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한동안 렛츠리뷰에 안 들어가다 간만에 눈에 띈 게 이 책이었다. 5년 전, 동유럽과 지중해로 떠났을 때 각국에 흩어져 있던 유물들. 특히 터키 서해안과 그리스에 걸친 많은 유적들에 대해, 나름 공부도 살짝 하고 떠나긴 했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렇게 큰 걸 만들다니 대단해!"라는 것만으로 감동의 요소가 채워지진 않더라. 아르테미스 신전이란 것도, "어째서 불가사의지?" 싶고.
그래서 여행을 앞두고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 등에 대해 좀 알고 싶었다. 아스텍의 역사는 알바 때문에 징하게 봐서 테토치티틀란과 케아스뭐시기코틀 뭐 이런 이름들로 대강의 흐름은 알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콕콕 박히진 않은 느낌. 전문 서적을 들이팔 용기는 없고, 문외한에게 상냥한 책이면 좋겠는데.
http://valley.egloos.com/review/item.php?id=10308&opt=html 요길 보니 딱 맞는 거라. 다루고 있는 소재도 다 관심이 가고. 게다가 표지의 사진이, 왠지 터키에서 내가 걸었던 그 오래된 도시 같아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책은 가볍다. 종이질은 안 좋다. 글씨 크기는 그냥 저냥. 앞에 사진 화보가 여러 장이 되는데, 중간에는 챕터 시작 외에는 그림이 없다.
뭐 좋다. 난 쓸데없이 무겁고 번쩍거리는 종이는 싫으니까. 근데 사진은 좀 많이 아쉽다.
여러 가지 소재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따라 순장이 되었던 어떤 궁녀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늦어서 몸치장을 하다 말고 달려나와 아직도 한 손에 리본을 감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대의 어떤 장면을 포착해서 그걸 현재의 발견물과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하고, 평범하게 발굴의 역사를 늘어놓기도 한다. 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낭떠러지 아래의 호수로 던져졌던 사람, 유물들이 발굴되는 과정, 그리고 그 옛날, 50달러 75달러(물론 가치가 달랐겠지만)에 유적을 통째로 사서 발굴했던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말 맛배기라는 것이다. 조금 더 차근차근, 흐름 속에서 사건을 짚어주거나, 배경과 발굴의 의의를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아주 단편적으로, TV에서 가끔 나오는 5분짜리 영상처럼, 잠깐 흥미만 동하게 하고는 끝나는 느낌이 있다. 처음에 서문은 문장을 너무 기교가 심하게 써놔서 도통 읽을 수가 없이 복잡하기에 의욕을 꺾더니만, 뒷부분은 맥이 풀린다. 가끔씩 출토물과 유적의 생김새를 반 페이지에 걸쳐서 나열하고 있으면 졸린다. 그림 한 장을 넣어주면 좋았을걸. 번역자의 약력이 너무나 대단하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원문을 잘 옮겼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오타도 몇 개 발견하구!)
그래도 소개글에서 강조한 부분은 다 맞는 말이었고, 그래서 기대 이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그 이상을 조금 원했는데 보답을 못 받은 것뿐이지. 이런 식으로 어떤 분야에 대해 개론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일반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은 더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한다. (괜히 유명한 학자들이 쓰는 건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다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들이라도. 역시 무언가를 잘 알고 전문가인 것과, 그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에는 큰 갭이 존재한다.) 고고학에 흥미가 동하시는 분께는 추천. 일반적으로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그러나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신비가 풀릴 거라는 기대를 안고 펼치시는 건 말리겠다. 그야말로 Doorways through time, 대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