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콩을 들다 :: 웃음바다 울음바다

킹콩을 들다
이범수,조안,변희봉 / 박건용
어떤영화: ◆♤♣♥

기본적으로 재생영화는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는 재생영화는 주로 스포츠나 가족영화인데, 엉망이고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한 집단이 누군가 한 명의 투입으로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해서 변화를 일으키고 절정에서 위기에 닥쳤다가 결국 마음 훈훈해지는 그런 줄거리를 지닌 모든 영화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구조가 싫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 재생영화는 그 뻔한 장르의 특성에 기대에 별다른 노력 없이 찍기 쉽기 때문에 괜찮은 작품을 건지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시스터 액트>는 노래에 기대고 있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줌마들의 혼신 연기의 은덕을 입는다. <킹콩을 들다>는 재생영화의 기본 골격을 충실히 표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품고 있었기에 멋진 영화다. 그것을 슬픔과 아픔이라 해야할까, 한(恨)이라고 해야 할까.

왕년의 괜찮았던 선수가 부상을 입고 촌구석의 중학교 코치로 간다. 정석대로다. 역도에 아무 관심 없었던 어중이떠중이가 모였다. 여기까지도 정석대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친해지고 의욕을 얻고 노력해서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들이 안고 있는 힘든 사정이나 고생담을 부각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역도에 관해서는 <훌라걸즈>처럼 천부적인 재능에 눈 뜨는 것도 아니고, <슬램덩크>처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들은 살아가고 있고, 역도를 할 뿐이다. 그러나 역도는 너무도 슬픈 운동이다.

"여자들이 하면 엉덩이 커지지 허리 굵어지지...
까딱해서 부상 당해서 은퇴해도 수영이나 테니스면 개인 레슨이라도 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데,
이건 헬스장 트레이너가 고작이야? 그것도 바디 빌더한테 밀려서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보성의 중학교에 부임해 역도부를 만들 때까지가 영화는 웃음의 도가니다. 괜찮은 대사 한두 줄, 배우의 훌륭한 연기 몇 번으로 커버하고 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장면 장면이 가관이다. 덩치 큰 여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교감의 방송 테러, 역도부 유니폼이 예쁘다는 살짝 맛이 간 전전전 군수의 딸을 비롯한 가입 동기들, 감사를 대비한 완벽한 훈련(?), 입분 교장선생님의 요가 시범, 운동하는 애들 무식하단 얘기 듣기 싫어 계속되는 특훈과 연필 세 자루와 사전의 15개 넘는 용례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웃음이 빵빵 터진다.

하지만 슬프다. 누구도 역도로 인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이 따스하고, 함께 흘린 땀이 뜨거울 뿐. 잘 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고, 시샘을 당하고 두드려 맞아야 한다. 그 광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여 슬프고,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는 힘을 내야만 하기에 슬프다.
장례식 장면에서는, 그 전의 가장 행복했던 날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 정말 펑펑 울었다. 흐느껴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머리가 아플 정도로 속에서부터 오열을. 극장에서 이렇게까지 울어본 건 <어둠속의 댄서>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을까. 극중에서 이범수는 아이들에게 역도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준 것은 훈련과 지식을 통한 가르침보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관심이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였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는 굳이 아이들이 역도를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아마 아이들은 그가 형편없는 코치라 했어도 그를 끝까지 따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났을 때 너무나 슬퍼, 그 이름 석 자를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노래는... 양희은이 역시 참 잘 불러. 그치?"
"선생님... 추우세요? 왜 항상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계세요?"
"하하... 내 팔이... 불쌍해서... 내 팔한테... 미안해서......"

아무래도 <우생순>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 미안하지만, 그 몇 배로 재밌고 웃기고 가슴 먹먹했던 <킹콩을 들다>에 두 손 번쩍.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을 되새기며 두 팔을 번쩍 드는 엔딩도 너무나 좋았다. 그때까지 흘린 땀이 없던 게 되는 게 아니라는 말에서, 자기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결국은 역도를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고 해서, 동메달을 딴다고 해서, 너의 인생이 동메달이 되는 것은 아니야."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사랑스러웠고. 다들 연기도 잘 하고, 얼굴에 때 낀 시골 여드름 중학생들의 분장도 훌륭하고, 소품이나 배경이나 세세한 생활모습도 좋고. 이범수의 목소리가 진짜 스승님다웠고. 전체적으로 80%가 쾌활하고 20%가 슬픈데, 그 진하기는 동등하게 훌륭하다.
보통은 아무리 보고 좋고 마음에 들었던 영화라도 "여기가 좀 아쉬웠어" "거기를 좀 보완했으면 좋았을걸"하고 적는 나지만, 이번만은 그런 말은 전부 뒤로 미뤄놓겠다. 한동안 날 점유했던 우울을 한 번에 날아가게 만든 멋진 영화. 주변에도 꼭 보여주고 싶다.

*참고로 인용한 대사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서 재구성했기에 정확성은 장담을 못합니다(웃음)
(2009.07.09 / 메가박스 코엑스 / 진영)

by kisa | 2009/07/09 23:53 | I like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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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歡遊 ; 환유 ; 즐겁.. at 2009/07/11 14:20

제목 : [킹콩을 들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인생에 이지봉 ..
킹콩을 들다 - 박건용 Girs, be ambitious! 찌질해보이기까지 하는 역도부원들. 할 수 있는 한 촌스러워 보이는 스타일로 무장시켜놨다. 의 그녀들과는 또 다른 시작이다. 비인기 종목 역도. 남자 선수들이 아닌 여자. 그것도 "소녀". 어쩐지 모르게 웃긴 이 조합은 여섯 명의 역도부 아이들 캐릭터를 제대로 주물럭 거렸놨다. 통짜 허리에서부터 짧은 목까지 천상 역도 선수인 영자(조안), 뚱뚱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빵순이 현정(.....more

Commented by 니야 at 2009/07/10 01:22
오- 볼 영화를 찾고있었다우. 이걸로 낙점. 이런 절절한 추천사는 또 오랜만일세.
Commented by kisa at 2009/07/10 01:25
니야> 쓰고 나서 밸리 좀 돌다보니 의견이 반반이긴 하던데. 전 좋았어요! > _ <
Commented by 환유 at 2009/07/11 14:20
숨겨진 2%를 보셨군요..^^;
Commented by kisa at 2009/07/15 23:59
환유> 사람마다 한 쪽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런 면만 보이는가 봐요 ㅎㅎ 어쨌든 멋진 영화였어요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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