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기술] 친구+관계

-.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친구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사회에 나가 있기에 학교 때처럼 매일같이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친구 관계가 유지되는 건 연락을 통해서이고, 만나면 그간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친구들의 근황이 빠지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들에 대해 "요즘 걔는 뭐하고 지낸대?"라고 물어보고 소속이 변했다든가,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 있다든가 하면서 한 바퀴를 쭉 돌아 업데이트를 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된다. 꼭 연락을 해서 어색한 침묵을 깨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궁금하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정도의 호감과 인연이 유지되는 느낌.

-. 인연이란, 탄성이 있는 새끼줄과 같아서, 팽팽하거나 찰싹 달라붙기도 하고 늘어지고 가늘어져서 힘없이 나부끼기도 한다. 표면이 거칠게 삐죽삐죽 나와 있기도 하고, 여러 실로 탄탄하게 꼬여 있기도 하고. 이 새끼줄은 소리없이 느낌없이 시간 속에 흘러 모양을 변화하기도 하지만, 가끔 우리는 그 변화하는 순간을 눈치채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새 아주 가깝게 나란히 걸어가고 있을 때, 혹은 어느 순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그의 소식을 전해들어야만 할 때. 늘어져 있는 새끼줄을 보고 화들짝 놀라 성급히 끌어당기는 경우도 있고, 어느 새 굵게 자라난 것을 보고 흐뭇해 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줄이 저렇게 가늘어진 것에 옛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 저릿함을 느끼지만, 그냥 손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서로 스스럼 없이 "오늘 저녁 시간 돼?"라고 물어서 각각 5번쯤 거절당해도 또 여섯 번째의 전화를 걸어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관계. 그리고 아무런 연락 없이 지내다가 간신히 1년에 한 번 두 시간 정도 만나는데도 가슴 속의 모든 걸 거르지 않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 내 자리에서 안 보이는 곳에서 나와 그 사이의 선이 뚜렷하고 흔들림 없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것.

-. 전공에 대해서, 휴학에 대해서, 알바에 대해서, 진학이나 취업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많은 걸 이야기 나눴던 어린 시절보다는 속내와 여건을 털어놓은 채 진지하게 친구의 의견을 구하는 일이 적어졌고, 각자 신중히 고민한 결과에 대해서 듣고, 그에 대해 예의바른 코멘트를 하는 일은 늘어났다. 만일 내가 친구의 상황이나 결정에 대해서 면전에서 쓴소리를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아낀다는 반증이다. "그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당장에 때려쳐, 왜 바보같이 그런 걸 신경 써?",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그만두면 어쩌려고 그래?" 더 이상 사려 깊은 조언자는 되지 못할지라도, 당사자가 생각지 못한 시점을 들려주고 또다른 대안과 그 장단점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가끔은 정답보다 과격한 수단으로 따끔하게 질책하고 몰아줄 수도 있는 힘. 상대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런 괜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아, 그래?"라고 듣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 부족한 서비스에 대해 콜센터 상담원과 싸우는 게 사명인 양 살아가는 독설가 타입의 내가
평소 '말은 예쁘게 하자'면서 노력하다가 주체하지 못하는 애정과 친밀해지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허물 없이 내뱉은 후
이해받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 겠지.

by kisa | 2009/03/26 12:22 | I reckon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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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inx at 2009/03/27 10:42
공감1표
Commented by kisa at 2009/03/29 19:07
반성 반성
Commented at 2009/03/27 18: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kisa at 2009/03/29 19:07
n> 네 답글 읽고 한층 절망했음... oTL
Commented by 제이 at 2009/05/13 18:07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kisa at 2009/05/14 20:35
제이님 반갑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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