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2009 여름, Xu와 제주도. 로모.

2004년의 언젠가일 것이다. 그 메일은 받은 건 후쿠오카에서 함께 규슈대학교에 있었던 Winnie로부터였으니까. Birthday Reminder라는 메일링 서비스에 생일을 입력해달라는 그 메일을 받고는 나도 얼른 가입해 여러 친구들에게 메일을 뿌려 생일을 입력하게끔 했다. 초여름, 또 하나의 reminder가 날아왔다. 후쿠오카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Xu의 생일이 다가왔던 것이다. 작년의 일을 생각했다.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을 때 마침 온라인이었던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으나 바빴는지 대답이 없었고, 나는 하루이틀 지나서야 고맙다며 안부를 묻는 그녀의 답신을 보았지만 따로 메일을 보내지는 않았다. 어쩐지, 모든 게 너무 멀고, 희미함보다는 희박함으로만 느껴졌다.

다시 1년이 지나 reminder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남미 배낭여행 중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개의 메일 주소를 받아적어 왔건만, 연락이 이어진 것은 극소수다. 완전히 별개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끈을 유지하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기대할수록 숨 쉬는 공기가 엷어지는 감각. 즐거움을 나누기도, 괴로움에 의지하기도 편치 않다. 무엇으로 그 때의 그 인연을 이어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보통의 이들과 후쿠오카 친구들은 달랐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여름이었던 그 시절 함께 있었던 리우키, 슈, 우에치군, 마키코. 우에치군과는 다섯 번 만났다. 마키코와는 세 번. 그리고 리우키와 슈와도, 북경에서 다시 반가운 얼굴로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만남은 몰라도, '이대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된다면 어떡하지' 같은 불안감 때문에 먼저 손을 놓는다는 건 얼토당토 않은 일. 그래서 한 번 더, 메일을 썼다. 슈, 생일 축하해. 리우키, 잘 지내니? 나는 즐거운 일도 기운 빠지는 일도 있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소심함으로 쓴 메일에 반가움으로 고양된 답이 날라온다면 그만큼 기쁜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슈는 신나서 고맙다며 안부를 물었고, 리우키는 벌써 결혼했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좀 놀라운 것이었다. 업무 면에서도 개인적인 면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고, 마음이 편치 않다는 내용에 고스란히 그녀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러며 그녀는 이런 제안과 함께 편지를 끝맺었다.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지 않을래?

반가움이 채 젖어들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라도 기대야만 편해질 것 같은 듯이 안고 있는 고뇌가 먼저 전해져 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 묻지는 못했다. 대신 답을 보냈다. 이번 여름, 함께 지내자고. 2006년 북경에 놀러갔을 때 그녀의 침대에서 신세도 졌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 제안 자체가 고마웠다. 내가 해외로 나갈 만한 사정은 안 되니 네가 한국에 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겠다고. 8월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7월이라면 언제든지 오케이라고 했더니, 여러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결국 7월 내에 비자 없이 날짜를 잡을 수 있는 제주도가 우리의 행선지가 되었다. (해외에서 괜히 한국인의 여권을 훔쳐다가 중국인에게 판다는 게 아닌가보다. 그만큼 중국에서의 비자 취득은 복잡하고 힘들고 오래 걸리며 돈이 많이 든다.)

나는 제주도를 다녀온 지 1년도 안 되었기에 두근거릴 일은 전혀 없었지만, 딱 하나 4계절을 모두 보겠다고 마음 먹은 한라산의 여름을 보러간다는 즐거움 하나 이외엔 순전히 친구에 대한 의무감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백수에겐 적지 않은 돈이다. 운전을 못 하는 두 여자가 제주도를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교통비를 줄이려면 숙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굉장히 조사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이 아가씨는 굉장히 "아무거나 좋아" 스타일로("상관없어" 다음으로 저어하는 대답이다) 뒤늦게 북경 관광시 시간 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동선과 이동방식으로 나를 고마움 속에서도 상당히 짜증나고 안타깝게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솔직히 슈 덕분에 시내버스 타는 법은 배웠지만 마지막 날 혼자 자금성에 갔을 때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그런 불안감 속에 간신히 숙소만 정해두고, 날짜는 다가왔다.

이번 여름 Xu와 함께, 제주도.

by kisa | 2009/08/18 23:02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kisa.egloos.com/tb/504488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nomade at 2009/08/19 16:29
사진 너무 이쁘다. 색도... 느낌도...
Commented by kisa at 2009/08/19 21:51
nomade> 헤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초록빛 풀들은 언제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것 같아요 >_<
Commented by nacre at 2009/08/20 08:37
올레길 걸어보고파.
너의 글을 읽고 나도 초 오랜만에 해외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단당ㅋㅋ
Commented by kisa at 2009/08/20 09:13
nacre> 제주도 갈 일이 계속 생긴다면 올레길을 하나씩 정복(?)해나가는 것도 재밌겠다 싶더라.
오호, 긍정적인 파급효과 뿌듯한데? ㅎㅎ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26 23:49
헐..ㅋㅋ 어째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를 방문한 듯.
아.. 난 개인적으로 쇠소깍이 참 예뻤던 것 같아. 해질무렵에 갔는데.....
물길 따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해가 걸려있는데 그 빛이 은은하게 물길을 비추는데..너무 예쁘더라고.....
그땐 할머니를 모시고 갔었던 때라 엄니께서 너무너무 땟목을 타고 싶어하셨지만..ㅠㅠ 뒤로 미뤘지..(할머니 기다리셔서..ㅎㅎㅎ)

정말, 소중한 인연이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상대도 그렇게 여겨주니까. 장하다 kisa!!ㅋㅋㅋ
Commented by kisa at 2009/08/27 14:38
mandoo> ㅎㅎ 그랬었구나. 쇠소깍도 해질녘이 더 예쁜 게로군! 담에 또 방문할 일이 있다면 동선을 그렇게 짜봐야겠어 ^^

음.. 답글 달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나 이 여행기 쓰다가 말았구나... -ㅅ-;
놋북 파업과 함께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