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우울은 알러지 같은 것

재채기와 기침의 차이, 비염과 감기의 차이를 단번에 명쾌하게 설명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을 달고 자란 내가 명확하게 알러지 반응을 구별하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나서이다. 얼굴 한 가운데에 줄을 그어놓은 듯, 오른쪽 눈과 오른쪽 콧구멍만 가렵고 물이 줄줄 나오며 재채기가 나올 때, 아 이건 알러지구나 깨닫게 되었다. 참을 수 없이 근질근질하여 비벼보아도 쓰리기만 하지 시원하지 않다. 천지사방 시끄럽게 재채기를 연달아 하면 골이 울릴 거 같으나 도저히 통제가 안 된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고 이 수라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다가 지르텍 한 알을 뿅 먹으면 5분 상관에 모든 반응이 스탑된다는 걸 깨달았던 신세계의 입구. 너무 심하게 강력하여 미드 하우스에서 알약 먹고 몇 시간 안에 낫는 설정이 과한 게 아니라고 믿게 되었고, 약간 무서울 정도라 길쭉한 한 알을 반으로 쪼개 먹기도 하였다. 오직 하루에 한 알만 먹는 것이 복용량이라 주로 밤에 먹으라 되어 있었는데, 당연히 낮에 알러지가 폭발하면 그때는 먹어야 산다. 그래서 내 화장품 파우치에는 두통약에 이어서 항상 길쭉한 지르텍(혹은 알러텍)이 내장되어 있게 되었다. 임신 중에도 정말 가려움증에 미쳐버릴 거 같아 의사를 찾아갔더니, 약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주셨다. 약 먹었더니 뿅 하고 괜찮아짐. 왜 한 달 내내 가려움에 시달렸나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기분이 나쁜 것, 컨디션이 저조한 것, 우울한 것, 의욕이 없는 것. 신체의 건강과 구별되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은 여럿이 있으나 그 성상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원인도 여러 가지, 양상도 여러 가지, 미치는 영향도 동일하지 않다. 다만 나는 머리로 익혀 알고는 있었다. 누군가 울적하고 의욕이 없다, 우울하다 할 때,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라거나 운동을 시작하라거나, 기분 전환을 해보라거나 하는 조언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있노라고. 그것은 신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평상시와 같은 방법으로는 제자리에 돌아올 수 없고, 같은 조언을 하는 것은 무신경한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그 단계에서는 감기약을 처방받아 감기 증상을 호전시키듯이, 약물의 도움을 받아 마음이 회복 가능한 수준으로 튼튼해지게 해야 한다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역시 머리로 알고, 이해를 통해 받아들인 것뿐, 정확하게 그 지점이 어떤 것인지, 어떤 기분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에, 이따금씩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친구들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게 옳은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 무척 자연스럽고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대해야 편해 할까, 아니면 너무너무 힘들었겠구나 어떡하니 하고 위로를 건네야 할까? 정말 얼마나 힘들어서 약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일까? 정답을 모르는 나는 어물쩡 넘어가기만 했다.

2020년, 코로나블루가 건강보험 적용을 논하게 된 시점. 금번이 약을 복용하는 정도의 우울과, 그렇지 않은 정도의 우울의 구분선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기준은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시는 당사자인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른다. 우울 척도는 일단 자기진단을 통해 평가된다.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자신과 난 아픈 사람이 아니야라고 소리지르는 자신이 있어서 절박함에 있는 그대로 답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다. 10점이면 우울감이 드러나는 정도, 20점에서 30점 사이가 힘들어서 병원에 찾아오는 구간, 40점이면 일상생활을 계속하기 힘든 정도. 50점이면 그 이상. 나는 병원에 간신히 잘 찾아온 것이었다. 이미 상담 선생님과의 시간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다른 대처방법을 시도해보았기에, 2주에서 4주의 기간 이상을 지켜보았기에 바로 약을 처방받는 과정 자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만 단순히 그 시간동안 지켜보고, 시도하고, 견딘 것만이 기준은 아닐 것이다. 대화 도중, 혼자 있을 때, 길거리에서건 욕실에서건 오열하는 빈도가 잦아졌을 때 더 이상은 이렇게 일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고 느꼈다. 그 임계점을 느꼈기에 찾아가게 된 것이다.
우울 척도보다 불안 척도가 더 높았던 것은 의외였다. 심한 경우 외출을 못하거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인사 일을 하면서 억지로 개발시켰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문제해결, 다수 앞에서 발표하는 것, 낯선 사람을 응대하는 것,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 그 외에도 복잡한 갈등 상황을 풀고 프로젝트를 진척시키는 것 등, 덜 힘들어졌던 영역들이 모두 가슴이 벌렁거리고, 두려워서 접근하기 싫고, 피하고만 싶게 느껴졌던 게 불안의 양상이었던 모양이다.
진료의 절반은 약효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었다. 최대한 의존성이 없고 부작용이 적은 약한 약물을 처방하여, 기분이 가라앉는 것, 눈물이 나는 것, 나쁜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하셨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 건 아니지만, 3주 정도 지나면 차도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뿅. 약효가 돌았다. 진짜 신기했다. 어떤 느낌이냐면, 외나무 다리를 걸어가는데, 말에게 씌우는 것 같은 양옆을 보지 못하게 막는 안대를 끼운 기분이다. 안대 밖, 양 옆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만, 보이지 않게 한다. 빠지지 않게 한다. 기분은 낮은 곳에 있는데, 나쁜 생각으로 빠져드는 걸 막는다. 차선 안으로 달리게 하는 반자동주행이 이런 걸까? 찝찝한 건 둘째 치고, 감정이 폭발하며 나쁜 생각의 물레방아를 미친듯이 돌려 눈물이 콸콸 쏟아지게 하는 고리가 뿅 하고 사라져서 얼레, 이런 기분이 들었다. 일단 살 거 같았다. 여전히 메마른 상태지만, 쉬어가는 기분.

그러나 사람 마음은 히스타민 반응을 막는 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지. 복용 1주일째, 회사 전체 워크샵 날,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표정 관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침에 먹은 진한 커피 때문인지 울렁거림이 심해져 화장실로 뛰어갔지만 토하지 못했다. 간신히 버티다 퇴근하는 길 운전하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재채기가 나올 거 같은데 나오지 않는. 하고 나면 후련할 거 같은데 근질거리기만 한. 너무나 울고 싶은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래도 괜찮은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소리를 내서, 얼굴을 일그러뜨려 울음을 냈다. 답답한 속에 억지로 트림하듯이. 진정되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 올림픽대로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하고. 시이나 링고를 플레이리스트에 걸고 비명소리를 냈다. 다음 날 워크샵 이틀째 연말 파티까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도 못하는, 랜선파티에 사무실 캔틴에서 차린 조촐하지만 따뜻한 시간이었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한 해의 마무리가 그렇게 쓸쓸하게 빠져나가 버렸다.

결론적으로, 약효는 들긴 들었다. 그 다음 날 오후부터 신기하게 컨디션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어? 나 지금 기분 괜찮네?’ 하면서 관찰하는 매 순간이다. 의사 선생님이 어땠냐고 물어보셔서 그간의 경과를 말씀드렸더니, 왜 좋아진 거 같냐고 하신다. 글쎄요,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서 모니터에서 3시간짜리 엑셀작업을 했더니 좀 평안이 찾아온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의 감정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숫자와의 싸움. 그리고 나서 상태가 호전된다는 3주째까지 길거리에 주저 앉아 우는 한두 번의 삐끗거림이 있기도 하였으나, 복용 6주째 나는 훨씬 안정적이다. 예전에는 그 일부러 막고 있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게 인식됐다면, 지금은 아예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다. 내 상태를 관찰하는 것, 그리고 불안을 느낄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점잖게 회피하려는 것 외에는 평소에 비해 그렇게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대체 왜 이걸 그렇게 어렵게 생각했던 걸까? 약을 먹으면 이렇게 좋아지는 것을, 무엇 때문에 병원에 방문하는 것을 그렇게 저어했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 버텨보려고, 견디고 혼자 해결해보려고 울고 슬퍼하고 무서워해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잇몸에 피가 나면 비타민을 먹고, 빈혈이 일면 철분을 먹고, 눈가가 파르르 떨리면 마그네슘을 먹고 그러는 게 과학인데.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르고 힘들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심리상담만 해도 마치 젊은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기 두려워하는 모습처럼 저어하는 양상이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장소라고. 건강을 관리하고, 지키고,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정신의학과라고 하면 더하면 더하겠지. 두통이건 감기건 약을 안 먹는다는 사람도 있으니. Inclusion & Diversity 교육을 받는데, ‘본인의 우울증 극복 경험을 공개적으로 화제로 삼는 직원’에게 편견을 갖는 사례가 등장할 정도니 상당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나도 최대한 안 가면 좋다고 생각했고, 공개적으로 알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이 화제는 따로 한 꼭지로 얘기하고 싶을 정도지만.

별도의 다이어리까지 사서 이 시간을 기록하다 힘겹게 힘겹게 이 제목의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라고 하면, 항우울제를 먹는 것은 항히스타민제를 먹는 것 같다는 내 깨달음. 힘들고 아픈 것을 버틸 필요 없이,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필요한 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것. 아프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 주변에 찾아보면 의외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제법 있고, 몰랐을 뿐 터부시 할 일이 아니라는 것. 혹시라도 심리상담은커녕 상의할 가족이나 친구가 주변에 없어, 혹은 없다고 느껴져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병원에 가보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세상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바꿔 말하면 내 인식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다. 특히 그것이 나의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효과를 봤다고 생각하기에. 더불어 그렇게 도움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인식도 바뀌어갈 수 있기에.

알러지를 앓는 사람이라면 어떤 요소 때문에 알러지가 발생하는지 테스트를 해보게 된다. 꽃가루나 집먼지 때문인지, 동물의 털이나 과일 또는 음식 때문인지, 테스트를 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고, 그 요소를 피하면 알러지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만일 영 피하기 어려운 종류의 경우라면, 작은 함량씩 몸에 익숙해지게 하는 과정을 통해 민감성을 줄인다고 한다. 몸이 견딜 수 있도록. 또한 선천적으로 알러지성 비염을 타고난 경우 매일매일 꾸준히 복용하는 약이 있기도 하다. 결국, 안고 살아가는 것인데, 파악하기 위한 주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조절하는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품고 있는 내 마음인데, 내가 무엇에 즐거워 하고 무엇에 우울해 하는지, 잘 파악하기 힘든 것이 딜레마다. 의외로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추적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내가 가진 에너지에 한도가 있다면, 그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고 필요이상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가계부를 쓰는 게 이다지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알러지 테스트처럼 확실한 결과지가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계속해서 테스트 해보고, 견디어보고, 극복이 되면 좋고 아니라면 피하고, 보조제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또 매일매일을 살아, 간다.

by kisa | 2021/01/20 16:11 | I a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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