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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Sling] 해가 지지 않는 바다

2009.06.10

우아한 클래식 음악에 깨는 마지막 아침. 첫날 사두었던 탐포포 델리의 밀크티 푸딩을 윤희와 나눠먹었다. "잘 다녀와." 그리고 나도 미뤄두었던 알바 일을 조금. 미리 짐을 챙겨두고, 보물상자 같은 윤희의 하드에서 이것저것 복사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자아, 마지막 코스를 돌아보자.

오늘은 이전에 갔던 코스를 되짚어 필요한 물건을 사고, 어제 놓쳤던 공원에 가는 일정, 단 거기서 나의 취미인 "직통 시내버스 악착같이 타기" 옵션이 붙는다. 사실 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기본으로 20분은 날려먹는 것이 낯선 곳에서 버스 타기인데 어쩜 이게 그리 포기하기 어려운지.  어제 내렸던 정류장에서 열심히 노선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거나 지하철에서 환승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2층 버스가 멋지구리한 싱가폴 버스 시스템이건만 노선도 표시는 아주 엉망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전체 노선이 아닌 현 정류장에서부터의 노선 정류장명, 번호 그리고 요금 구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정류장명이 완전히 암호 같다. 거리 이름을 중요 지명으로 사용하는 나라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무슨 거리 몇 블록째라고 써놓으면 이걸 어찌 가늠해야 하는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해도 완전 격자무늬 거리에다가 번지수가 평행으로 일치하면서 m 단위까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알기 쉬운데. 여기는 지하철 역 이름으로 대표되는 정류장명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그나마 한두 군데 정류장에서는 지하철 노선도처럼 위치가 보이는 주요 버스 노선도가 있어서 얼추 추리해본다. 만. 도저히 모르겠어 ㅠㅠ
내가 가려는 곳은 Clarke Quay야, 너네 나라에서 나름 주요 지점 아니냐고! 몇 분째 서성이는 나를 보다못한 아저씨 한 분이 "어디 가는겨?"라며 친절히 도움을 건네신다. "아, 나 거기 가는 버스 알아, 186번이야"라는 말과 정류장이 있는 방향을 세 번씩 반복하며 가르쳐주시기에 "땡큐베리마치!"하며 활짝 웃어보인다. 5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헤매다가 마침 지나가는 186번을 보고 쫓아갔더니, 배차 간격이 10~21분이네 oTL 기다려서 실제 타고 간 거리는 5분이 과연 되었을까?;

2시가 넘어 힘겹게 도착한 Liang Court의 탐포포에서 돈코츠 국물의 흑돼지 샤브샤브 칠리 라멘을 먹는다. 오, 첫맛은 보통, 근데 한 숟갈 한 숟갈 먹어갈수록 더 땡기는 이 맛! 그러고보면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혼자 식사하는 거다. 사실 나한테 혼자 식사하기란 아주 자연스런 일인데. 지금까지 매끼 챙겨준 윤희에게 새삼 고마움을 ㅠㅠ 
이곳과 또 직통버스 한 건으로 가는 Great World City에서 옷도 좀 구경하고, 봐두었던 음식도 사고, MEIDI-YA슈퍼와 키노쿠니야 서점도 들렀다. 이 동네는 완전 일본타운에 가깝네. 양손에 비닐봉투를 들고 이걸 집에다 놓고 와? 고민하다가 눈앞에 지나가는 버스가 시내로 가기에 얼른 올라탔는데, 엇, 이거 내가 가려는 공원에 가는 거잖아? 약간 인도계의 아저씨가 "이거 오챠드 로드 가요 ^ㅁ^"하면서 나를 반겼는데 "혹시 East Coast Park도 가남요?"하고 되물었더니 "엉 물론이지. 도착하면 알려줄게용"하며 상냥하게 웃어주는 기사님. 아아 정말 친절한 미소는 여행의 활력소야. 화려번쩍한 백화점 거리 Orchard Road를 뚫고 해변으로 달리는 버스, 그리고 바깥 풍경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어느덧 꾸벅꾸벅 조는 나.

한 40분 지났을까? 눈을 들어 보니 기사님이 손을 흔들어 나를 부른다. "공원 가는 방법 알아요?" "아뇨 모르는데" "내리면 파란 간판이 있어요. 그걸 따라 가면 지하도가 있거든. 그리로 내려가면 공원이 나와요" 하고 운전하면서도 친절히 가르쳐주시는 기사님! 다시 한 번 땡큐베리마치! 그렇게 도착한 East Coast Park는 누가 올린 해변 사진을 보고 한 번 가야지, 하고 생각한 곳인데, 올루는 해산물 먹으러밖에 안 가봤다고 했다. 사실 고즈넉한 해변을 기대했던 나, 가보니 벅쩍한 공원에 가깝다. 모래사장은 특이한 해안작용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여 좁다랗고 조심하라는 빨간 줄이 쳐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오래되고 높다란 나무가 나름 울창하게 줄지어 있어 대부분 자전거를 빌려타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긴다. 또 몇십 개의 바베큐 시설이 설치되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고기를 싸들고 나와 숯불에 구워먹는 모습이 그야말로 연기 나는 진풍경! 바다 너머에는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만 늘어서 있어 그다지 감수성 넘치는 풍경은 아니었건만, 그럼에도 바삭한 느낌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짭짤한 산들바람이 바닷가에 왔다는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바다에 가자!"라고 작정하고 도시를 탈출해서가 아니라, 그냥 장 보고 와서 살살 거닐다 가는 그런 느낌의 바다가, 조금 부러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연안 공원을 양손에 비닐봉다리 낀 채로 걸으며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시침 뚝 떼고 슈퍼샘플러를 들이댔다. 사실 야경 대신 멋진 노을을 보려던 내 작정은 완전히 실패였다. 여긴 이스트 코스트 파크잖아!! =ㅅ=;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져서야 나타난 수산센터 앞에서 대체 어떻게 하면 도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던 차에 윤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 "오늘 밤은 역시 Esplanade에서 No Signboard?" 약속을 확인하고 룰루랄라. 이곳은 외진 곳이라 대중교통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다른 곳의 셔틀버스를 얻어타야 하는데, 수줍게 공짜냐고 묻자 "오케이, 노 프라블람."하며 싱끗 웃어주는 기사 총각. 내려서 뭘 타야하는지 친절히 가르쳐주었건만 나는 내려서 어제의 그 버스를 발견하고 다시 잡아 탔다. 오늘밤은 불안해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데서 정확히 내릴 수 있어!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거를 다시 먹자-라는 취지 하에 고른 No Signboard. 물론 칠리크랩을 다시 먹지는 못하고 황홀하게 맛있었던 볶음밥만 간단한 요리와 함께 시켰다. 점심 때는 너무나 바빠서 빵을 사다먹었다는 윤희는 이내 숟갈을 내려놓았지만, 조용히 꾸준하게 마지막 밥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는 나. 어때, 뿌듯하지?

마지막 싱가폴 달러를 털 장소로 커피가 맛있다는 SPINNELI를 찾아헤매었건만, 집앞의 가게는 무려 7시30분에 폐점하였고, 다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왜, 안 찾아질수록 욕구가 더 강해지는 거 있지 않나. 내가 이 더위에 땀을 흘리며 돌아다니는데 반드시 진한 아이스 카페모카 한 잔 쭉쭉 빨아먹어주고 말겠다는 집념이 불타오른다. 원래는 얼른 집에 들어가 샤워하고 파일도 마저 복사하고 시간 남으면 알바도 더 해두려고 했는데. 밤 9시에 무려 40분쯤을 헤매었던 것 같다. 그냥 tcc에 가? 아냐, 한 번 마신 곳에 다시 갈 순 없어! 그러다 발견한 SPINNELI의 간판! 하지만 이곳도 문이 닫혀 있었고 ㅠㅠ 결국 그 옆의 Tully's에 들어가 한 잔을 시켰다. 한국에 입점했다가 철수한 Tully's. 마셔봤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래도 이젠 마실 수 없는 곳이니까. 무척 다행하게도, 커피는 기대만큼 진하고 맛있었다. 그 잠깐 에어컨 바람에 나 자신의 집념을 날려주며 휴식. 그리고는 인사로 배웅하는 스텝에게 다가가 말한다. "To be honest, I'm totally lost. 지금 여기가 대체 어디니?" 지도를 보여주며 간신히 방향을 찾아 되돌아온 나. 그런 정신머리로 급하게 짐을 정리하고 공항에 도착해보니 기념품 대신 싹쓸이 해온 나의 순애보 초콜렛 Chrunchies를 전부 윤희네 냉장고에 두고 왔다. 윤희야, 우리 보름 뒤에 만나.


사실은 아까 그 바다를 바라보고 필사적으로 노을로 물든 하늘을 찾아걷다가, 바다내음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벤치에 앉아 편지를 썼다. 윤희에게. 나 솔직히 말할까? 말해버려도 될까? 나 사실은 부러웠다? 올루랑 너랑 셋이서 식사하면서.
걔가 의아해 했지. 어떻게 네 제일 친한 친구랑 또 다른 친구랑 서로 모르는 사이일 수가 있냐고. 우린 말했어, 한국 사람들은 그닥 친구를 섞지 않는다고. 무작위의 파티 같은 걸 여는 문화도 아니니까.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됐으니까 그런 담을 뚫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지. 물론 새로운 사람, 그것도 네가 이곳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를 소개받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좋았지만, 얼마 안 지나 질투하게 되더라. 나는 그렇게 노력해도 얻지 못한 것, 올루는 너의 옆자리에 그리도 쉽게 존재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영어로, 내가 평소 듣지 못했던 장난스런 말투로 이야기 나누는 동안, 나는 그런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어.

생각해보면 20년 간 주욱 그런 결핍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왜 우린 함께 일상을 지내지 못하는 걸까, 왜 항상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걸까. 그러면서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루지 못할 것을 이상으로 삼은 채, 부족한 것만을 탓해 온 것이 아닐까. 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만남을 갖고 짧은 문자를 주고 받는 그 순간 하나하나도 다 행복 그 자체로 쌓아올릴 수 있을 텐데.
너를 인생의 다른 스테이지로 올려보내는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참 어리다는 생각을 하며, 너를 보면 내가 항상 부끄럽고 그래서 더더욱 네가 좋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좁지만 아득한 싱가폴의 해안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또또 혼자 분위기 잡고 오버한다고? 맞아, 내가 늘 그렇잖아. 그래도 꾸밈 없는 감정을 실어 이야기한다. 이번 여행, 정말 좋았어. 너와 나란히 누워 잠들고, 또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 처음이냐 마지막이냐 이런 거 따지지 않고, 그 자체로 행복했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게 된 것 진심으로 축하해. 각자 어디에 있든, 늘 마음만은 함께. 사랑해 친구야.

by kisa | 2009/06/21 20:34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2)

[Singapore Sling] Design City Singapore

2009.06.09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날씨다.
간밤에 윤희가 틀어준 <소울메이트>를 보다가 3시가 다 되어 자리에 들었기에, 오늘은 윤희 출근하는 것만 간신히 눈떠 보내고 한참이나 미적거리다 일어났다. 서울에선 매일같이 지니고 다니던 USB를 놓고 오는 바람에 프로그램 하나 깔아보려고 발버둥치다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사진정리도 알바도 하나도 못한 채 나와버렸다. 뚜웅. 오늘도 점심엔 올루와 셋이서 베트남 국수를 먹고 헤어져 고민을 거듭한 동선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이렇게 하면 낭비하는 이동거리가 없을까? 더운 바깥과 시원한 실내가 번갈아가며 조화되어 있는가? 걷다가 알맞은 타이밍에 앉아 쉬고 먹을 만한 스팟이 있는가!

싱가폴에 온 이상 예의로 One Fullerton 앞의 Merlion Park에서 사진 한 장 박아주고. 다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얼떨결에 나도 한 장 받았다. 다리를 건너 Esplande로 가려는데 어찌나 해가 쨍쨍한지! 현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What Can I Do라든가 Hotel California를 따라 흥얼거리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오기 전 찾아본 정보로 딱 한 군데 가볼 곳을 메모해두었는데, 그건 바로 Esplanade 2층에 있다는 예술 도서관이었다. 워낙에 ART를 존중하는 도시라 사알짝 기대를 하고 간 그곳은......

자료실이네. 광화문에 있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자료실 정도의. 책과  CD과 DVD를 빌리고 들을 수 있는. 딱히 이렇다할 구조라든가 화사함은 없는. 이름도 그냥 평범한 library였고 소파와 테이블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듣고 하는 모습이라든가 견학 온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특별함은 없었다. 무용 관련 자료가 놓인 곳은 길다란 마루가 깔려 있다든가, 복도 중앙에 후원자로부터 받았던 92년도 애플 컴퓨터나 무대 소품 등을 전시해놓은 게 특이점이랄까. 사실 DVD 타이틀 중에선 지금껏 듣도보도 못한 작품들이 많아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 이완의 Little voice라든가 NIghtwatch는 없었어 - _ ㅜ 이곳에서 책을 구경하며 두어 시간 있어볼까 했던 기대가 확 식어, 잠시 모디아만 두드리다 가기로 했다. 이곳을 "예술도서관"이라고 칭한 이는 후쿠오카 도서관을 찾아가볼 필요가 있다규!

아직 배고프긴 이른 시간이지만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결국 들어갔다, 맥스 브레너 초콜렛 카페에 > _ < 여러 가지 메뉴가 다 탐이 났으나, 이럴 때는 가장 기본의 대표 메뉴를 먹는 것이 제일! ...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은 건 두 손으로 꼭 감싸쥐는 허그머그가 귀여웠지만 생각보단 묽었어. 그렇다해도 쇼콜라쇼는 초콜렛버튼을 녹여먹어야 하는 거라 귀찮았을지 몰라. 사실은 아까 도서관에서 맥 없이 쉬다왔는지라 굳이 여기 앉아서 시간을 또 보내는 게 조금 아까웠다. 배도 별로 고프지 않을 상태였고. 오전에 그렇게 고민고민해서 동선을 짰음에도 조금씩 어그러진다는 게 바보같이 신경이 쓰였고, 이 이후로도 뭘 해야할지 확신이 안 섰다. 게다가 아까부터 괜히 벨기에 와플이 먹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파는 호화로운 걸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훙, 이렇게 멋진 곳까지 와서 안 해도 될 고민으로 머리를 썩히다니! 그럼 안 돼! 하면서 카메라를 번쩍 들고 가게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지금 있는 곳에선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지, 안 그래?

오후 코스는 IKEA! 예전 이사 갈 때 침대 겸 소파를 구경하다가 처음 알게 된 곳. 심플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이 완전 내 스타일이야! >ㅁ< 원래는 Orchad Road에서 가까운 곳을 가려다가, 그래도 공항쪽이 더 넓고 볼 게 많다는 윤희의 조언에 따라 상당히 멀긴 하지만 그쪽까지 가기로 했다. 싱가폴에서는 완전히 시내 외곽으로 나가는 거지만, 실제 거리를 서울로 치자면 신촌 나가는 것보다 가까울 텐데 뭐 - _ -; 허나 Esplanade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으니, 실제 IKEA의 위치조차 몰랐기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고 같은 길 왔다갔다 하고 그 와중에 괜히 와플 대신 Coffee&Toast에서 카야 토스트 집어먹어주고(힛) 살 때는 별 생각 없이 포장한다고 해서 가는 길에 집어먹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여긴 싱가폴이 아닌가!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에서 뭐 먹고 마시고 껌 씹으면 벌금 내는 거 아냐? =ㅁ=;;; 순간 당황, 패닉. 어쩌지, 하다가 지하철 역 앞에 길다란 계단이 있다.  너무나 재밌게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들 벽쪽에 한 명씩 붙어 앉아 있는 게 아닌지. 나도 거기에 쏙 끼어들어 한 자리를 잡고, 살짝 가슴 졸여 하면서 두툼한 버터에 카야쨈 잔뜩인 토스트를 아구아구 먹었다. 
IKEA에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해서, 지하철을 10 정거장쯤 가고서 또 수소문 해서 버스를 5 정거장이나 가야했다. 도중에 잠도 살짝 보충하고, 버스 안에서는 싱가폴 외곽의 경치를 즐겼다. 도심과는 전혀 다르게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서도, 그 앞에는 또 엄청난 공터가 푸른 잔디를 뽐내며 펼쳐져 있어서, 이 나라의 도시계획은 어디까지인가를 궁금해하게 하였다. 보통은 땅이 남고 수요가 있다면 널럴하게 주택을 지을 텐데, 분명 언젠가를 위해 비축해둔 거겠지? 

드디어 IKEA! 윗층의 입구로부터 차근차근 동선을 따라오다보면 1층의 출구로 나가게 되어 있다. 도중에 지름길도 있긴 하지만, 절대 고민해서 왔다갔다 할 필요없이 루트를 즐기면 된다. 내가 제일 환호했던 것은 "나의 44평방미터 집!"이란 식의 주제로 원룸이나 부부, 가족의 방을 실제 모델을 두고 꾸며놓은 것이었는데, 그 작은 공간을 알차게 그리고 아늑하고 포근하고 아름답고 색다르게 꾸밀 수 있는 가구들이 들어찬 것을 보고 우와우와 탄성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소파에 앉아도 보고, 2층 침대에 올라서도 보고, 부엌의 수납장을 하나씩 열어보고! 눈 앞의 꿈에 그저 어쩔 줄 몰라하며 입은 반쯤 벌어진 채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웃겼다. 정말이지 내 집을 갖고 싶다고!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처음부터 훑으며, 열심히 메모하고 줄자로 재 가며 필요한 걸 하나씩 하나씩 장만해가는 맛에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오는 길에 $1짜리 핫도그를 또 먹었다. 평소에는 배를 곯려서 한 끼니라도 제대로 맛있게 먹는 타입인데 오늘은 자꾸 주섬주섬 뭘 줏어먹게 되네. 원래는 동쪽 끝까지 온 김에 East Coast Park까지 가서 일몰을 볼 예정이었는데 종일 조금씩 시간을 까먹은 탓에 너무 늦어버렸다. 대신 셔틀버스 안에서 창 너머 아름다운 노을을 한 모금. 그리고는 우연히 집앞 정류장이 적힌 노선을 발견해서 버스를 타고 룰루랄라 오다가, 30분이면 될 것 같다는 거리가 20분 동안 전철 두 정거장어치밖에 안 와서 마구 불안해 하고 말았다. 싱가폴 버스는 일단 타고 나면 내가 탄 게 몇 번 버스인지, 노선이 어떻게 되는지 지금 정류장이 어딘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시스템! 알고만 있다면 늦든 돌든 여유롭게 2층 버스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즐겼을 텐데. 안절부절 못하다가 간신히 오늘 지나쳤던 Esplanade 건너편의 다리를 지나자 겨우 숨이 놓인다. 윤희와 단둘이서 내 리퀘스트였던 싱가폴식 볶음국수와 싱가폴식 빙수인 아이스 카창를 먹고. 다시 Merlion Park를 지나 Raffles Quay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밤.

by kisa | 2009/06/21 09:55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0)

[Singapore Sling] Little India & Arab Street &

2009.06.08
간밤은 여름날 병폐 중의 하나인 '좀이 쑤셔 잠들지 못하는 밤'. 윤희의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확인하고 침대에서 나와 소파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네모난, 그리고 딱딱한 소파였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땐 상당히 개운했다.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깨긴 싫잖아"라며 윤희가 맞춰둔 알람에서 은은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사과 깎을까?" 윤희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전날 사둔 빨간 사과 하나 노란 사과 하나를 반씩 깎는다. "자기야 돈 많이 벌어와~" 인사를 하고 보낸 다음 커텐을 활짝 열고, 청소기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여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어제 추천받은 샹송 컴필레이션 CD를 틀어둔 채 알바를 조금. 금세 점심시간이다. 집 지키기 놀이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2시에 맞춰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려던 계획은 물거품으로, 흑흑.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관광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물론 직장인에게도) 장소건만, '같은 길을 두 번 걷지 않는다'는 여행자 수칙에 심취한 나는 또 한 번 자신의 방향감각을 과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실 과신도 아니다, 아예 방향감각이란 게 없으니 환각현상인가?) 완전 반대방향으로 몇 분 헤매이고서야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서 회사 앞으로 헐레벌떡. 이런, 싱가폴에선 햇빛에 바람 쐬며 길거리를 걷는 것보다 지하로 다니는 게 상쾌하다는 걸 깜빡했군....

오늘도 윤희와 올루(Olu)와 함께 예전부터 들어왔던 일식 정식집으로. 내가 늦는 바람에 1일 25세트 한정인 오늘의 점심메뉴는 다 팔려버렸지만, 그 대신 시킨 돈까스 정식도 고기에 기름이 잔뜩 낀 주제에 너무 부드럽고 육즙도 진해서 살짝 감동해버렸다. 하지만, 싱가폴 음식 물가 정말 비싸군요. 소득수준과 품질 차이를 고려해야 하긴 하겠지만, 직장인의 일일 점심값이 기본 1만원에서 2만원? 스타벅스 아이스 라떼 가격을 비교해봐도 1000원은 더 비싸다. 서울에서 합리적인 소비 기준으로 2배, 살짝 질러주는 수준으로 1.5배 물가 정도가 아닌가 싶다. 이 나라의 산업 구조와 현금 흐름의 어떤 모양인지 점점 궁금해지지만, 깊이 고민할 부지런함따위 내게 있을 리가 없지. 이제 점점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싸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줄어들고 있다. 서울 안에만 있어도 물가는 점점 오르기만 하는데. 언제나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이지, 반절 재택 알바 인생 ㅠㅠ

오늘의 코스는 리틀 인디아와 아랍 스트리트로 정했다. 윤희가 건네준 교통카드를 들고 MRT에 탄다. 리틀 인디아 하나 뒤쪽 역에 도착해 몇 번이나 출구 약도를 보고 내려도 좌우전후가 헷갈리는 나, 무슨 아트 인스티튜트를 찾다가 인도 옷을 잔뜩 파는 창고 매장을 구경하고 왔다. 흑, 인도옷은 내 로망의 집합체야 ㅠㅠ 특히 목 라인 하나만 봐도... 다양한 디자인 중에서 하나만을 고르거나 사이즈 그리고 재봉 상태를 점검하는 일련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수준에 이르른 나는 살 생각은 하나 없이 둘러보기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도를 40초마다 확인하면서 거리 구경. (대강의 진행방향만이라도 알면 정처없이 잘 헤매고 돌아다니지만, 완전히 다른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을 땐 지도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ㅠㅠ)
수많은 골목을 돌아다니면 좀 망해가는 듯한 곳, 관광객 상대인 곳, 생활 필수적인 곳, 배낭여행자용 거리, 좀 팬시한 거리가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물건 하나하나보다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하며 즐기는 나. 이곳은 형형색색보다는 냄새다. 코를 자극하는 각종 향료로 기억될 거리. 서양인들이 그토록 향신료를 찾아 인도를 그렸는지 알 것 같다. 뽈뽈거리며 헤매다 나타난 소박하기 그지없는 벼룩시장을 발견하고 신이 난다. 완전 푸르른 가로수에 감탄하고 눈이 마주친 청년과 빙그레 인사를 하고. 털레털레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에어컨 빵빵한 쇼핑몰 분수대에 걸터 앉아 사들고 다닌 특가 음료수를 마시고 여행기를 적고. 충전 완료!

아랍 스트리트의 입구에는 술탄 모스크가 있다. 뉘엿해지기 시작한 햇빛에 황금색이 두 배로 빛나는 돔. 터키에서는 특별히 눈치 채지 못했었는데 아주 넓게 발 씻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관광객 입장 시간이 따로 있어서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건물이 아주 훌륭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디나 마찬가지이듯 그 주변에는 작은 상점과 음식점들이 줄지어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좁은 폭으로 색색이 건물이 이어지고 발코니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또 에버랜드라고 비꼬아봄직하지만 그래도 그런 식민지풍의 건물과 야자수 가로수길 사이로 금색 모스크가 빛나는 것도 꽤나 훌륭한 풍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굳이 '아랍'이라고 한정지을 게 아니라 말레이나 자바나 여러 문화의 가지각색의 가게가 있기도 했고, 옆에는 1800년대 세워진 멋진 분수와 정원의 건물도 있고, 구경하는 맛은 좋았다. 아! 그리고 무지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 그리고 화려한 유리병을 가득 진열해놓은 아로마샵도 예뻤지.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쳐나와 큰길에 다다르자 Beach  Road와 Ophir Road가 만나는 지점이다. 나무! 저기 Nicoll Highway로 넘어가는 오르막에 나무 터널이 있다. 이쪽 가로수는 숫제 나무들이 등고선을 이루고 있질 않은가. 제자리에 서서 한 바퀴를 빙 돌면 정말이지 각양각색의 고층 빌딩이 둘러싸고 있다. 직육면체는 거의 없고 뭔가 깎고 비틀고 파서 외부에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내부에는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정말 부러워!

그중에서 한 빌딩이 아까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여의도에서 봤을 법한 그냥 좀 화려한 겉치장을 한 건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이거, 뭔가 위용이 남다른데? 게다가 바로 그 앞에 개발이 안 된 땅이 연두빛 잔디밭으로 남아 있어 빌딩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가 한눈에 들어오니 이거 보통이 아니다. 처음엔 '또 뭔가의 빌딩이겠지, 지도에 이름이 나와 있었으면 궁금하지도 않았을걸?' 싶었던 마음이 모락모락 '저게 대체 뭘까, 통째로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아니겠고 호텔이라기엔 간판을 뽐내지 않고 있는데.' 번져나가 결국 그 길다란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게 되었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장식이 보통이 아니야! 내부, 뭐 이렇게 토나오게 꽉 차게 화려한 게 다 있누!! 혀를 차며 사진 한 방 찍으려던 순간 경비원에게 제지당했다. 이건 대체 뭐하는 건물인가요? 오피스 빌딩이라우. 그럼 1층은 와인바고, 나머지는 다 사무실? 그렇다우. 우와. 이런 호화로운 사무실이 다 있나. 앞쪽 입구로 나가니 더 하다. 단테, 달리, 뉴튼, 쇼팽 등의 전신 조각상이 서 있질 않나. 한 가운데는 우아한 학이 비상한다! Parkview Square. 건너편에 전용 지하도까지 있어!

왠지 배가 아픈 마음에 학까지 찍어주려고 하는데 디카 전지가 나가버렸다. '체력 하난 질겨.'라며 통뼈 취급하여 밧데리를 챙겨오지 않은 게 실수다. 마침 저녁시간도 다 되었겠다 그냥 MRT를 타고 집으로 집으로. 오늘은 결국 카페 타임을 즐기지 못했네. 먹는 게 최우선인 여행이긴 하지만 굳이 땡기지 않을 때 무리하게 넣을 수는 없지. 다음 끼니를 위해 위를 달래놓자구!

그래서 다음 끼니는 뭐냐 하면 점심 때 작당해두었던 태국 음식점 > _ < 접선 장소인 사무실 앞으로 나가자 완벽한 타이밍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윤희와 올루와 함께 Singapore River를 건넜다. 음? 이 관광코스 한 가운데야? 옹? 저 화려한 건물이라고? 첫날 지나쳤던 Asian Civilisations Museum에 붙어 있는 저 호화로운 음식점이 맛나단 말이지? Indochine의 태국식 그린 커리, 그리고 캄보디아식 해산물 커리, 이제껏 먹어본 중 최고 ㅜ_ㅜb 역시 해산물 하나하나가 싱싱하고 맛나긴 하다, 이 나라는. 내가 지난 대화 중 어이 상실에 의해 기억 속에서 자체 소거한 내용이 있다는 걸 알고 벙찌는 체험을 하며, "새로 회사에 입사하는 사람이 여자친구가 있는 채 와선 안 되지!"라는 올루의 발언에 같이 고개를 끄덕거려주며(그날 점심 때 언급했던 대망의 190cm의 독일남자가 싱가폴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소소한 수다에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하고.

둘을 9시반이라는 시간에 사무실로 돌려보내고 나는 불빛이 반짝이는 강변을 좀 더 산책하기로 했다. 이대로 들어가긴 아쉬운 기분. 기껏해야 거기서 거기인 동네를 정처없이 걷다가 낮에 가로질렀던 카페 앞까지 이르렀다. 맨 첫 날 혼자 빌딩 2층에서 발견했던 tcc라는 커피샵은 알고보니 싱가폴 전역에 퍼져 있는 체인점이었는데, 체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인테리어 컨셉을 갖고 테이블도 소파도 전혀 달라 각 지점을 눈여겨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이곳은 특별히 gallery라는 부제가 붙어서 기간별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는데 이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인의 초상을 재해석한 강렬한 페인팅. 고민고민하다 "2층에도 자리가 있나요?"하고 혹시 강변이 보일까 싶어 올라가봤더니 푹신한 비즈쿠션의 좌식 컨셉이라 "꺄악!"하고 바로 털썩 주저 앉았다는 >ㅁ< 가방을 비우고 온 터라 앉아서 뭐하지? 싶었는데 한쪽 벽면에 미술 관련 사진책들이 한가득이어서 한두 권 골라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올리고 파묻혀 앉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 권은 세계의 Hotel에 대한 것이었는데, 공간 구성이나 객실별 컨셉은 물론 테이블과 의자의 디자인, 그리고 베개를 셋팅해 놓는 모양 하나하나까지 거의 질색에 가까운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고나. 저런 호텔을 죽기 전에 구경이라도 해보려면 돈은 많이 벌고 볼 일이여 ㅠㅠ

여기서도 오렌지향 Choco Tango 위에 얹는 건 "생크림으로 드릴까요, 아이스크림으로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별 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요"라고 대답했다가 영수증에 $1.40(약 1200원) 추가된 거 보고 살짝 거품을 물 뻔했다는. 300원짜리 치즈 한 장 500원짜리 샷 하나도 벌벌 떨며 멤버십 마일리지 차감하지 않으면 안 먹고 마는 우리네 한국인에게 이런 계산 방식은 참으로 옳지 않아! 하고 외쳐본다. 언제쯤 익숙해지려나.

by kisa | 2009/06/20 00:41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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