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6일
[이런기분] 양자택일의 불공정성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선택"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곤 한다. 가장 흔한 게 "오늘 점심 뭐 먹을까?"가 아닐까? 나는 나름 여럿이 있을 때 "선택"이라는 "결정"을 잘 내리는 편이고, 그건 다년 간의 노하우로 "선택의 프로세스"라는 걸 정립하고 습관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셋이서 밥을 먹으러 갈 경우 아채 하나 닭고기 하나 해물 하나, 그것도 밀가루 하나 쌀 하나가 섞이고 소스는 토마토 하나 크림 하나 혹은 매운 거 하나 순한 거 하나가 섞이도록 한다든가. 보편적으로는 진단 가능한 장단점과 도입 가능한 대안을 펼쳐놓고 무의식 중에 점수를 매겨 가장 효율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 혹은 행복을 가져다줄 선택을 하고는 기쁨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진짜 못 정해서" 고민하는 일이 많이 줄긴 했건만, 아직도 고민하는 경우가 몇 종류 있다. 1번, 썩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대안이 없고 덩달아 의욕이 저하되어 있을 때, 2번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중한 고민일 때, 3번,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이런 때는 선택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명확히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이 대부분이다. 1번은 백수 생활에 종종 경험하곤 했다. 집에 있기는 싫은데 멀리 나가기는 귀찮고 노트북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분위기도 좋으면 좋겠고 비싸지는 않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늘 이도저도 아닌 곳만 떠올라 선택 프로세스를 무한 반복하며 바보같이 굴다가 김이 푸쉬쉬 빠져버리는 경우. 2번은 사실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데드라인이 다가온다면 어떻게든 선택해버릴 수는 있을 텐데, 보통 이럴 때는 내 의사만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외부 여건이 받쳐주고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그런 상황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사를 할 수 있는가, 취직을 할 수 있는가가 그런 문제가 되겠지.
3번은 극히 사소한 경우와 극히 난해한 경우로 구분된다. 이를 테면, 아주 어릴 때 오늘은 치마를 입을까 바지를 입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든가 하는 예를 들 수 있겠다. 아니다, 그런 걸 고민하는 나는 너무 안 어울리는 걸. 쵸코우유를 먹을까 딸기우유를 먹을까로 바꿔생각해보자. 진짜 이렇다할 특장점도 없고, 선택으로 인해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그런데 도저히 못 고르겠는 거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사용할 노하우를 터득했다. 가정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쵸코우유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쳐보자! 그럼 내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쁜가? 아니면 여전히 찜찜하고 아쉬움이 남는가?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쵸코였는지 딸기였는지 알게 되는 거다. 이건 에라 모르겠다 싶어 "어.느.것.을.고.를.까.요.알.아.맞.혀.보.십.시.오"를 해놓고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딩.동.댕."을 붙이게 된다는 경험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나온 거였다. 그러려면 왜 애초에 더 좋은 게 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냥 그걸 고르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진짜 모르겠는걸. 진지하게 그 상황을 가정하고 자신을 위치시키지 않는 한,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는걸. 그래서 결국, "모르겠다"며 "아무거나"라고 얘기해버리지만,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무언가 하나를 더 갈망하는 게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물이라는 말이다.
난해하고 추상적인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에는 머릿속에서 가정만 반복해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럴 경우에는 "상실"이라는 방법이 있다. 쉽게 말하면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좋은 줄 몰랐다가, 사라지고 나면 그제서야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진정한 자기 마음을 알게 되는 방법. 자기 마음만 뚜렷하게 알 수 있다면 그 다음의 선택과 행동은 쉽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이미 손 쓸 타이밍을 놓치기도 쉬운 것이다.
인간은 참 불완전하고 복잡한 생물이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많은 행동을 하면서도, 어떨 때는 자기가 수용 가능한 개념과 관계의 틀에 상황을 일치시키고 난 후에야 그에 걸맞는 패턴의 행동을 진행시켜나가기도 한다. 왜 그렇게 순수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힘들까? 외부는 물론 자기 마음조차도 사고의 틀에 묶어 자유롭지 못하게 다루는 것일까? 양자택일의 문제는 애초부터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진짜 못 정해서" 고민하는 일이 많이 줄긴 했건만, 아직도 고민하는 경우가 몇 종류 있다. 1번, 썩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대안이 없고 덩달아 의욕이 저하되어 있을 때, 2번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중한 고민일 때, 3번,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이런 때는 선택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명확히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이 대부분이다. 1번은 백수 생활에 종종 경험하곤 했다. 집에 있기는 싫은데 멀리 나가기는 귀찮고 노트북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분위기도 좋으면 좋겠고 비싸지는 않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늘 이도저도 아닌 곳만 떠올라 선택 프로세스를 무한 반복하며 바보같이 굴다가 김이 푸쉬쉬 빠져버리는 경우. 2번은 사실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데드라인이 다가온다면 어떻게든 선택해버릴 수는 있을 텐데, 보통 이럴 때는 내 의사만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외부 여건이 받쳐주고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그런 상황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사를 할 수 있는가, 취직을 할 수 있는가가 그런 문제가 되겠지.

난해하고 추상적인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에는 머릿속에서 가정만 반복해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럴 경우에는 "상실"이라는 방법이 있다. 쉽게 말하면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좋은 줄 몰랐다가, 사라지고 나면 그제서야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진정한 자기 마음을 알게 되는 방법. 자기 마음만 뚜렷하게 알 수 있다면 그 다음의 선택과 행동은 쉽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이미 손 쓸 타이밍을 놓치기도 쉬운 것이다.
인간은 참 불완전하고 복잡한 생물이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많은 행동을 하면서도, 어떨 때는 자기가 수용 가능한 개념과 관계의 틀에 상황을 일치시키고 난 후에야 그에 걸맞는 패턴의 행동을 진행시켜나가기도 한다. 왜 그렇게 순수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힘들까? 외부는 물론 자기 마음조차도 사고의 틀에 묶어 자유롭지 못하게 다루는 것일까? 양자택일의 문제는 애초부터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 by | 2009/08/26 18:19 | I reckon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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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열심히 알바를 하다가 쉬는 타이밍에 써내려간 것이지요.
뭐 일단 저는 백수인 만큼 시간의 제약은 받지 않습니다 ^ㅁ^ ㅋㅋㅋ
아 오늘 지하철 타고 오다가 같은 칸에서 상혁씨 딱 마주쳐서 깜짝 놀랐다는... ㅎㅎ
그냥 1번부터 n번까지 메뉴를 붙인 다음 가위바위보를 시켜서 결정되면 가버린다-_-ㅋㅋ
원하는 것이 있거나 불만이 있다면 의견을 진즉에 냈어야 했으니 이쯤되면 토 달지 않고 결정된대로 가게 되더이다..
사람이 자꾸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욕심이 많아서 일지도...'ㄴ'
나만해도 초코우유와 딸기우유 앞에서 고민한다면 이것은 내가 둘 중 어느것을 마실 때 [더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재기 때문이 아닐까 싶소.
결론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햄볶고 싶다는 욕심의 발로...ㅋㅋㅋㅋ
어떻게 보면, 내 얘기의 뒷부분과 상통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드네.
안 된다는 걸 아는 순간 아쉬워지는? 그런 것일까?
욕심과 햄볶기는 인생의 전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