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18일
[일기] 새벽 3시 38분
새벽 3시 38분.
언제나 그렇지만, 최근에는 저조한 컨디션과 함께 더더욱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누워도 잠은 안 오고, 아침에는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일의 악순환. 토요일 저녁엔 역시나 잠은 안 왔지만, 대신 피로와 두통, 그리고 행복한 기분의 합작으로 웬일로 꽤나 잠을 푹 잤는지, 일요일 아침 10시 30분의 알람에 깼다가 다시 자서 눈을 뜬 시간이 오후 12시 57분이었다. 우와. 꿈이 기억나지 않게 잔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고, 이렇게나 늦게까지 잔 것도, 램 수면 주기가 맞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개운하게 일어난 것도 놀랍도록 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래버리면 오늘 밤잠은 다 잤네그려.
우려대로, 깨어난 지 14시간밖에 안 지난 상황에서 잠이 올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두 달쯤 격하게 땡기던 커피가 무기력증과 함께 며칠 안 땡기다가 오늘 공짜 쿠폰으로 큰 사이즈를 마셔줬더니 가슴이 쿵쾅쿵쾅하면서 '너 오늘 잠은 없는 걸로 알아라'며 경고해 주었다.
잠이 안 올 때는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 그러면 최소한 그 다음 날에는 부족한 잠이 절로 찾아올 것이라는 조언도 수긍은 하지만 그걸 늘 적용시켰다간 내 생활은 48시간 패턴이 될 것이므로 무리. 하지만 오늘 밤 그 조언을 안 따르는 것은 더더욱 무리. 그러니까 등이 뽀개지든 어떻든 오늘은 그간 잠을 청하기 위해서 물렸던 상념들을 족족 토해내며 글이라도 끄적여보자는 이야기.
3시 59분.
몇십 개의 문장을 써내려가다가 다시 지웠다. 역시 그간 편한 글쓰기에 너무 길들여져서 다듬어진 문단을 구성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이 썼다간 아무리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이 있더라도 차마 다른 글에 왈가왈부 못할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아, 어구를 하나씩 나열할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이런 틀에 박힌 표현도 정말 구차한데 밤의 어둠에 반쯤 굳어버린 머리로는 뭐 참신한 표현을 떠올릴 기력도 없다. 내 머리는 코퍼스 창고인가. 아니 창고라도 되면 좋겠네. 책 안 읽는 국문과, 활자를 싫어하는 문화소비자라고 스스로를 비꼬았던 것도 이제 더 이상 창피해서 말할 수가 없는데.
4시 07분.
5월 11일부터 시작할 줄 알았던 알바는 계약만 하고 일은 18일부터 개시라 했다. 뭔가 의욕 충만했던 자세에서 "삐익~"하고 방귀가 새어나간 꼴이 되었다. 그래서 무기력증이 찾아왔나. 처음에는 마음을 가다듬었으니 밀린 일을 해치우자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별안간 생긴 잉여 시간을 그냥 아그작 아그작 씹어내려가게 되었다. 이런 시간이 되어서야 하나씩 하게 된다. 어머니 공짜 휴대폰 살펴봐 드리기. 골절 보험금 청구서 작성하기. 이번 주엔 숙제도 해야 하고. 아아, 역시 반동의 힘.
4시 12분.
이런 시간에 깨어 있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유유백서 원고를 하던 때가 마지막 아니었을까. 미드나 오락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부러 새벽을 선택했던 시절. 시끄러운 TV 소리, 자꾸 날 부르거나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고요함 속에 침잠하던. 새벽 3시 정도가 제일 좋았다. 그때 내 방은 현관문 바로 앞에 있었고, 그래서 배달원이 신문을 던지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고 작업량을 확인하고, 조금은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뿌듯해 했다.
4시 19분.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회사에 나가고 싶다. 다음 스테이지로 밟아 올라서고 싶다.
약간의 알바, 약간의 수업, 약간의 자유시간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여름방학이 있을 수도 있을까.
가족과의 관계는 굉장한 진전이 있었다고 믿는다. 이 정도로까지 일굴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다. 대견하다.
축하하고, 감사한다. 참 잘 되었다. 이제 와 내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간 많이 노력했으면서도, 과분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꾸었던 여러 가지에 대해서는, 아직 부끄러움이 많다.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아직도 핑계만 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이후의 8년보다 최근의 1년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갈무리, 총정리이기 때문일 수도.
그렇다고 앎이 행동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더 이기적으로, 더 많이 포기하고 잊으면서 사는 법도 배웠다.
4시 31분.
생각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려다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금세 으스러져간다.
슬슬 잘 때가 되었나보다.
여전히 난, 언어로 사고하기보다는 그림으로 인식하고 그걸 풀어 설명하는 편이 쉽다.
어쨌거나 지금은 의지로 물살을 가르고 앞길을 확보해나가기보다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는 때.
두 팔만 제대로 뻗어둔다면, 일단 파도를 타고 머물러 있거나 운 좋게 다른 해류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잠이나 자자.
# by | 2009/05/18 04:36 | I am | 트랙백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보고 싶구려. 영화나 같이 볼까나.
..난 감기 때문에 몽롱해.;a;
영화는 언제든지 콜. 아프지 좀 마라, 제발. 까르르르.
뭐 하는게 있어야 아파도 덜 눈치 보이지.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