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응급으로 정신과 달려가본 적 있나요

추가한 약을 먹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는데...
3월 30일 화요일 아침 너무나 사소한 일로 좀 집에 있기 싫어서 친정으로 도망쳐 10:30 회의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우울감이 몰려오더니 표정관리가 안 되기 시작해서 카메라를 끄고 휴지를 가지고 왔다가,
엉엉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회의에서 나가는 게 나을까, 이 상태를 나의 각국 인사팀 동료들에게 밝히는 게 나을까 무지 고민하다가,
밝혔다.
갑자기 나가면, 키사 무슨 일이야, 왜 저래, 여러 가지 추측만 불러일으킬 텐데, 터놓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받아들여줄 수 있을 만한 동료들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막상 입을 열었을 때 울먹거리면서 제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3월 31일 수요일 아침,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제 잘 들어갔냐고 괜찮냐고.
괜찮아졌다고 하니 "너 엄마 안심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라고 하셨는데, 조금 울컥했다.
그래도 힘내 일어서서 가장 자주 가는 한 정거장 앞 커피집에서 모닝 아이스라떼를 뽑아서 마시고 있는데...
아 또
엉어어어어어엉ㅇ어어어어엉어어어엉ㅇㅇ엉ㅇㅇ
아 진짜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싶어서, 마침 병원이 100미터 앞이라 마스크를 적시며 뛰어갔다.
접수계의 간호사님은 이런 환자 자주 봤을까.
다행히 사람도 별로 없었거니와, 예약도 없었는데 나를 먼저 들여보내주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무 일도요"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남들 보기에 너무나 평탄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래도 꼽아보라고 하셔서 아주 곰곰히 생각한다면...
"냉장고에 뭣도 없어요"하고 "네 엄마는 요즘 아주 자유부인이야"이 트리거였던 것 같다.
이 대사들이 지닌 짜증의 뉘앙스와 역학관계를 차치하고 그래봤자 짜증을 넘어선 감정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따져보면
아마,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는데, 남들 눈에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평가받아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맴돌아서 슬퍼졌다거나 한 게 전혀 아니고
정말 가만히 있는데 어어어얻어어엄얼헝어어엄ㅇ허엉 한 거라서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건지 마음 어딘가 정말 망가진 건지
이건 마음 정리로 될 것도 아니고 상담도 소용 없고 위로도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고민하시더니 약을 증량하느니 그냥 확 강력한 약을 처방하자고 하셨다.
원래 약이 우울을 막아주고 원래로 돌려주는 약이라면,
새로운 약은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약이란다.

그런데 골라야 한단다.
입맛 없고 안전하게 먹을래,
확 기분 좋아지고 살찔래.

어버버버버..........

아니 지금 살 빠져서 좋아서 유지하고 싶은 것보다는, 입맛이 없어서 삶의 의욕까지 떨어져서 문제이긴 한데,
뭐랄까 단계를 건너뛰고 더 센 약을 준다니까 걱정되는 게 제일 크다니까요;;;
살찌기 싫어서라기보단 ㅠㅠ
근데 살찌고 기분 좋아지는 약 먹으라고 주심.

부작용은 아침부터 막 기분이 좋고 막 이것저것 하려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싶어진다고 함.
으으음................

아니 웃을 때가 아니라 이거 살면서 갑자기 미친년처럼 흐어어엉엉어으응어흐어어엉 하지 않고 살려면 약이 필요한 거 같긴 한데.
뭔가 제정신으로 판단할 능력을 상실해서 일단 약을 받아들고 나와서 먹었다.

한 1주일 지나니까 좀 약효 플러스 부작용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반강제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잠에서 깨고 아침식사 하고 걸어서 카페 가서 카페인 접종하다보니.
오늘은 옷장 정리도 하고 침대 밑 청소도 하고 막 부산스럽게 다 했는데 아침 10시도 안 되었다.

거봐 내가 노력으로는 사람을 못 바꿔도 아프면 사람이 바뀐다고 했잖아 ㅠㅠㅠㅠ

아직 좀 위태위태한 게, 준이한테 잘해주려고 하다가도 아직 용량이 좀 작아서, 금방 얼굴이 굳어지고 만다는 건데.
얘가 그런 거 눈치는 있어서 오들오들 "아니에요 미안해요"하는 게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눈치 있으면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 마는 건 왜 모르나 답답하기도 하고
he gets carried away all the time

일단 입맛도 좀 돌아오는 거 같은 게
어제는 정말 한 5개월 만에 머릿속으로 곱창을 떠올리고는 '맛있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빙수도 사먹었다.
3월은 정산의 달이고 4월엔 생일도 있어서 이것저것 사먹을 계획을 하고 있으니 하루하루 무럭무럭 살찔 것 같다.
티앙팡도 가고 닛신 크리스프 초코도 사고 텐동도 우삼겹도 먹고 에잇 이카텐도 사버려야지.
누가 가펠 쾰쉬 파는 데 좀 알려줬으면 좋겠네.

부작용이든 뭐든 잘 써먹어서 밀린 일들도 해치우고 잘 회복해봐야지.

다시는 울면서 정신과로 뛰어가는 경험은 안 했으면 좋겠다.

by kisa | 2021/04/08 17:51 | I am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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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on at 2021/04/09 20:35
우리 동네 롯데마트 파는데 사다 주고 싶다 ㅠ
Commented by kisa at 2021/04/10 11:30
롯데마트라고??!! 하고 바로 검색하니 우리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데가 5.2km 거리의 서초동과 5.8km거리의 양평점이네;; 차라리 서울역에 가자고 남편을 꼬셔볼깨
Commented by 맥린이 at 2021/04/11 23:55
이마트에도 있오요
Commented by kisa at 2021/04/15 11:35
이런! 용산 이마트에 없더라고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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