이지 않고 돈이 쓰이는 방법을 골라서 할 수 있는 기부가 있다. 네이X 해피빈이다. 여러 이벤트가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메일을 쓰면 한 통에 하나씩, 한 달에 10개까지 콩이 쌓인다. 콩 하나에 100원이니까 1000원이 되는 셈이다. 기부하기를 누르면 장애우, 재난 피해, 아동, 노인, 환경 등 원하는 곳에 보탤 수 있다. 모금함이 완료되면 모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다는 내역서가 100원 단위까지 날라와서, 잊고 있더라도 찾아와 알려주는 셈이다.
혹시 네이X 메일을 계속 사용했다면 마일리지를 가지고 콩으로 바꿀 수 있다. 올해로 소멸되는 마일리지 5000포인트로 콩 10개를 바꿨더니, 그간 놔뒀던 콩이 54개나 되어서 한 곳에 보냈다. 마침 50개 이상 후원자에게 장애우들이 직업재활훈련으로 만든 천연비누를 보내준다는 쪽지가 날라와서 블로그를 구경하고 난 뒤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답장을 했다.
씀풍씀풍 큰 돈을 내어놓지 않고 사용자들의 관심도에 비례해 주머니를 열겠다는 네이X을 욕할 수도 있지만, 직원이 모은 만큼의 금액을 회사에서 똑같이 더해 기부하는 문화는 낯설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돈 100원보다 중요한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게 하는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뿌듯함을 느끼면서 이기적으로 기부하는 방법, 평소 네이X을 싫어하는 분이시라면 그들의 자산을 100원이라도 소비해줄 수 있는 방법(풉)이다.

by kisa | 2009/07/23 12:43 | I reckon | 트랙백 | 덧글(4)

[이런생각] 내가 원하는 회사

내게 이상적인 회사는,
첫 번째, 사람들이 좋고 즐겁게 일할 수 있고, 개인 시간이 존중되는 곳,
두 번째, 인사 제도가 일관성 있고 체계화되어 있거나 그렇게 되어가려고 하는 곳,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다 갖춰지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꼭 기업에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고
상황이 정말 좋지 않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여기까지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라는 것과
'내가 진심으로 꿈꾸고 원하는 건 이런 거다'라는 모습은 분명 존재한다.

한 곳의 추천 연락을 받고 검색해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내 이상형에 들어맞을 수가?

내가 기업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감은 있지만 조목조목 따져본 적이 없어
잠시 스스로를 위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비공개로 썼다가 그냥 돌리면서 윗부분을 고쳐쓴다. 아래는 일단 두서없이 적어내려간 내용이니까 읽다가 짜증나실 수도. 
진짜 저 회사에 취직하고 싶으면 제대로 정리해서 자소서를 작성하게 될지도?)


이어지는 내용

by kisa | 2009/05/17 23:20 | I reckon | 트랙백 | 덧글(4)

[단상] 관문 통과

그냥 예의 차리고 말 사람이면 적당히 사실을 비춘 부분을 찾아 고개를 끄덕거리면 되고
오래도록 대화를 나눠온 사람이면 바탕을 알기 때문에 삐죽삐죽 덜 다듬어진 의견까지도 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처음의 벽을 지나 친해지려고 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고 일반적인 걸 넘어선 나의 시각과 고민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지금껏 적당히 맞장구 치거나 은근슬쩍 피해가던 화제에 대해서
일반성에서 더 나아간 일면의 고민이나 나의 시각을 내세우게 되고,
그 첫 시도들은 상당히 대담하고 과감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평소의 화제에 대해서 자꾸 반대되는 일면만 강조하거나 갑자기 싫어하는 것이 많아진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그걸 눈치 챈 순간 나는 다시 유한 대화의 흐름을 위해 말을 삼킬 것인가
아니면 관계의 진전을 위해 이 까끌거리는 시간을 감내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만나는 횟수가 간신히 1년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어버린 친구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사상의 주제도 경향도 심지어는 개념과 정의조차 다른 영역을 지니게 되어
대화의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때.
서로 같은 걸 얘기하면서도 자꾸 다른 부분을 강조하며 '너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냐'는 듯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뭔가 기분이 상할 때쯤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말지 입을 다물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느 쪽도 씁쓸함을 삼켜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내 의견은 이거야 하고 간단명료대담하게 내세우는 게 좋은 일일까.
거짓말은 하지 않을지언정, 사실인 부분만 추려서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약한 의견을 밀어붙이는 게 효과가 있더라도
언제나 전제를 깔고 방어를 잊지 않으며 중립적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할까.


-마주앉은 친구와 몇 분씩이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 없이 앉아 있은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상형에 대한 진술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애매모호하다'는 타박보다는 '그런 기적을 믿냐'는 순수한 질의를 받아야 하는 사안인지 모른다.

by kisa | 2009/03/09 00:32 | I am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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