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4일
[일기] Pass, port
여권을 새로 받았다.
전자여권은 생각보다 굉장히 두꺼웠고, 이전에 언뜻 봤던 새 여권과 달리 신원 부분이 표지에 인쇄된 게 아니라 다른 장에 따로 있었다. 구청 언니의 말과는 달리, 예전만큼 찢어지기 쉽게 생겼는걸? 게다가 이렇게 두꺼워서는 복대에 넣고 다닐 때 완전히 구겨질 텐데 말야. 하, 나 참. 여권을 복대에 넣을 일은,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여행 중에 그 난리를 겪고 나서 귀국해 제일 먼저 생각한 일이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것이었다. 흰 배경의 증명사진을 새로 찍어야 했기에 이러저러하게 늦어지긴 했지만, 55,000원을 주고 구청에 가서 신청서를 냈다. 단수여권을 깜빡하고 안 들고 갔기에 입출국 증명서를 한 장 떼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냈던 신청 기록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 기록을 지우기 위해 몇 분 더 기다려야 했다. 발급은5일 정도 걸렸다. 여권을 손에 넣고,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뭐랄까. 50일간 가장 중요했던 것. 나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하나뿐인 물건. 사실 남미에서 그들의 검사 절차를 보고 있자니 위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그들은 한국의 여권 표지가 초록색이든 파란색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당당하게 해주는 증명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라는 마음의 칼을 지니게 해줄 수 있는 물건. 지하에서 혼자, 혹은 두셋이 후레쉬니스 버거를 먹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 자동문을 나서던 날이면, 꼭 뒤를 돌아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체크인 카운터를 바라보곤 했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가방에 여권과 신용카드만 들고 다닐 때면, 진짜 이대로 발걸음을 돌려 이곳을 벗어나는 상상을 하며 살짝 몸을 떨었다.
아직까지 다시 떠날 마음을 먹은 건 아니다. 습관적으로 여행을 부러워 하고 말로는 가자가자 하지만. 아마, 아직 내가 무엇 하나도 힘껏 애쓴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폭식을 했고, 운동을 빼먹었고, 마지못해 수업에 나갔고, 겨우겨우 과제를 제출했다. 몇 개의 이력서에, 몇 개의 탈락에, 어느 정도의 마음 흔들림. 그게 봄의 전부다.
아드레날린이 필요하다. 첨벙 뛰어들고 싶다. 달리고 파고들고 싶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히는 것이 죽도록 두려워졌다. 지금은 누군가 나를 옭죄이고, 떠밀기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약간은 고민하고 있다. 따지고 싶기도 하고, 따지지 않고 싶기도 하다. "뭐 어때" 하면서 깊은 생각을 덜어내면 그만큼 머리는 덜 아프지만,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남아 있다. 변화는 한 가지 요소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연쇄적인 사슬에서 총체적인 적응이 있어야만, 바뀐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셔터 소리가 네 번 들렸다. 사진사는 어느 사진을 고를 거냐고 했다. 웃는 걸로 주세요. 다 웃고 있잖아요, 그나마 눈이 크게 나온 걸로 해드릴까요? 와하하, 눈이 큰 건 포기한 지 오래라서요, 이쪽 편하게 웃은 걸로 뽑아주세요.
노력하다 힘들 때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만큼은 애써왔다고 스스로를 믿자.
저 여권에 첫 도장을 찍을 날을, 기다리자.
이제 진짜 세이슌 니쥬하치방.
전자여권은 생각보다 굉장히 두꺼웠고, 이전에 언뜻 봤던 새 여권과 달리 신원 부분이 표지에 인쇄된 게 아니라 다른 장에 따로 있었다. 구청 언니의 말과는 달리, 예전만큼 찢어지기 쉽게 생겼는걸? 게다가 이렇게 두꺼워서는 복대에 넣고 다닐 때 완전히 구겨질 텐데 말야. 하, 나 참. 여권을 복대에 넣을 일은,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여행 중에 그 난리를 겪고 나서 귀국해 제일 먼저 생각한 일이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것이었다. 흰 배경의 증명사진을 새로 찍어야 했기에 이러저러하게 늦어지긴 했지만, 55,000원을 주고 구청에 가서 신청서를 냈다. 단수여권을 깜빡하고 안 들고 갔기에 입출국 증명서를 한 장 떼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냈던 신청 기록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 기록을 지우기 위해 몇 분 더 기다려야 했다. 발급은5일 정도 걸렸다. 여권을 손에 넣고,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뭐랄까. 50일간 가장 중요했던 것. 나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하나뿐인 물건. 사실 남미에서 그들의 검사 절차를 보고 있자니 위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그들은 한국의 여권 표지가 초록색이든 파란색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당당하게 해주는 증명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라는 마음의 칼을 지니게 해줄 수 있는 물건. 지하에서 혼자, 혹은 두셋이 후레쉬니스 버거를 먹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 자동문을 나서던 날이면, 꼭 뒤를 돌아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체크인 카운터를 바라보곤 했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가방에 여권과 신용카드만 들고 다닐 때면, 진짜 이대로 발걸음을 돌려 이곳을 벗어나는 상상을 하며 살짝 몸을 떨었다.
아직까지 다시 떠날 마음을 먹은 건 아니다. 습관적으로 여행을 부러워 하고 말로는 가자가자 하지만. 아마, 아직 내가 무엇 하나도 힘껏 애쓴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폭식을 했고, 운동을 빼먹었고, 마지못해 수업에 나갔고, 겨우겨우 과제를 제출했다. 몇 개의 이력서에, 몇 개의 탈락에, 어느 정도의 마음 흔들림. 그게 봄의 전부다.
아드레날린이 필요하다. 첨벙 뛰어들고 싶다. 달리고 파고들고 싶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히는 것이 죽도록 두려워졌다. 지금은 누군가 나를 옭죄이고, 떠밀기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약간은 고민하고 있다. 따지고 싶기도 하고, 따지지 않고 싶기도 하다. "뭐 어때" 하면서 깊은 생각을 덜어내면 그만큼 머리는 덜 아프지만,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남아 있다. 변화는 한 가지 요소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연쇄적인 사슬에서 총체적인 적응이 있어야만, 바뀐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셔터 소리가 네 번 들렸다. 사진사는 어느 사진을 고를 거냐고 했다. 웃는 걸로 주세요. 다 웃고 있잖아요, 그나마 눈이 크게 나온 걸로 해드릴까요? 와하하, 눈이 큰 건 포기한 지 오래라서요, 이쪽 편하게 웃은 걸로 뽑아주세요.
노력하다 힘들 때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만큼은 애써왔다고 스스로를 믿자.
저 여권에 첫 도장을 찍을 날을, 기다리자.
이제 진짜 세이슌 니쥬하치방.
# by | 2009/04/14 21:32 | I am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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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같이 먹기 싫은 날이 있지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고파서.
전 포스코 지하 타마티도 애용했어요 =D
헤아려 십 년이 되가도록 생일날짜 하나 못 외우다니... 부끄럽다
일요일 날씨도 좋았고, 분명 즐거운 하루 보냈겠지?
그래 일 년에 단 하루뿐인 날이잖니-
음... 우리에겐 네이트온이 있잖아 ㅎㅎㅎ 문명의 이기가 발달할수록 떨어지는 인간의 능력... ㅋㅋ
덕분에 즐거운 "먹고 찌는" 하루 보냈습니다 크와항
내일아침뱅기타고 나가서
스타바커피한잔들고가서캐널시티 낮라이브 보고
저녁뱅기타고 올까!!!
로 정말로 나가려고했던 그날이생각나는구나;;; 너무좋아서 목이메어서 파스타 남기고;;;
부대비용없이왕복뱅기값만 든다면 나름 갔다올만하다는 상당히 진심이었음;;;
(결국 좌석없어서 못갔지만.. 카드와 유효기간남은여권만있으면 뭐랄까.. 무적이지;;;)
이치란 라멘과 고베 생초코케익과 나가사키 짬뽕이 나를 울리는구나 ㅠㅠ
오호리코엔을 한 바퀴 돌고 하버랜드를 산책하고 그로바엔에서 전망을 보면 좋을 텐데 ㅠㅠ
환율!!!!!
사실, 그거 내 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