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Sling] Design City Singapore

2009.06.09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날씨다.
간밤에 윤희가 틀어준 <소울메이트>를 보다가 3시가 다 되어 자리에 들었기에, 오늘은 윤희 출근하는 것만 간신히 눈떠 보내고 한참이나 미적거리다 일어났다. 서울에선 매일같이 지니고 다니던 USB를 놓고 오는 바람에 프로그램 하나 깔아보려고 발버둥치다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사진정리도 알바도 하나도 못한 채 나와버렸다. 뚜웅. 오늘도 점심엔 올루와 셋이서 베트남 국수를 먹고 헤어져 고민을 거듭한 동선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이렇게 하면 낭비하는 이동거리가 없을까? 더운 바깥과 시원한 실내가 번갈아가며 조화되어 있는가? 걷다가 알맞은 타이밍에 앉아 쉬고 먹을 만한 스팟이 있는가!

싱가폴에 온 이상 예의로 One Fullerton 앞의 Merlion Park에서 사진 한 장 박아주고. 다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얼떨결에 나도 한 장 받았다. 다리를 건너 Esplande로 가려는데 어찌나 해가 쨍쨍한지! 현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What Can I Do라든가 Hotel California를 따라 흥얼거리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오기 전 찾아본 정보로 딱 한 군데 가볼 곳을 메모해두었는데, 그건 바로 Esplanade 2층에 있다는 예술 도서관이었다. 워낙에 ART를 존중하는 도시라 사알짝 기대를 하고 간 그곳은......

자료실이네. 광화문에 있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자료실 정도의. 책과  CD과 DVD를 빌리고 들을 수 있는. 딱히 이렇다할 구조라든가 화사함은 없는. 이름도 그냥 평범한 library였고 소파와 테이블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듣고 하는 모습이라든가 견학 온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특별함은 없었다. 무용 관련 자료가 놓인 곳은 길다란 마루가 깔려 있다든가, 복도 중앙에 후원자로부터 받았던 92년도 애플 컴퓨터나 무대 소품 등을 전시해놓은 게 특이점이랄까. 사실 DVD 타이틀 중에선 지금껏 듣도보도 못한 작품들이 많아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 이완의 Little voice라든가 NIghtwatch는 없었어 - _ ㅜ 이곳에서 책을 구경하며 두어 시간 있어볼까 했던 기대가 확 식어, 잠시 모디아만 두드리다 가기로 했다. 이곳을 "예술도서관"이라고 칭한 이는 후쿠오카 도서관을 찾아가볼 필요가 있다규!

아직 배고프긴 이른 시간이지만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결국 들어갔다, 맥스 브레너 초콜렛 카페에 > _ < 여러 가지 메뉴가 다 탐이 났으나, 이럴 때는 가장 기본의 대표 메뉴를 먹는 것이 제일! ...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은 건 두 손으로 꼭 감싸쥐는 허그머그가 귀여웠지만 생각보단 묽었어. 그렇다해도 쇼콜라쇼는 초콜렛버튼을 녹여먹어야 하는 거라 귀찮았을지 몰라. 사실은 아까 도서관에서 맥 없이 쉬다왔는지라 굳이 여기 앉아서 시간을 또 보내는 게 조금 아까웠다. 배도 별로 고프지 않을 상태였고. 오전에 그렇게 고민고민해서 동선을 짰음에도 조금씩 어그러진다는 게 바보같이 신경이 쓰였고, 이 이후로도 뭘 해야할지 확신이 안 섰다. 게다가 아까부터 괜히 벨기에 와플이 먹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파는 호화로운 걸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훙, 이렇게 멋진 곳까지 와서 안 해도 될 고민으로 머리를 썩히다니! 그럼 안 돼! 하면서 카메라를 번쩍 들고 가게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지금 있는 곳에선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지, 안 그래?

오후 코스는 IKEA! 예전 이사 갈 때 침대 겸 소파를 구경하다가 처음 알게 된 곳. 심플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이 완전 내 스타일이야! >ㅁ< 원래는 Orchad Road에서 가까운 곳을 가려다가, 그래도 공항쪽이 더 넓고 볼 게 많다는 윤희의 조언에 따라 상당히 멀긴 하지만 그쪽까지 가기로 했다. 싱가폴에서는 완전히 시내 외곽으로 나가는 거지만, 실제 거리를 서울로 치자면 신촌 나가는 것보다 가까울 텐데 뭐 - _ -; 허나 Esplanade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으니, 실제 IKEA의 위치조차 몰랐기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고 같은 길 왔다갔다 하고 그 와중에 괜히 와플 대신 Coffee&Toast에서 카야 토스트 집어먹어주고(힛) 살 때는 별 생각 없이 포장한다고 해서 가는 길에 집어먹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여긴 싱가폴이 아닌가!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에서 뭐 먹고 마시고 껌 씹으면 벌금 내는 거 아냐? =ㅁ=;;; 순간 당황, 패닉. 어쩌지, 하다가 지하철 역 앞에 길다란 계단이 있다.  너무나 재밌게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들 벽쪽에 한 명씩 붙어 앉아 있는 게 아닌지. 나도 거기에 쏙 끼어들어 한 자리를 잡고, 살짝 가슴 졸여 하면서 두툼한 버터에 카야쨈 잔뜩인 토스트를 아구아구 먹었다. 
IKEA에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해서, 지하철을 10 정거장쯤 가고서 또 수소문 해서 버스를 5 정거장이나 가야했다. 도중에 잠도 살짝 보충하고, 버스 안에서는 싱가폴 외곽의 경치를 즐겼다. 도심과는 전혀 다르게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서도, 그 앞에는 또 엄청난 공터가 푸른 잔디를 뽐내며 펼쳐져 있어서, 이 나라의 도시계획은 어디까지인가를 궁금해하게 하였다. 보통은 땅이 남고 수요가 있다면 널럴하게 주택을 지을 텐데, 분명 언젠가를 위해 비축해둔 거겠지? 

드디어 IKEA! 윗층의 입구로부터 차근차근 동선을 따라오다보면 1층의 출구로 나가게 되어 있다. 도중에 지름길도 있긴 하지만, 절대 고민해서 왔다갔다 할 필요없이 루트를 즐기면 된다. 내가 제일 환호했던 것은 "나의 44평방미터 집!"이란 식의 주제로 원룸이나 부부, 가족의 방을 실제 모델을 두고 꾸며놓은 것이었는데, 그 작은 공간을 알차게 그리고 아늑하고 포근하고 아름답고 색다르게 꾸밀 수 있는 가구들이 들어찬 것을 보고 우와우와 탄성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소파에 앉아도 보고, 2층 침대에 올라서도 보고, 부엌의 수납장을 하나씩 열어보고! 눈 앞의 꿈에 그저 어쩔 줄 몰라하며 입은 반쯤 벌어진 채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웃겼다. 정말이지 내 집을 갖고 싶다고!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처음부터 훑으며, 열심히 메모하고 줄자로 재 가며 필요한 걸 하나씩 하나씩 장만해가는 맛에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오는 길에 $1짜리 핫도그를 또 먹었다. 평소에는 배를 곯려서 한 끼니라도 제대로 맛있게 먹는 타입인데 오늘은 자꾸 주섬주섬 뭘 줏어먹게 되네. 원래는 동쪽 끝까지 온 김에 East Coast Park까지 가서 일몰을 볼 예정이었는데 종일 조금씩 시간을 까먹은 탓에 너무 늦어버렸다. 대신 셔틀버스 안에서 창 너머 아름다운 노을을 한 모금. 그리고는 우연히 집앞 정류장이 적힌 노선을 발견해서 버스를 타고 룰루랄라 오다가, 30분이면 될 것 같다는 거리가 20분 동안 전철 두 정거장어치밖에 안 와서 마구 불안해 하고 말았다. 싱가폴 버스는 일단 타고 나면 내가 탄 게 몇 번 버스인지, 노선이 어떻게 되는지 지금 정류장이 어딘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시스템! 알고만 있다면 늦든 돌든 여유롭게 2층 버스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즐겼을 텐데. 안절부절 못하다가 간신히 오늘 지나쳤던 Esplanade 건너편의 다리를 지나자 겨우 숨이 놓인다. 윤희와 단둘이서 내 리퀘스트였던 싱가폴식 볶음국수와 싱가폴식 빙수인 아이스 카창를 먹고. 다시 Merlion Park를 지나 Raffles Quay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밤.

by kisa | 2009/06/21 09:55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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