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북이 달린다 :: 아빠, 힘내세요!

거북이 달린다
김윤석,정경호,선우선 / 이연우
어떤영화: ◆♤♧♡

이제 와서 얘기지만 난 김윤석을 알아봤다. 정말이다. <천하장사 마돈나> 때도 아버지의 존재감이 더 묵직했고, <타짜> 때는 "난 왠지 아귀가 제일 좋더라..."했다가 친구들로부터 거의 변태 취급 당하기까지 했었다. <즐거운 인생>에서는 이제 낯이 익었기에 "역시 잘하는구만!"이라고 좋아했고. 그런데 사실 <거북이 달린다>를 보기 전까지는 <추격자>와 함께 이 모든 작품을 하나의 인물로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었다. 단지 작품마다 매번 끌렸을 뿐. 이건 마치 SBS판 제르가디스를 좋아하고 투니버스판 시노하라 아즈마(<기동경찰 패트레이버>)를 좋아했지만 "잘했어, 라이코스!"까지 듣고 나서야 그 성우가 모두 승준님이란 걸 깨닫고 감동한 느낌?

롱런에 힘입어 뒤늦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다시 한 번 배우 김윤석에게 반하면서,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이걸 <추격자>랑 비교하는 거야?!" 마케팅은 이래서 어렵다. 두 남자의 싸움에 포인트를 맞췄다. 하지만 이건 한 남자의 싸움이다. 남편이자 아빠이자, 사나이로서의 한 남자. 이 작품은 추격전이 아니라 "아빠의 기 살리기" 드라마의 관점에서 봐줘야 한다.
5살 연상인 마누라한테는 구박 당해도 반항할 길이 없다. 딸내미는 "아부진 대체 왜 그류?" "됐수, 걍 아부지 쓰슈" 이러면서 자기를 불쌍히 여긴다. 그래도 좀 괜찮은 경찰이라고 해봤자 소싸움 대회 포스터나 붙이고 다니는 게 일상이다. 어떻게든 구멍난 마누라 팬티 한 장 사주고 싶고, 딸내미 학교에 일일교사로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거 방법이 없다. 슬픈 아빠다.
재기를 발휘해 손에 넣게 된 돈을 잃었을 때, 처음에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되찾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얻어맞고 짓밟힐수록 살아나는 건 사나이로서의 자존심이다. 내가 역할로서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서 가슴 쫙 펴야 속 시원하겠다는 마음. 눈 앞에 놓여 있던 돈다발 든 가방을 지나쳐서, 총을 들고 그 놈 앞에 서는 건 스스로의 결단이다.
유행하는 미드처럼 각종 네트워크에 최신 범죄감식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 형사가 오토바이 몰고 달아난 수배범을 쫓는 건 정말 막연한 일이다. 영화는 "범죄 추격전"의 수위가 아니라 "코믹 드라마"의 수위에서 적절한 작전과 액션을 보여준다. 주먹 쓰는 동네친구를 동원하고, 후배한테 필살기를 가르쳐달라고 하다 "내일부터 할게, 내일부터"라며 돌아가고, 평소 안 쓰던 총을 쥐고는 당황해버리는 장면들에선 '인간미가 물씬'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나? 싸움 그 자체보다는 조필성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모습에 주목하면 영화의 깊이가 만만찮다. 그리고 피식 웃는 모습, 건들건들한 걸음걸이, 아내의 매질을 피해 도망치는 동작, 피를 흘리면서 다시 주먹을 들어올리는 눈빛까지, 그 모든 걸 소화해낸 김윤석의 연기는 역시 박수를 얻어야 마땅.
부인역으로 나온 견미리의 연기도 훌륭하고 딸내미도 너무 귀엽고 ㅎㅎ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출&편집의 귀감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군더더기 없고 장면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게 명확한 데다 재빠르게 치고 나가는 전개가 거의 내겐 희열...! 평소 '괜찮긴 한데 1.3배속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은 부디 이 영화처럼 해주길! 이라고 생각했다.
(2009.07.14 / 메가박스 코엑스 / Lon)

by kisa | 2009/07/24 12:42 | I like | 트랙백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kisa.egloos.com/tb/502106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nomade at 2009/07/27 09:22
나도.. 추격자의 그늘에 가려진 영화로.. 생각했는데...
Commented by kisa at 2009/07/27 13:28
nomade> ㅎㅎ 기회될 때 보삼! 유쾌해요 ㅋㅋㅋ
Commented by minx at 2009/07/27 13:08
(포스팅 내용과 관계없지만)
난 여태까지 nomade님이 노다메인 줄 알았음;;
예전엔 비전컴퓨터학원을 버진컴퓨터학원으로 읽더니.. -_-
Commented by kisa at 2009/07/27 13:29
minx>난 초등학교 때 몇 년간 "암행어사"를 "암어행사"라고 읽고
한국 와서 "산수익힘책"을 "산수임힉책"으로 읽고 다녔던 씁쓸한 기억이...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01 00:31
난 촏잉2학년때 [연극을 하기 위한 글을 무엇이라고 하는가?]라는 국어의 주관식 4번 문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문제라는 데 캐흥분하여 당당히, 자신있게 썼지.
[극복]이라고. ㅋㅋㅋㅋㅋㅋ
너무 흥분해서..후...극본을 극복이라고...ㅠㅠ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Commented by kisa at 2009/08/01 00:44
mando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딩 2학년 때도 기억나냐...
난 중1때 [농부]를 당당하게 [famer]라고 쓰고 그 빨간 플러스펜으로 썼던 OMR 답안지를 다시 살펴본 다음 흡족하게 냈던 기억이 난다... - _ -;; 파머가 아니라 페이머.. - _ -;;;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03 00:49
그 농부는 유묭할 듯..ㅋㅋㅋ
바로 아래에도 오타의 흔적이..후..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01 00:30
ㅋㅋㅋ....ㅋㅋ... 난 이 영화를 아는 분이 연극 소개한 다음날 리뷰를 올리셔서..
연극인 줄 알았음..ㅠㅠㅠㅠ

근데 의외로 형들이 좋더이다.
Commented by kisa at 2009/08/01 00:44
mandoo> ㅋㅋㅋ 형들이 좋아효
Commented by mandoo at 2009/08/03 00:48
ㅋㅋㅋㅋㅋㅋ오타작렬 횽아들이 좋아요.ㅋㅋㅋ
평들이<-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