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정재영,정려원 / 이해준
나의 점수 : ◆♤☆♧♡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별 정보없이 보게된 영화. 그저 한강의 밤섬에 표류한다는 기본 컨셉만 듣고 맨 처음에는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가 떠올랐다. 섬에 갇힌 두 남녀가 쿵짝쿵짝 펼치는 코미디인가? 싶었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화면을 참 예쁘게 찍었다는 것. 색을 과하게 알록달록하게 쓰지 않으면서, 아주 섬세하게 배치한 듯. 살짝 필름 카메라의 느낌. 서울 하늘을 저렇게 예쁘게 찍으려고 고생 꽤 했겠다. (뭐 CG였는지는 모르지만;) 척 보기에 "우와 굉장해!"하고 감탄하기보다, 보면 볼수록 아주 정겹고 곱고.
보다 보니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귀에 확 꽂히는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존재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식이랄까? 극중 두 김씨는 대부분 혼자 있고 따라서 대사도 거의 없는 데다 사건이 왁자지껄 펼쳐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장면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생동감 있게 살려주는 것이 음악의 역할이었다.
내용은, 처음에는 정재영이 고군분투했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지만, 이 억지스런 상황을 코믹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표현하려고 한 여러 가지 연출 시도와 연기와 편집이 살짝 박자가 어긋난 느낌이라. 안쓰러워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나 할까? 뭘 어떻게 해도 <캐스트 어웨이>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거기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한 복판이라는 설정에 어떤 진득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기란 어려웠을 텐데. 여기에 초장에 밀어치는 화장실 개그라니. 솔방울 올려놓고 칠 때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인상이 막 찌푸려지면서 대체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가려고 그러나 싶다. 그러나 여기에 국민의 일요일 메뉴, 짜파게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올라선다.
정려원의 설정은, 미안하지만 어떻게 봐도 봉준호의 <도쿄!>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안다, 자꾸 전작들과 비교하는 거 안 좋은 습관이고 따지고 보면 똑같은 것도 없다는 거. 하지만 <도쿄!>에서의 강한 이미지와 오버랩이 되면서도, 여기서 든든한 바탕 설정과 독특한 소품들을 가지고 그 자체로 새로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칭찬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지.
화면도 음악도, 정재영도 정려원도, 어느 하나 환상적으로 관객을 사로잡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잘 빚어져서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이 기억에 남는다. 문제상황과 해결, 갈등과 화해의 스토리라인도 몹시 훌륭하고. 나는 특별히 메시지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저 본질적인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극장을 나와서 팜플릿을 집어드니 이제서야 이해준 감독이 <천하장사 마돈나>의 감독이라는 걸 알겠다. "역시나!"라는 건 칭찬이면서 욕일까?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고 폄하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미지가 강렬한 스틸 컷들은 여기 숨겨요 :D 미리 봐도 상관없으시면 보세용▼-. 음, 역시 초반에 조마조마하면서 본 탓인지, 그 부분의 편집만 좀 더 몰입되게 매끄럽게 해줬으면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꾸만 생각이 나는 영화.
-. 사실 화장실 개그 중에서도 사루비아 씬은 꽤 감동적이었다. 이해도 가고.
-. 63빌딩을 필두로 서울과 한국의 많은 대표적 소품들이 등장해서 유쾌했음. (클리닝 테이프 진짜 오랜만이다)
-. 근데 왜 하필 에비앙이냐. 삼다수도 아니고.
-. 카메라는 태풍에 젖어도 말짱하냐? 저거 몇백만 원짜리야?;;
-. 역시 정려원의 든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제 없이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 간만에 카드 팍팍 긁는 씬도 ㅎㅎ 대사는 허당이 30%, 나머지 70%는 매우 훌륭했음.
(2009.05.25 / 메가박스 신촌 / 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