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5일
[Singapore Sling] Friday night Hen party
아아, 공항에 아슬아슬 도착하길 좋아하면서 자리는 또 고르는 내게 이제 웹체크인이란 필수로구나. 급 생각이 나서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이미 많은 자리가 꽉 차 있었다. 내가 자동으로 배정된 곳은 3등분의 맨앞쪽의 맨뒷좌석. 다른 좌석은 3-3-3배열인데 이곳만 두 자리가 나란히 있다. 비행기 날개 바로 옆이라는 게 좀 아숩지만 바꾸지 않고 그대로 앉기로 한다.
공항에 1시간 20분 전에 도착, 웹체크인 전용 카운터에서 보딩패스 확인을 받고(내가 출력해간 A4용지에 그대로 도장을 찍어준다. 공교롭게도 린젤북 오탈자 체크용 이면지였....) 로밍을 하고 면세품을 받고 새로 생긴 탑승동까지 셔틀을 타고 고고씽. (로밍은 Skype가 새로 생기면서 임대료가 무료길래 예약해둔 걸 날려버리고 여기서 대여!) 탑승 개시했는데 최근의 지름 로망이었던 손목시계까지 하나 사고 게이트로 달려갔다. 헙, 서두르느라 손목 체인 줄이는 걸 깜빡했네 ㅠㅠ
옆자리는 중년의 싱가폴 아저씨였다. "Are you going home?"하며 내가 동향 사람인 줄 아는데 이거 살짝 맘 상해해도 괜찮을까? -_-; 발음이 좀 알아듣기 어렵지만 말 걸기 그리고 설명해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좀 말동무가 되어드리다가 이내 부족했던 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담요 덮고 허리에는 베개 두 개 그리고 트래블메이트 목 베개까지 완비! 배도 고파서 괴로웠는데 6시간반 비행에 브런치 하나밖에 안 주다니 ㅠㅠ (사실 첨엔 무려 메뉴판까지 나눠주길래 반갑게 받아들고 아침, 브런치가 나와있길래 살짝 착각했다. 아침은 귀국편용... ㅠㅠ) 그래도 홍콩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아이스크림을 준다! 하고 하겐다즈를 또 기대했더니 끌레도르였... (사실 맛은 비교가 안 되자나용) 결국은 도착하기 30분 전 "저도 저 컵라면 하나 먹을 수 있나요?"하고 나마저도 한국인 스튜어디스 언니를 싱가폴 사람으로 착각해 영어로 부탁해서 농심 김치찌개 큰사발면을 후루룩 쩝쩝 먹었는데 아 진짜 맛없었....
왜인지 공항에만 오면 능숙한 여행자가 되고 싶은 나. 방향도 헷갈리지 않길 원하고 뭐든지 짧은 줄에서 척척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잠시라도 멈춰서거나 간판을 살피거나 물어보거나 지체하지 않고 당당하게 도시행 셔틀버스까지 탑승하길 바라지. 하지만 뭐하러? 줄 서기 싫어서 짐도 안 부치고 앞쪽에 앉아 왔건만 끙, 하강 전에 화장실 들어가 썬블럭 바르는 걸 잊었다. 사실 어차피 급할 건 하나 없는데. 다른 나라 공항에 와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이것저것 신기해 하고 요리갔다 조리갔다 "와아~"하면서 즐거워하면 그것도 재미가 아니리. 완전한 여행자 모드로 공항서부터 멈춰서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표지판도 구경하고 가게도 구경하고, 지하철 시스템도 신기해하면서(최근 도입된 우리나라의 1회용 승차권 보증금제와 같다) city행 MRT에 올라탔다. 고고!
...였는데 바로 두 번째 역에서 갈아타야했고 -_-; 옥외 정류장에 나서자마자 훅- 하고 폐를 채우는 뜨거운 공기. 우와, 숨 쉬기 무거울 정도로 습기가 장난이 아니야. 대체 내가 이 날씨의 싱가폴에 왜 왔더라?!; 하는 후회가 한순간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갔다. City Hall역에서 로밍폰 개시. "자기야~ 나 다음에 내려★" Raffles Place에서 반년만에 그녀를 만났다. 윤희는 함께 있던 나이지리아-영국 출신 친구 Olu(올루)를 소개시켜줬다. 큰 키의 시원시원한 흑인 아가씨 Olu는, 금세 그 통통 튀는 캐릭터가 느껴지는 친구였다. 같이 Booster 쥬스를 사러 가는데, "Bana~na"를 발음하는 모습에서 영국 냄새가 물씬 나더라 ㅎㅎ 다음주에 런던에 돌아갔다고 아주 신나 있는 Olu.
우선은 회사와 아주 가까운 윤희네 집에 들러서 쉬다가 저녁 때 또다른 인도 친구 Nikita와 넷이서 인도 음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 후에는 몇몇이 모여 자그맣게 결혼축하파티를 할 것 같다고 해서, 평소 자주 접해볼 일 없는 만남에 대한 기대에 두근두근! 짐을 풀고 나서 혼자 Raffles Quay에서 Boat Quay로 이어지는 길을 구경하며 Singapore River로 향했다. 굳이굳이 비교하자면 여의도 같은 도심 한복판에 건물들이 하나같이 예술이다. 솔직히, 열심히 한다고 장하다고 토닥거렸던 서울의 '세계디자인수도' 캠페인이 너무 부끄러울 정도다. 이렇게 자유롭고 조화롭고 창조적인 건축물이 널려 있는데. 빌딩은 물론 가게 하나하나가 프랜차이즈가 아니면서 간판이며 실내장식이며 메뉴며 훌륭한 디자인 컨셉을 지니고 있고, 그런 건축물이 조화된 길거리도 마찬가지다. 지하로 지하로 통하는 단순한 통로조차도 뭔가 특색이 가미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놔두지 않았으면서 과하지도 않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사이에 내 안으로 난입해 들어오는 이미지로 가득차, 거리를 그냥 걸어다닌 것만으로 미술관을 몇 개씩 관람한 기분이다. 건축테마투어를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흥미는 있었지만 실제 그걸 목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는데, 진지하게 그쪽을 파고들어볼까 고민하게 된다.
붐비는 프라이데이 나잇 퇴근길, 윤희와 Olu와 조인해 Nikita까지 픽업해서 향한 곳은 인도 음식점 Vansh.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모던하면서 화려한 붉은 빛 인테리어의 가게에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데...
"Surprise~!!"
10명쯤 되는 여자들이 모여앉아 윤희를 반기는 게 아닌가. 알고보니 Olu가 열심히 준비한 Hen Party(총각파티 같은)의 1차전이었던 것이다. 물론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적당히 어울려 지내는 회사의 동료들이 모두 함께 모여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이런 파티 같은 것. 정말 색다른 느낌. 주말에 늦잠 자다 성가셔 하며 일어나 봉투와 청첩장을 챙겨들고 가서 주례는 듣지 않은 채 방명록 적고 식당에 가는 문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 모두들 조용한 캐릭터인 윤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놀라 남편될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고 결혼 계획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하는데, 청문회 같은 분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Olu가 나서서 대변인처럼 답변하고 분위기를 밝게 조율한다. 그냥 웃고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락을 돌리고 장소를 셋팅하고 주문을 조절하고 다음 장소 컨펌을 하면서 대화까지 이끌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윤희를 아끼는지 느낄 수 있어서 참 내가 다 뿌듯했다고나. 사실 나는 열심히 듣기만 하면서 온갖 종류의 인도 음식(이름은 아는 건 사모사뿐, 각종 감자, 두부, 양파 에피타이저와 생선, 새우, 양고기 구이에 버터 치킨, 버섯 카레, 내가 먹어본 중에 제일 맛있는 팔락 파니르, 게다가 난도 두세 종류.)을 종류별로 섭렵하는 데만 열중해 있었지만 말이다. 나중에는 Olu가 "그만 좀 먹어! 술 마실 배도 남겨놔야지!"하며 타박을 해올 정도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 직장인 모두가 지쳐 파하고 나오는데, 올루와 윤희의 눈이 번뜩이며 마주친다. "춤출까?" "그래!" 넘치는 에너지,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녀들의 프라이데이 나잇. 우리 셋은 Clarke Quay로 향해 클럽 Attica에 들어갔다. "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줄을 서서 들어갈 순 없지!" 역시나 지난 번의 안면으로 긴 줄을 피해 옆구리로 샥 들어가는 올루와 우리들. 꽉 들어찬 클럽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우린 한쪽에 몸을 우겨넣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윤희의 18번 중 하나인 Cranberries의 ZOMBIE에 맞춰 몸을 흔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풀거리는 치마에 공간을 가득 메운 드라이아이스에 사람들의 열기에 땀은 흐르고 몸은 움직이고 정신은 취하고. 움직임 앞에 오로지 나와 음악만 있고, 내 앞에 있는 사람과만 눈빛을 마주치고 흐름을 타는. 내게 전에 없었던 프라이데이 나잇, 싱가폴에서의 첫 날 밤.
# by | 2009/06/05 15:48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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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도 잘 안틀어주는 사무실에서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혹사 당하고 있다우 ㅠㅠ
작은 거라도 책상 앞에 마련해보아!!
그리고 피서 계획을 세우며 버티는 거지 > 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