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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기분] 양자택일의 불공정성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선택"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곤 한다. 가장 흔한 게 "오늘 점심 뭐 먹을까?"가 아닐까? 나는 나름 여럿이 있을 때 "선택"이라는 "결정"을 잘 내리는 편이고, 그건 다년 간의 노하우로 "선택의 프로세스"라는 걸 정립하고 습관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셋이서 밥을 먹으러 갈 경우 아채 하나 닭고기 하나 해물 하나, 그것도 밀가루 하나 쌀 하나가 섞이고 소스는 토마토 하나 크림 하나 혹은 매운 거 하나 순한 거 하나가 섞이도록 한다든가. 보편적으로는 진단 가능한 장단점과 도입 가능한 대안을 펼쳐놓고 무의식 중에 점수를 매겨 가장 효율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 혹은 행복을 가져다줄 선택을 하고는 기쁨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진짜 못 정해서" 고민하는 일이 많이 줄긴 했건만, 아직도 고민하는 경우가 몇 종류 있다. 1번, 썩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대안이 없고 덩달아 의욕이 저하되어 있을 때, 2번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중한 고민일 때, 3번,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이런 때는 선택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명확히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이 대부분이다. 1번은 백수 생활에 종종 경험하곤 했다. 집에 있기는 싫은데 멀리 나가기는 귀찮고 노트북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분위기도 좋으면 좋겠고 비싸지는 않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늘 이도저도 아닌 곳만 떠올라 선택 프로세스를 무한 반복하며 바보같이 굴다가 김이 푸쉬쉬 빠져버리는 경우. 2번은 사실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데드라인이 다가온다면 어떻게든 선택해버릴 수는 있을 텐데, 보통 이럴 때는 내 의사만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외부 여건이 받쳐주고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그런 상황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사를 할 수 있는가, 취직을 할 수 있는가가 그런 문제가 되겠지.
3번은 극히 사소한 경우와 극히 난해한 경우로 구분된다. 이를 테면, 아주 어릴 때 오늘은 치마를 입을까 바지를 입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든가 하는 예를 들 수 있겠다. 아니다, 그런 걸 고민하는 나는 너무 안 어울리는 걸. 쵸코우유를 먹을까 딸기우유를 먹을까로 바꿔생각해보자. 진짜 이렇다할 특장점도 없고, 선택으로 인해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그런데 도저히 못 고르겠는 거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사용할 노하우를 터득했다. 가정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쵸코우유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쳐보자! 그럼 내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쁜가? 아니면 여전히 찜찜하고 아쉬움이 남는가?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쵸코였는지 딸기였는지 알게 되는 거다. 이건 에라 모르겠다 싶어 "어.느.것.을.고.를.까.요.알.아.맞.혀.보.십.시.오"를 해놓고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딩.동.댕."을 붙이게 된다는 경험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나온 거였다. 그러려면 왜 애초에 더 좋은 게 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냥 그걸 고르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진짜 모르겠는걸. 진지하게 그 상황을 가정하고 자신을 위치시키지 않는 한,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는걸. 그래서 결국, "모르겠다"며 "아무거나"라고 얘기해버리지만,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무언가 하나를 더 갈망하는 게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물이라는 말이다.

난해하고 추상적인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에는 머릿속에서 가정만 반복해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럴 경우에는 "상실"이라는 방법이 있다. 쉽게 말하면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좋은 줄 몰랐다가, 사라지고 나면 그제서야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진정한 자기 마음을 알게 되는 방법. 자기 마음만 뚜렷하게 알 수 있다면 그 다음의 선택과 행동은 쉽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이미 손 쓸 타이밍을 놓치기도 쉬운 것이다.

인간은 참 불완전하고 복잡한 생물이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많은 행동을 하면서도, 어떨 때는 자기가 수용 가능한 개념과 관계의 틀에 상황을 일치시키고 난 후에야 그에 걸맞는 패턴의 행동을 진행시켜나가기도 한다. 왜 그렇게 순수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힘들까? 외부는 물론 자기 마음조차도 사고의 틀에 묶어 자유롭지 못하게 다루는 것일까? 양자택일의 문제는 애초부터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by kisa | 2009/08/26 18:19 | I reckon | 트랙백 | 덧글(6)

[단상] 세상 가득히

세상의 하고많은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에 문자 메시지를 매우 좋아한다.
문자통신학이라든가 SMS언어분석 같은 제목으로 논고를 쓰고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내게 온 문자들은 두고두고 남겨두는 편이다.

하지만 핸폰 사양이 그다지 좋지 않은 까닭에 문자함이 가득차면 자꾸 메인에 보기 싫은 메시지가 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몰아서 한 번씩 문자함을 싹 정리해준다.
기억에 남는 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언들, 여러 번 읽어도 피식-하고 즐거운 웃음이 나오는 것들은 놔둔다.
반대로 지우는 것들은 이제 웃음이나 감동의 효력이 떨어지는 것들,
그리고 잊지 말고 연락하자고 남겨놓았던 메모와 같은 것들 중에서 이미 연락을 한 것들이다.

오늘 오전에도 맘 잡고 몇 군데 연락을 했다.
그 중 한 분은 이미 다른 회사로 이직하신 선배인데, 아아아주 가끔씩 스팸성 안부문자가 온다.
그냥 "선배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답문을 보내도 되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메신저에 로그인하는 것을 보고는 바로 말을 걸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참 친근한 감정을 지니고 있고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는데
도무지 교집합이라는 게 없어서 특별히 관계를 유지할 "꺼리"가 없을 때가 있다.
애초에 같은 공간에 존재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관계라면 그 공간을 벗어난 후로는 우연히라도 스칠 일이 없는 것이다.
잘 지내는지 궁금은 하고, 한 번 보면 좋긴 하겠는데, 만나서 나눌 화제거리가 거의 없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랑은 너무 자랑 같고, 불만은 너무 불만 같다.
딱히 사생활을 공유할 정도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데이트할 이야기도 적고, 이제와서 꺼내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날씨 얘기를 할 거야, 정치 얘기를 할 거야.
분위기를 띄우고 웃긴 얘기를 억지로 하는 단계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간단하게 취조를 한다.
어느 공간에 있나요?
특별한 변화는 없었어요?
저도 뭐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이것.


세상이 행복해지는 즐거운 일 없나요?
있으면 좀 나누어 주세요.
없으면 그런 일이 생기길 바랄게요.


'뭐 재미난 일 없냐'고 뜬금없이 연락하던 선배의 입버릇이 내 버전으로 바뀐 듯한데.
참으로 모두에게 행복하고 행복해서 입이 쩍 벌어지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숑숑 생겨나길 바란다.
그런 좋은 소식을 전해듣길 원한다.
그래서 축하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그런 기운을 입어 나도 또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세상 가득히 사랑을.


당신에게도 내게도, 환히 웃을 수 있는 그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때.

by kisa | 2009/05/28 23:58 | I am | 트랙백 | 덧글(8)

[도서] 악인 :: 악인은 누구인가를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사실 소설이란 것도 다분히 시대를 타는 물건이라 '새로움'과 '충격' 같은 건 같은 시퀀스에 서지 않으면 잘 알아채지 못한다. 고전이란 그런 것을 초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지칭하지만 어디까지나 탄생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악인>은 독특한 서사랄지 그런 거에 대해 딱히 감동 받은 부분은 없었고,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번역가상을 수여할 만큼 뛰어난 문장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갔다.

하지만 한 가지.

"그는 악인이었던 거죠? 그런 거죠?"

이 대사의 의미를, 뒤늦게 알겠다.
상대가 과연 진짜로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 뒤에 숨겨진,
자기가 피해자로 서고 싶은 마음.

여인은 스스로가 피해자라고 떠들다가 상대를 진짜 악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상대는 주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악인이 된다.

피해자는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를, 상황을 비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도 않고 반성을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거대한 악으로 몰아간다.
나쁜 날씨를 탓하고, PMS를 탓하고, 교통혼잡을 탓하고, 나쁜 타이밍을 탓하고.
사소한 문제에서건, 거대한 문제에서건,
겸허한 마음과 자기 반성이란 것은 현대인에게, 우리들에게 아득한 사상이 되어버렸다.

by kisa | 2009/05/27 00:10 | I lik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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