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왓치맨 : 사람은 가고, 가면만 남다


왓치맨
말린 애커만,제프리 딘 모건,칼라 구기노 / 잭 스나이더
어떤영화: ★
뷰포인트: 영상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슬로우모션이 너무 자주 나오기 전까지는 좋다

근 1년 만에 영화 감상을 쓰게 하는 작품은 <왓치맨>. 보고 난 감상이 충격적이어서라기보다는 모종의 의무감이 느껴져서인 듯하다. 내가 이미 본 소설이나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을 기대하는 편은 아니다. 만족한 건 5년간 실망만 느끼다가 5편에서 감독 교체로 만회한 <해리 포터>나(6편이 7.17 개봉이라는 일본 광고를 WBC 미국 현지 생방송중에 보았다... 왜 카타가나로?;) <스타더스트>(이건 원작을 나중에 읽었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정도...? 하지만 <왓치맨>은 원작이 너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예고편도 멋졌고, <씬 시티>처럼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꼭 봐주기로 했다.
결론은,


'아, 재미없어...'


>>내용 누설 많습니다. 영화를 보는 데 딱히 방해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활자의 압박<<


도입부, 가면 히어로들의 역사를 연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처럼 표현한 영상을 보고 입을 떡 벌렸건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슬픈 군상을 강렬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뒤에도 내내 비슷한 식의 영상이 지겹도록 나열되네. 그래서, 원작을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완성된 영화 한 편으로 재탄생시켰을 거라는 기대는 초반부터 깨졌다는 뜻이다. 그냥 보고 좋고 멋있던 장면들을 몇 개 들이파고 대강 설명은 시킨 뒤 영화가 끝날 수 있도록 조합했다는 느낌. 결국은 그렇구나.


캐스팅은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로어셰크의 목소리를 듣고 두근거렸고(마스크의 질감까지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본편에서 마스크가 벗겨졌을 땐 진짜 놀랐다. 이렇게까지 짜리몽땅에 못생긴 것까지 닮았을 수가! 로리는 원작보다 더 멋지다! 외모도 헤어스타일도 코스튬도. 그리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한 닥터 맨해튼을 봤을 땐 경악. 진짜 잘 어울리는 사람 찾았구나... 게다가 원래 모습이 좀 찌질해 보인다는 점에서도 보너스 포인트.
영화를 보니 "찌질해보이지만 사실은 멋있는 나이트 아울"이 원작 캐릭터의 느낌을 너무나 잘 살리면서도 "실제로 너무나 멋있는 댄"이어서 솔직히 좀 반했다. 코미디언은 좀 쉬운 캐릭터긴 하지만 역시 참 잘 해냈다고 생각함. 심지어 실크 스펙터도 좋았다. 문제는 오지맨디아스다. 처음에 얼굴을 보고 깜놀. 이렇게 비리비리한 사람을 오지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총알도 잡아낼 수 있는 사람, "이것만 따라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라는 <바이트 메서드>로 장사하고 있는 사람이 이 얼굴이라고? 심하히 우려했지만 막상 스크린에서 보니 이런 떡대가. 아아, 남자는 키만 크면 멋있어보인다는 건 정말 반칙이야...


.영화는 영상과 액션에 주목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원작의 디테일도 상당 부분 쏟아부으려고 노력은 했다. 1초쯤 나오는 엑스트라의 캐스팅과 의상이나, 광고, 물건들의 재현에도 힘을 쏟았다. 사건의 배후는 3/4를 뜯어낸 뒤 앞과 뒤만 얼기설기 꿰맸지만 그런 과감한 수술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문제는 원작의 팬으로서 <왓치맨>만의 독특한 재미를 대부분 무시했다는 점, 그리고 영화를 즐기는 팬으로서 줄거리에 어떤 흐름이나 메시지 전달, 사소한 소품들의 의미 부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랄까. 사람마다 다르게 읽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작이 에피소드별로 딱딱 나뉘어 끊기며 그 안에서 나름의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데, 순서 배열은 똑같이 하면서 그런 느낌이 없으니 이야기가 종횡무진 왔다갔다 헷갈린다. 처음에 "핵 시계"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거창하게 넣을 거면 중간에 시계 똑딱이는 거라도 한 컷씩 넣어주지.
.영상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인 복고풍이라, 맨 처음에 "화려했던 가면 히어로들의 날은 가고, 다들 늙고 추해지고 좌절해 있다. 킨 법령 후 두 명만이 정부 공식으로 활동했고 로어셰크 혼자 불법적으로라도 정의를 지키려 한다"는 기본 설정이 확 느껴지질 않는다.
.오지맨디아스가 자기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도 아주 심심했다. 게다가 그가 반한 게 알렉산더 대왕을 넘어서서 파라오의 세계였다는 설명은 아예 놓쳐버린 듯.
.닥터 맨해튼이 마음을 바꾸고 로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문제와 직시하는 부분-친아빠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쓸데없이 같은 회상장면을 무려 세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지겹기도 하고 임팩트가 없기도 하고.
.코백스가 들고 있는 피켓에 무슨 글씨가 쓰여 있는지 정도는 한번 비쳐줘야 하는 거 아님?


.괴물과 영매, 작가들의 실종 등을 들어내버리며 노바 익스프레스나 뉴프론티어즈맨의 역할이 줄어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제이니까지 포함시켜 모두가 바이트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는 식으로 뭉뚱그리고 기타 모든 재미-사소한 정보가 하나씩 쌓여가며 분위기를 고조시켜가면서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의 의미를 드러내는-를 무시했다는 점이 심히 실망스럽다. 솔직히 난 원작을 봤으니 그냥 "아 이제 저 씬이 나오는구나" 하고 말았지만 그냥 보면 왜 저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연결되고 갑자기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갈까?

.사실 원작에서 너무나 많은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에서 주는 정보에만 집중했으면 이해가 갔을... 지도? 아니면 해리포터 5편처럼, 싹 뭉뚱그려 분위기만 제시한 것이 나름의 효과가 될지도? 싶지만 해리포터 5편에서는 마지막에 나름의 메시지 전달이 진짜 강렬했단 말이다.
<왓치맨>의 엔딩에서 나타나야 할 부분은 이렇다. 오지맨디아스가 진짜 사명감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 성공에 진짜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한다. 닥터 맨해튼은 이를 긍정하고, 로리는 충격에 휩싸이고 댄은 할 수 없이 인정한다. 오로지 로어셰크만이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며 죽음을 달라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진짜 멋졌지만, 그게 영화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받쳐주어 우러나온 감동 같지는 않다. 게다가 마지막에 오지맨디아스가 마음 약하게 닥터 맨해튼의 동의와 인정을 구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도 사라져 있다. 그 모든 일이 있은 후, 전과 똑같이 살 수는 없는 로리와 댄의 변화한 모습도 없이 똑같은 일상이 계속된다.


.액션 씬들. 맨 처음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코미디언의 죽음도 길었고, 처음 외출했던 댄과 로리의 폭력배 소탕도 너무 길어 닥터 맨해튼이 사라진 충격에 집중할 힘을 잃는다. 이들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건 화재 구출씬에서 충분히 나오므로-정교한 섹스씬과 함께- 시간 모자란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로어셰크의 액션은 다 긴장감 넘치고 좋았지만 왜 죄다 그렇게 잔인하게 묘사하는 데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보다 영화 자체로서도 진짜 실망스러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진지한 대화가 오고갈 때마다 항상 카메라가 두 사람의 어깨 위 샷-즉 대갈치기-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래 진짜 아마추어같이?!! 표정 연기나 분위기의 고조 카메라 워크 이런 거 하나도 없이 두 사람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며 대사만 뱉어내는 게 아주 여럿이었다.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마지막 장면도 원작을 각색한 주제에 그렇게 밍숭맹숭한 다이얼로그로 바꿀 줄이야. 영화 전체에 시니컬함이나 위기감 절망감 이런 건 쏙 빠지고 영웅, 폭력, 섹스만 남은 느낌이랄까. <왓치맨> 영화는, 소설에 끼워넣을 삽화 같은 의미로 쓰였으면 딱일 듯, 영상과 액션에는 치중하였으나 메시지는 저 멀리로 날려버렸다.

덧. 원작 이미지의 재현-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참 파고들 재미가 많다고 본다. 원작 팬이라면 즐길 만한 웨비소드들.
http://www.maxmovie.com/event/eventsub/watchmen_index.asp
덧2. 로어셰크의 팬이라면. 그와 함께 벌이는 수사! 렉이 좀 짜증나지만 일부러 틀린 답을 적으면 로어셰크로부터 실컷 욕을 들을 수 있다. *-_-*
http://6minutestomidnight.com/
덧3. 으악 이건 정말 갖고 싶다 ㅠㅠ 미리 알았으면 누구한테 수입 부탁했지 말이고요.... ㅠㅠ 완벽 더빙 플래쉬 애니메이션! 전편 5시간 25분! iTUNES에서 다운 받을 수 있을까? ㅠㅠ 검은 수송선 이야기&Under the hood도 발매 예정 ㅠㅠ
http://watchmenmotioncomic.com/
덧4. 디테일에 열광하시는 분이라면 여기를... (공식 사이트 이렇게 파보기는 처음인 듯 - _ -;; 해리포터도 엄청날 텐데...)
http://www.thenewfrontiersman.net/

by kisa | 2009/03/22 15:50 | I lik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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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tarLArk at 2009/03/22 15:59
어느쪽도 아니게 되 버린 졸작.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9/03/22 23:11
장면 하나하나 재현하는데만 신경쓰다가 행간에 흐르는 봉합선(?)은 놓쳐버린 느낌이랄까.

...근데 유전공학 관련 설정이 다 빠져버렸는데 부바스티스는 왜 나왔는지 좀 뜬금없더라고요;;;
Commented by kisa at 2009/03/24 00:03
봉합선! 그 표현이 맞네요, 정말 아쉬웠지요.
그렇게 따지면 빠져버린 게 어디 한둘인가요 하하하;;
플로피 디스켓 설정은 열심히 지키면서 어째서 아울쉽과 뷰바스티스가 가능한지는 설명이 없어서 어이 없는... ㅠㅠ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9/03/22 23:40
닥터 맨하튼의 왕ZG
Commented by 하리 at 2009/03/22 23:47
오답은 아닌데 정답도 아니다 가 맞지요.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03/23 00:00
어느쪽도 아니게 되 버린 졸작. (2)

도저히 이젠 까기에 지쳐서 새삼스럽게 까기도 힘들다는.
Commented by mandoo at 2009/03/23 22:33
안 봤기 때문에 미리니름이 섞여있는 아래는 보지 않았어.
생각보다 많이 실망한 작품이구나... 주변에서 수근수근 말이 많아서 볼까 고민했었는데...ㅎㅎ
Commented by kisa at 2009/03/24 00:05
뭐 사실 내용 없는 액션 영화들은 넘치고 넘치므로 영화가 나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단지 원작의 명성과 화려한 마케팅 덕분에 더 까이고 있는 게 아닐까;;
볼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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