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의 차리고 말 사람이면 적당히 사실을 비춘 부분을 찾아 고개를 끄덕거리면 되고
오래도록 대화를 나눠온 사람이면 바탕을 알기 때문에 삐죽삐죽 덜 다듬어진 의견까지도 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처음의 벽을 지나 친해지려고 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고 일반적인 걸 넘어선 나의 시각과 고민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지금껏 적당히 맞장구 치거나 은근슬쩍 피해가던 화제에 대해서
일반성에서 더 나아간 일면의 고민이나 나의 시각을 내세우게 되고,
그 첫 시도들은 상당히 대담하고 과감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평소의 화제에 대해서 자꾸 반대되는 일면만 강조하거나 갑자기 싫어하는 것이 많아진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그걸 눈치 챈 순간 나는 다시 유한 대화의 흐름을 위해 말을 삼킬 것인가
아니면 관계의 진전을 위해 이 까끌거리는 시간을 감내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만나는 횟수가 간신히 1년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어버린 친구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사상의 주제도 경향도 심지어는 개념과 정의조차 다른 영역을 지니게 되어
대화의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때.
서로 같은 걸 얘기하면서도 자꾸 다른 부분을 강조하며 '너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냐'는 듯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뭔가 기분이 상할 때쯤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말지 입을 다물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느 쪽도 씁쓸함을 삼켜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내 의견은 이거야 하고 간단명료대담하게 내세우는 게 좋은 일일까.
거짓말은 하지 않을지언정, 사실인 부분만 추려서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약한 의견을 밀어붙이는 게 효과가 있더라도
언제나 전제를 깔고 방어를 잊지 않으며 중립적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할까.
-마주앉은 친구와 몇 분씩이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 없이 앉아 있은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상형에 대한 진술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애매모호하다'는 타박보다는 '그런 기적을 믿냐'는 순수한 질의를 받아야 하는 사안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