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2일
[영화] 왓치맨 : 사람은 가고, 가면만 남다

말린 애커만,제프리 딘 모건,칼라 구기노 / 잭 스나이더
어떤영화: ★
뷰포인트: 영상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슬로우모션이 너무 자주 나오기 전까지는 좋다
근 1년 만에 영화 감상을 쓰게 하는 작품은 <왓치맨>. 보고 난 감상이 충격적이어서라기보다는 모종의 의무감이 느껴져서인 듯하다. 내가 이미 본 소설이나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을 기대하는 편은 아니다. 만족한 건 5년간 실망만 느끼다가 5편에서 감독 교체로 만회한 <해리 포터>나(6편이 7.17 개봉이라는 일본 광고를 WBC 미국 현지 생방송중에 보았다... 왜 카타가나로?;) <스타더스트>(이건 원작을 나중에 읽었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정도...? 하지만 <왓치맨>은 원작이 너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예고편도 멋졌고, <씬 시티>처럼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꼭 봐주기로 했다.
결론은,
'아, 재미없어...'
>>내용 누설 많습니다. 영화를 보는 데 딱히 방해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활자의 압박<<
도입부, 가면 히어로들의 역사를 연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처럼 표현한 영상을 보고 입을 떡 벌렸건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슬픈 군상을 강렬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뒤에도 내내 비슷한 식의 영상이 지겹도록 나열되네. 그래서, 원작을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완성된 영화 한 편으로 재탄생시켰을 거라는 기대는 초반부터 깨졌다는 뜻이다. 그냥 보고 좋고 멋있던 장면들을 몇 개 들이파고 대강 설명은 시킨 뒤 영화가 끝날 수 있도록 조합했다는 느낌. 결국은 그렇구나.

캐스팅은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로어셰크의 목소리를 듣고 두근거렸고(마스크의 질감까지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본편에서 마스크가 벗겨졌을 땐 진짜 놀랐다. 이렇게까지 짜리몽땅에 못생긴 것까지 닮았을 수가! 로리는 원작보다 더 멋지다! 외모도 헤어스타일도 코스튬도. 그리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한 닥터 맨해튼을 봤을 땐 경악. 진짜 잘 어울리는 사람 찾았구나... 게다가 원래 모습이 좀 찌질해 보인다는 점에서도 보너스 포인트.
영화를 보니 "찌질해보이지만 사실은 멋있는 나이트 아울"이 원작 캐릭터의 느낌을 너무나 잘 살리면서도 "실제로 너무나 멋있는 댄"이어서 솔직히 좀 반했다. 코미디언은 좀 쉬운 캐릭터긴 하지만 역시 참 잘 해냈다고 생각함. 심지어 실크 스펙터도 좋았다. 문제는 오지맨디아스다. 처음에 얼굴을 보고 깜놀. 이렇게 비리비리한 사람을 오지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총알도 잡아낼 수 있는 사람, "이것만 따라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라는 <바이트 메서드>로 장사하고 있는 사람이 이 얼굴이라고? 심하히 우려했지만 막상 스크린에서 보니 이런 떡대가. 아아, 남자는 키만 크면 멋있어보인다는 건 정말 반칙이야...

.영화는 영상과 액션에 주목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원작의 디테일도 상당 부분 쏟아부으려고 노력은 했다. 1초쯤 나오는 엑스트라의 캐스팅과 의상이나, 광고, 물건들의 재현에도 힘을 쏟았다. 사건의 배후는 3/4를 뜯어낸 뒤 앞과 뒤만 얼기설기 꿰맸지만 그런 과감한 수술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문제는 원작의 팬으로서 <왓치맨>만의 독특한 재미를 대부분 무시했다는 점, 그리고 영화를 즐기는 팬으로서 줄거리에 어떤 흐름이나 메시지 전달, 사소한 소품들의 의미 부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랄까. 사람마다 다르게 읽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작이 에피소드별로 딱딱 나뉘어 끊기며 그 안에서 나름의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데, 순서 배열은 똑같이 하면서 그런 느낌이 없으니 이야기가 종횡무진 왔다갔다 헷갈린다. 처음에 "핵 시계"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거창하게 넣을 거면 중간에 시계 똑딱이는 거라도 한 컷씩 넣어주지.
.영상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인 복고풍이라, 맨 처음에 "화려했던 가면 히어로들의 날은 가고, 다들 늙고 추해지고 좌절해 있다. 킨 법령 후 두 명만이 정부 공식으로 활동했고 로어셰크 혼자 불법적으로라도 정의를 지키려 한다"는 기본 설정이 확 느껴지질 않는다.
.오지맨디아스가 자기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도 아주 심심했다. 게다가 그가 반한 게 알렉산더 대왕을 넘어서서 파라오의 세계였다는 설명은 아예 놓쳐버린 듯.
.닥터 맨해튼이 마음을 바꾸고 로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문제와 직시하는 부분-친아빠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쓸데없이 같은 회상장면을 무려 세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지겹기도 하고 임팩트가 없기도 하고.
.코백스가 들고 있는 피켓에 무슨 글씨가 쓰여 있는지 정도는 한번 비쳐줘야 하는 거 아님?

.괴물과 영매, 작가들의 실종 등을 들어내버리며 노바 익스프레스나 뉴프론티어즈맨의 역할이 줄어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제이니까지 포함시켜 모두가 바이트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는 식으로 뭉뚱그리고 기타 모든 재미-사소한 정보가 하나씩 쌓여가며 분위기를 고조시켜가면서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의 의미를 드러내는-를 무시했다는 점이 심히 실망스럽다. 솔직히 난 원작을 봤으니 그냥 "아 이제 저 씬이 나오는구나" 하고 말았지만 그냥 보면 왜 저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연결되고 갑자기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갈까?
.사실 원작에서 너무나 많은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에서 주는 정보에만 집중했으면 이해가 갔을... 지도? 아니면 해리포터 5편처럼, 싹 뭉뚱그려 분위기만 제시한 것이 나름의 효과가 될지도? 싶지만 해리포터 5편에서는 마지막에 나름의 메시지 전달이 진짜 강렬했단 말이다.
<왓치맨>의 엔딩에서 나타나야 할 부분은 이렇다. 오지맨디아스가 진짜 사명감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 성공에 진짜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한다. 닥터 맨해튼은 이를 긍정하고, 로리는 충격에 휩싸이고 댄은 할 수 없이 인정한다. 오로지 로어셰크만이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며 죽음을 달라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진짜 멋졌지만, 그게 영화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받쳐주어 우러나온 감동 같지는 않다. 게다가 마지막에 오지맨디아스가 마음 약하게 닥터 맨해튼의 동의와 인정을 구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도 사라져 있다. 그 모든 일이 있은 후, 전과 똑같이 살 수는 없는 로리와 댄의 변화한 모습도 없이 똑같은 일상이 계속된다.

.액션 씬들. 맨 처음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코미디언의 죽음도 길었고, 처음 외출했던 댄과 로리의 폭력배 소탕도 너무 길어 닥터 맨해튼이 사라진 충격에 집중할 힘을 잃는다. 이들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건 화재 구출씬에서 충분히 나오므로-정교한 섹스씬과 함께- 시간 모자란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로어셰크의 액션은 다 긴장감 넘치고 좋았지만 왜 죄다 그렇게 잔인하게 묘사하는 데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보다 영화 자체로서도 진짜 실망스러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진지한 대화가 오고갈 때마다 항상 카메라가 두 사람의 어깨 위 샷-즉 대갈치기-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래 진짜 아마추어같이?!! 표정 연기나 분위기의 고조 카메라 워크 이런 거 하나도 없이 두 사람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며 대사만 뱉어내는 게 아주 여럿이었다.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마지막 장면도 원작을 각색한 주제에 그렇게 밍숭맹숭한 다이얼로그로 바꿀 줄이야. 영화 전체에 시니컬함이나 위기감 절망감 이런 건 쏙 빠지고 영웅, 폭력, 섹스만 남은 느낌이랄까. <왓치맨> 영화는, 소설에 끼워넣을 삽화 같은 의미로 쓰였으면 딱일 듯, 영상과 액션에는 치중하였으나 메시지는 저 멀리로 날려버렸다.

덧. 원작 이미지의 재현-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참 파고들 재미가 많다고 본다. 원작 팬이라면 즐길 만한 웨비소드들.
http://www.maxmovie.com/event/eventsub/watchmen_index.asp
덧2. 로어셰크의 팬이라면. 그와 함께 벌이는 수사! 렉이 좀 짜증나지만 일부러 틀린 답을 적으면 로어셰크로부터 실컷 욕을 들을 수 있다. *-_-*
http://6minutestomidnight.com/
덧3. 으악 이건 정말 갖고 싶다 ㅠㅠ 미리 알았으면 누구한테 수입 부탁했지 말이고요.... ㅠㅠ 완벽 더빙 플래쉬 애니메이션! 전편 5시간 25분! iTUNES에서 다운 받을 수 있을까? ㅠㅠ 검은 수송선 이야기&Under the hood도 발매 예정 ㅠㅠ
http://watchmenmotioncomic.com/
덧4. 디테일에 열광하시는 분이라면 여기를... (공식 사이트 이렇게 파보기는 처음인 듯 - _ -;; 해리포터도 엄청날 텐데...)
http://www.thenewfrontiersman.net/
# by | 2009/03/22 15:50 | I lik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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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유전공학 관련 설정이 다 빠져버렸는데 부바스티스는 왜 나왔는지 좀 뜬금없더라고요;;;
그렇게 따지면 빠져버린 게 어디 한둘인가요 하하하;;
플로피 디스켓 설정은 열심히 지키면서 어째서 아울쉽과 뷰바스티스가 가능한지는 설명이 없어서 어이 없는... ㅠㅠ
도저히 이젠 까기에 지쳐서 새삼스럽게 까기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한 작품이구나... 주변에서 수근수근 말이 많아서 볼까 고민했었는데...ㅎㅎ
단지 원작의 명성과 화려한 마케팅 덕분에 더 까이고 있는 게 아닐까;;
볼 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