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 04일
[음악] 장기하와 얼굴들의 아이러니
발매된 지 근 1년이 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내사랑에노련한사람이어딨나요]를 이제서야 듣게 되었다.
2011년 앨범 이후 나온 노래들에 특별히 '꽂히지' 못하고 5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앨범을 듣게 된 얘기는... 아이유가 오혁이랑 곡을 내고 심지어 앨범마저 사이좋게 같이 냈길래 검색하다보니 장기하랑 헤어졌다길래...? 특별히 연예인 가십에 관심 없어하는 편인데 왜인지 궁금하더라니 이 앨범을 듣게 하려고 했나보다. ㅋ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을 주구장창 듣던 당시에도 리뷰글을 남기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주변인들에 비해 음악에 조예가 있지도 않고 장르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주제에... 하면서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적을 정도로 꽤나 강렬하게 마음을 강타했던 앨범이었기 때문.
노래 가사가 가장 내 얘기 같을 때는 사랑에 빠진 순간보다 이별을 경험한 순간이기 때문이기보다는,
하필이면 그 사람이 메신저로 보내줬던 "TV를 봤네"가 정말 그 공허함을 잘 짚어냈기 때문이기보다는,
'아이러니', 반어법에서 발생하는 그, 자석을 같은 극끼리 갖다대었을 때 발생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렬한 힘 같이, 지치지도 않고 밀어내는 힘이, 노래에서 이토록 내 마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감정에 빠지지 않고 보아도 앨범으로서 완성도가 높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
"뭘 그렇게 놀래"로 아주 되바라지게, 그러나 미워할 수 없게 '내가 이렇게나 멋지게 해냈다'고 자랑을 하고 시작하고(비록 원래는 사랑노래지만)
"그렇고 그런 사이"에서도 갓 사랑에 빠진 달콤함보다는 '당연한 거 아냐?'라는 식으로 대범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내 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에서 삐그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별노래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TV를 봤네"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깊은 밤 전화번호부"에서 공통적으로 포착한 건 먹먹함이다.
내 삶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혹은 강렬했던 것이 통째로 들어내지고 났을 때.
찢겨진 상처나 미련이나 퍼붓던 눈물을 건너뛴 뒤.그 검은 공간이 그대로 남은 채로, 멍하게 마취된 듯한 느낌.
그걸 채우려는 시도는커녕, 그 공간을 곁눈질하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그 상태에서. 흰새벽에 끊임없이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무표정하게 광고나 엔딩크레딧을 보고 있거나,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혹시나 다시 눈물이 쏟아지거나 상처가 쓰린 걸 느끼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그 순간의 경험을 정확하게 포착해 노래한다.
그리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어서 앱을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연락처를 계속 내리면서, 과연 누군가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넘기고 넘기고 넘기고 하면서, 결국은 아무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꺼냈더라도 무의미한 말만 늘어놓다가, 고개를 뒤로 떨어뜨리고, 천장만 바라보는 그 시간들.
그러면서도 아주 멀쩡한 목소리로,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거나,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거나, 너무 쓸쓸하다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말라거나, 그런 구구절절한 이별의 모습을 애절한 멜로디와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고도,
그 뻔뻔한 표정과 동그란 눈으로 부르는 노래가, 다른 어떤 노래보다도 목에 걸린다. 아이러니의 힘으로.
이 아이러니는, 내가 꼭 이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계속해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그 자석처럼.
보통은 "그 때 그 노래"같은 곡들, 슬프게 슬픔을 노래하는 곡들을 쉽게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이러니를 말하는 곡들에는 감탄을 하게 된다.
윤종신의 "본능적으로"를 들었을 때와 같은 거다.
노래는 멋드러지게 난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이 네게 첫눈에 반했고 이렇게 강렬하고 기분 좋은 느낌은 처음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슈스케에서 강승윤이 불렀을 때 젊고 자신감 있는 남자가 밀어부치는 그 느낌이 히트를 치기까지 했고.
하지만 난 강승윤의 공연이 좋았을지는 모르지만 곡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며 화를 냈다.
윤종신의 원곡은, 이미 꺾인 나이, 사랑의 두근거림, 약속, 헌신, 이런 것들이 다 지나가고 난 뒤,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믿지 못해, 기대할 수 없어서, 난 이제 모르겠다,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할 테다, 그런 느낌이었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상관없고, 후회는 없다, 왜냐면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멜로디나 목소리에서 그런 쓸쓸함과 허탈함이 대놓고 느껴지는 게 아닌데도, 실제로 윤종신이 강승윤한테 이렇게 불러라 시켰음에도, 나한테 이 곡은 아이러니의 집약체였기 때문에, 인정할 수가 없었거든.
2014년의 [사람의 마음]이 워낙에 꽂히지 않아서 안 들었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재생목록에 넣었던 [내사랑에노련한사람이어딨나요]. 단번에 사로잡진 않았지만 아이유+오혁+장기하로 이어진 플레이리스트에서 이상하게 자꾸 이어폰을 뗀 뒤에도 맴돌아 반복해 듣게 했다.
특유의 곡 전개. 길게 길게 시원스런 상황 묘사를 하다가 그게 아니더라, 라고 반전하는 진행, 노래하듯 말하듯 넘나드는 창법과 독특한 비트, 일상의 단어들을 맘껏 집어넣거나 말장난을 치는 가사들이 여전하다. 장기하와 얼굴들밖에 못한다 생각했지만 이번에 악동뮤지션이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해서 진화했던데. "우리 지금 만나"로 리쌍과 콜라보 한 것처럼 해도 재밌겠던데.
곡으로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괜찮아요"가 또 가슴을 후려쳤다. 현재의 연인에게 '나랑 취향이 달라도 괜찮아' 이러면서 상대방에게 맞추겠다는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듯 예쁘게 시작한다. 그러다 옛 연인은 나랑 완전히 똑같았는데도 헤어졌다는 말을 하길래 '어...? 괜찮다는 포인트가 좀 이상하지 않아?' 싶은데 '당신도 결국엔 날 떠날 거잖아요'라면서 이 사람이랑 잘 해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에다가 심지어 그때 그 연인을 더 사랑했던 것 같은 뉘앙스마저 남기며 노래가 끝난다. 내 옆에서 웃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 처량한 그 여자가 된 것 같은 심정이, '괜찮아요'가 전혀 괜찮지 않은. 아주 씁쓸한 것을 넘어 비참한 심정을 느끼게 하는 곡.
슬프게 슬픈 "그러게 왜 그랬어"도 언젠가 겪어봤던 그 한 순간을 그려서 좋고, 발랄한 멜로디로 파란 하늘 바라보면서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가나다"도 좋고.
악동뮤지션이 너무 어여쁘고 내 일상의 활기고, 볼빨간 사춘기를 수백번 돌려들어도, 그 이상으로 나를 들었다놨다 하는 장기하와 얼굴들.
# by | 2017/05/04 14:44 | I like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좋아하는 곡들이 나랑 비슷하네 :) 왜 혼자 가? 둘이 가면 안 돼? 취향이 안 맞나 ㅋㅋ
10월 전에 욕 먹을 정도로 많이 가도록....!!! * _ * 잘 할 수 있을 것이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