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일기] 무엇이 나아진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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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도 환부를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구멍이 커졌다, 종양이 줄어들었다, 양성이다 악성이다, 덧났다 고름이 찼다....
그래서 치료를 하면 차도가 있는 건지, 약발로 버티고 있는 건지,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그러지 못해서 나은 걸로 착각하거나, 문제가 없고 이 정도면 정상으로 돌아왔는데도 겁나서 떨거나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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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첫 날 아침부터 누가 그만둬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문자가 왔고, 다른 팀장 전화가 와서 수신거절해버렸다.
노트북을 옷장 깊숙이 넣어버렸다.
둘째 날 저녁에는 누가 최종면접에 합격을 해서 오퍼를 만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 해야지, 싶다가도 밤새 일 생각이 난다.
셋째 날 아침 노트북을 꺼내 기초작업을 좀 해놓고, 쌓여 있는 이메일을 제목만 본다.
절대 읽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열어보았다.
내 자동회신을 당일 병가로 오인한 듯하여 장기병가라고 고쳐두었다.
이 일도 저 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감이 있는 것들이라 조금씩 처리해두면 좋은데...
온 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거, 
정말 불안해서 그러는 건지,
커피가 심장을 뛰게 하는 건지.
여튼 확실하게 좋은 상태는 그런 데 신경이 아예 가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
너무나 혼자 있고 싶은데 신경 쓸 요소가 많다.
친구가 추천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어제처럼 이불 밖으로 안 나올까봐 아깝기도 하고.
현재 아들의 상태가 너무 신경쓰이고.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으면 확 해버리는 게 이번 치료의 목적이기도 할 텐데
나는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런 판단장애와 무기력함이 내 치료의 이유이니까.

by kisa | 2021/09/15 11:14 | I a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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