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더 비기닝
크리스 핀,에릭 바나,존조 / 제프리 에이브럼스
어떤영화: ◆★♣
내가 그 수많은 매력적인 사가, 세계관 중에서 <스타워즈>에 한번 뛰어들기로 선택한 건 그 유명세나 영화 안팎으로 수없이 패러디되는 "내가 네 애비다"같은 명대사 때문이 아니었다. 오로지, '영화 네 편만 보면 정통 줄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다'(당시는 2편 개봉 직전이었음)라는 게으른 본성에 철저히 따른 결과였다. <반지의 제왕>만 해도 엄청 길고 현학적인 소설을 몇 편이나 읽어내야 하고 마츠코토 레이지의 작품들도 <은하철도 999>를 제외한다 쳐도 극장판들만 구해보는 것도 꽤나 일이 될 것이다. 미국 코믹스 계열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오리지널 판본에 눈길을 얹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스타트렉>처럼 수십 편이 넘는 수십 년 전의 시리즈를 섭렵해야만 그 세계의 맛깔스러움이나 캐릭터의 소소한 설정, 관계의 긴장감을 알 수 있는 작품을 보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바가지 머리에 뾰족 귀라는 고전적인 아이콘이 늘 머리 한 켠에서 나를 유혹했으나, '빠지지 마, 빠지면 끝장이야'라는 소리 없는 경고가 다른 쪽에서 울려퍼지는 덕에(바람에?) 지금까지 외면에 성공해왔다.
그런 선상에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굳이 혼자라도 가서 보게 한 동력은 겨우 두 가지였다. "생각보다 꽤 재밌대"라는 단편적인 평 하나와, 최근 영화의 이미지 구현 능력이 꽤 믿을 만하게 상승한 데다가 내가 그런 화려한 액션을 꽤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기대가 없으니 딱히 실망할 일도 없고, 재미 있으면 건지는 거다. 아니, 어찌 보면, 빠져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설마 내가 70년대 미드를 뒤지게 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시류에 따라 '재미 있으면 지가 알아서 속편 낼 거야'라는 믿음이었을까. (분명 예전에는 속편 제작은 굉장히 모험적인 축에 속했고, 그랬기에 많은 팬들은 그 한 편에 매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드 다음 시즌 기다리는 것보다 더 마음 편하게 기대하지 않는가?)

서론이 길었지만(언제나 그렇듯이 미리니름을 지양하는 내 리뷰는 보게 된 연유가 중심이다) 영화는 꽤 재밌었다. 어떻게 재밌었냐면, 보는 내내 '아직도 한 30분밖에 안 지난 거 아니야? 지금 이렇게 신나면 대체 클라이막스는 무슨 씬이 나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 여기까지가 끝이고 이미 2시간이 지났다는 걸 확인하고 허탈해 할 만큼. (거의 <킬빌>보다가 "아직도 빌이 안 나왔어!"라고 외치며 어이 없어 했던 때와 비슷했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기에 설명해줘도 무리가 없다. 우선 고전의 고전처럼 주인공의 험난한 탄생과 어렸을 적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준 후 우연하게 접하게 되는 기회를 열거한 후(이는 국문학 전공 때 배우는 내용이다!) 숙적이라 생각했던 이와 친구가 되는 줄거리이다. 여기에 "복수"가 갈등의 기본을 깔고 "시간여행"이 살짝 비틀어주는 맛을 첨가하는데, 어떤 것도 예상 범위 밖에 있지는 않다. 설정에 익숙해지거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골머리 썩힐 필요가 없는데도 흥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꽤 공을 들여서 연마했다는 소리다. 깊은 복선이나 인상에 남는 아이템이 잘 배치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캐릭터, 대사와 장면의 연결만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 by | 2009/05/15 23:35 | I like | 트랙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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