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Sling] 싱가폴 식도락 파이터::1

그러고보니 윤희가 미국에 가 있었던 3년 정도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그녀가 미국의 대학을 관두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야 겨우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 우리의 만남은 항상 식도락 일색이었다. "내가 끝내주는 치즈케익을 발견했어!" "우리 동네에 초콜렛만 세 가지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 같은 식으로, 주로 먹고, 노래방에 가서 소화시키고, 또 먹는 그런 코스. 장소가 싱가폴이 되어도 그런 점엔 변함이 없었으니 우리의 황금과도 같은 주말은 일어나서 먹고 소화시키느라 돌아다니고 먹고 소화시키고 또 먹는. "먹고 죽자"라기보다는 "먹기 위해 산다"는 좌우명의 콤비랄까.
그 첫 코스는 남들은 패키지 여행 와도 다 먹는다는데 난 이름도 구경 못해봤던 싱가폴 칠리 크랩!
*No signboard @Esplanade
~수박쥬스, 칠리크랩, 갈릭 대나무조개, 하우스스페셜라이스, 갈릭 야채, 만토우

처음 칠리크랩이라 하면 중국식의 매콤한 걸 상상했는데, 우오, 이 질펀하고 찰랑찰랑한 소스는 딱 내 취향! 전혀 칠리하지는 않고 달지만, 국물이 아주 진국. 킹크랩은 꼭 맛살처럼 싱겁고 뻣뻣한데, 이 게는 커다라면서 꽃게처럼 진하고 달고 야들야들한 속살이 맛있어! 마늘이 향긋한 조개와 야채도 아주 입맛을 돋구고, 튀긴 꽃빵 같은 만토우는 소스에 찍어먹고, 볶음밥 위에도 소스를 듬뿍 얹어 비벼먹는다! 기름기 없이 땡땡하면서 들러붙지는 않은 절묘한 간의 이 볶음밥이 놀랄 만한 맛!

...사실 이 날 오전은 간밤의 무모한 음주로 인해 속이 매우 안 좋아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건만, 잠시 자신과의 싸움을 한 뒤에 돌아와 놀라울 정도의 기세로 꼼꼼하게 살을 발라 싸그리 먹어치웠다는 ㅎㅎ 우왕 너무 맛있었어 윤희야 > _ <♡ 맛난 음식으로 완전히 화색이 돈 나는 신나게 Suntec City와 Marina Square를 돌고 다음 예약장소로 향했다!

* shunjuu(春秋) @Robertson Quay, Riverside View
~유즈 츄하이, 츠쿠네, 나스 니쿠즈메, 모찌 부타 마끼, 호타테 마끼, 부타 갈릭 +양배추

이 동네는 아시안 중에서도 일본 타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동네. 일본인이 경영하는 꼬치구이집으로 갔다! 로바다야끼? 아니면 야끼도리? 어쨌든! 자그마한 접시에 두세 개 나오는 꼬치가 절대 싸진 않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무척 세련된 맛이랄까. 고작 꼬치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최상급의 신선한 재료를 정성껏 다듬고, 과하지 않게 딱 알맞은 양념을 하고, 가장 적당한 온도로 여러 번 뒤집지 않고 단번에 구워낸 따끈따끈한 맛.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얇은 돼지고기로 보드라운 떡을 돌돌 감싼 꼬치 맛있었어 T~T 윤희는 칼피스를, 나는 숙취였던 주제에 사랑하는 유즈 츄하이를 또 마셨다 > _ < 산더미 같은 종류에 하나둘씩이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는 것 같은 꼬치였지만 오늘은 3차도 있으므로 적절한 선에서 물러나기! 근처에 있는 Liang Court에 가서 일본슈퍼 Medi-ya를 비롯해 구경하며 또 소화시키기!

          


*Brussel Sprouts @Robertson Quay
~Stella Artois 생맥주, 와인과 갖은 스파이스의 홍합요리, 감자튀김

Clarke Quay에서 Robertson Quay로 이어지는 강변은 깨끗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낮의 더위가 채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녁 바람이 기분 좋은 여름밤, 이곳 벨기에 맥주집에서 토요일 밤의 열기를 즐기는 사람들. 도저히 이곳이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는 다민족성이 싱가폴이라는 나라의 모습일까. 금발 포니테일에 초록 눈 귀여운 아가씨가 주문을 받는다. 홍합을 시키면 무제한 리필해준다는 즉석 감자튀김이 살살 녹는다. 오늘 같은 날은 걱정도 잊고 마요네즈에 칠리소스에 듬뿍듬뿍. 무제한이라는데 한 번 정도 더 받아먹지 않으면 아쉽잖아!
생맥주가 너무도 향이 좋건만 금방 뜨듯해지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얼음잔이나 이중잔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낮에 칠리크랩도 그 맛있는 걸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먹고 있자니 금방 식어서 아쉬웠다. (식어도 진짜 맛있었지만 *ㅠ*) 그것도 두꺼운 도자기나 뚝배기 그릇을 쓴다든가 해서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면 좋을 텐데. 사실, 어떻게 보면 음식을 뜨겁게! 음료를 차갑게! 내는 데 집착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의 기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긴 나라 전체가 이태원? 무엇이든지 알록달록, spinning Singapore의 야경을 즐기며, 다시 생맥주 한 모금.

by kisa | 2009/06/06 23:48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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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omade at 2009/06/14 20:08
나도..여행...
Commented by kisa at 2009/06/16 01:22
nomade> 언니... 여행이 안 되면, 나와 함께 식도락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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