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수양부족

"언니, 이제는 말야, 취직하고 나면 어떤 부서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원하는 일이 아니라도, 상사가 아무리 그지 같아도 말야.
적당히 버티면서 일단은 돈을 벌고 맘 편히 사는 거야!"

...라고 말한 지 20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빡돌아서 뒷목을 움켜쥐었다. 나의 흥분을 다 받아준 고마운 벗과 가족이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푸는 일은 자제하도록 하고.
...왜 일처리를 한 번에 못하는 거냐?! 만일 그래놓고 진짜 큰 문제 생기면 어쩔래? 왜 그렇게 서론이 길어? 가능한 선택지를 먼저 다 제시한 다음에 진행되게끔 못하냐?
그래도 정말 나의 처지는 행복한 편이어서, 시간이 많으니까 일 처리하러 돌아다닐 때 힘들지 않다.
오전엔 짧게나마 운동도 다녀왔고(물론 그 도중에 콜센터 오픈 시간 맞춰 전화하면서 오히려 기운을 뺐지만)
김밥 먹으며 다나와를 뒤져서 지하철 타고 용산, 버스 타고 V**O 서비스 센터, 다시 버스 타고 빠꾸해서 나까뎅양 사무실 픽업, 30분 환승 아슬아슬 세이프로 지하철 타서 강남역에 레고양 배달, 그대로 두 정거장 돌아와 귀환. 헉헉헉. 이거 나름 하룻동안 대중교총 5시간쯤 타니까 힘들데요...

결국 오늘 안에 어떻게든 받고자 했던 노트북이 아슬아슬한 시간 차이로 픽업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오늘 저녁도 공침? 은행도 갔어야 하는데 못 갔고. 물론 데탑에 마지못해 알바 프로그램을 깔기는 했지만 타자가 익숙하지 않은 터라. 오늘 내내 그 생각 했다 정말. 내가 왜 지지리도 하기 싫은 알바를 하기 위해서 이토록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돈, 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의 소속감과 부여된 임무에 대한 책임감, 이런 걸 지키고 싶어서였겠지. 싫은 소리 할 건 오늘 다 해버리자 싶어서 감감 무소식인 헤드헌터에게도 전화하려 했지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늦어져서 메일만 보내고 말았다. 최대한 공격적인 단어는 없으면서 내용은 다분히 싸늘한 그런 메일을. 전화 하겠다고 했으면 하란 말이다!

여튼 별 건설적이거나 상쾌한 내용도 없는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이 때문에 여행기도 쓰다 말고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해명하기 위해서. (아주 솔직히 말하면, 미리 올려둔 사진들로 여행기 한 편은 쓸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하기 싫지. 머릿속에 가득찬 다른 일들도 있긴 하지만.) 아주 쓸데없는 초등학생 일기.

by kisa | 2009/08/25 00:49 | I am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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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cre at 2009/08/25 08:38
호 대단하다. 강남역에서 바로 주고갔구나 ㅋㅋ 저녁은 어떻게 했슈..
Commented by kisa at 2009/08/26 14:17
nacre> 응 개찰구 안쪽에서 ㅎㅎ 저녁은.. 어떻게 했더라;; 장 봐다가 스파게티 끓여먹은 듯 =)
Commented by nomad at 2009/08/25 17:54
몬일이 벌어진건가...
Commented by kisa at 2009/08/26 14:17
nomad> 그냥 서비스 사회가 구현되기를 바라는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이랄까...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26 23:36
ㅋㅋㅋㅋ... 서비스 사회구현에 대해서..는 정말..ㅠㅠ 스토리가 또 한박스 쌓여있다우..ㅠㅠㅠ아놔..편히 살고 싶다..그치?
그나저나 왜, 해야지..한 일이 하기가 이리도 구찮고 싫은지........하자면 금방하는데 말이야....-ㅁ-;;

근디 문제는 노트북에서 기인한듯..?
Commented by kisa at 2009/08/26 23:40
mandoo> 아주 소올직히 말하면, 노트북에 대해서는 별 원망이 안 들어. 그게 뭐, 나이 먹어서 뻗는 거고, 내가 좀 소홀히 다뤘던 것도 갖고. 언젠가는 올 일이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오지 않았어도 되는 일들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나나봐.

하자면 금방 하는데, 그거 사무친다. 3시간이면 할 알바를 3일에 걸쳐서 하고 있으니..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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