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requently Asked Questions


1. "여행 잘 다녀왔어?"

- 네, 잘 다녀왔어요 =D 다녀오자마자 여행기 시작할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게는 안 되고요,
궁상한테 사진을 받아야 하는데 연락하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고 있어요.
아직 발효가 덜 됐는지, 여행 생각하면 궁상 때문에 한숨부터 나오고 갑갑해져서 아직 뚜껑을 열기가 그래요.
그래도 경비 정리하고 카페에 정보 올리고 그러면서 더듬어 보고 그러니 좋네요.  
발 부었다고 했던 건 금방 가라앉았어요. 다행이구요.

2. "복직 언제 해?"

- 좋은 말도 하루에 너댓 번 들으면 싫다는데 요 질문 좀 스트레스가 되네요.
물론 하루에 두 번씩 어른들로부터 결혼하라는 얘기 듣는 것보다야 낫지만
제 안부를 궁금해 하는 친구분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제가 무슨 답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해요.
사무실에는 간접적으로 연락을 넣었는데 "시간 봐서 연락 주겠다"는 답변 이후로 일주일이에요.
이번 주말 지나고 나면 다시 접근해봐야죠.

경기가 나쁘고 어느 회사나 다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문제가 되네요.
(복직하면 저 보험도 팔아야 한답니다)
대부분은 "경기가 안 좋은데 직장 다니는 게 어디냐"라고 말씀하시지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 이왕이면 더 쉬다 와라"라는 얘기도 종종 듣고 있습니다.

1년을 쉬기로 했던 건 처음부터 마음을 굳힌 일이었고 지금 제 상태와 별개로 꼭 진행시킬 거였는데
지금은 이게 팀이나 지역이나 회사나 주거의 문제까지 끼고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뭔가 진전이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그 전까지는 입사 원서 쓰고 기약 없이 기다리던 때와 같이
남의 손에 내 운명의 일부를 맡긴 무기력한 상태로 버티고 있겠습니다.

3. "개강했어?"

- 네, 개강했습니다. 2월 28일 ~ 3월 1일 1박2일의 대학원 교수님+졸업생+재학생 총 워크샵 때문에
그 전날부터 연수원에 입소해서 새벽 4:30에 자기도 하고 3일간 정장에 구두 차림으로 버티느라,
그것보다는 관계의 역학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과 표정관리 때문에 쵸콤 피곤했지요.
워크샵 자체는 저를 제외한 동기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굉장히 잘, 그리고 즐겁게 끝났구요.
다녀와서 14시간 뻗어 있었습니다.

이번 학기는 지롤맞게도 목금토 수업이에요. 이번 학기는 이틀이면 될까 했는데,
어떤 사회적응에 곤란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선생님께서 금요일 저녁 8시에 140분짜리 필수수업을 넣으셨네요.
이제 슬슬 논문이란 것도 읽으면서 도서관이랑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왔습니다.

4. "집에는 별 일 없고?"

- 아버님께서 은퇴하시면서 저의 영웅이 되셨습니다.
더불어 회사에서 노트북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낼름 먹을 예정입니다 ㅎㅎ
부모님은 올해 밭에 무엇을 기를까 고민중이십니다.

5. "아프진 않지?"

- 아프진 않는데 한국에 도착한 이래 뱃속에 기생충 한 마리와 거지 두 마리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식탐을 넘어서 식욕을 넘어서 뭔가가 고장난 듯이 미친 듯이 아침부터 밤까지 먹어대고 있어요.
그냥 흰 쌀밥만 생각해도 침이 고입니다. 이 정도 수준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여행할 때는 하루에 몇 시간씩 계속 걸었으니 늘 배가 고팠는데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먹기만 하니.
친구를 만나 늘 두 접시밖에 못 먹던 와비사비에서 네 접시를 먹어치우고 나서 또 무화과스콘까지 아작낸 후
담날 아침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운동하러 갔다가 본 숫자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날 점심에는 부페식 레스토랑을 가놓고도 한 종류씩 다 못 먹고 패배하고 나왔는데
그러고도 3시간이 안 지나서 또 빵을 사먹었다는...
이토록 스스로의 식탐이 무섭고 제 몸이 싫게 느껴지긴 생전 처음입니다. 
오늘 아침도 헬스에 안 갔어요.

6. "그럼 낮에 뭐해?"

- 집에 있으면 자꾸 컴퓨터만 잡고 있지요. 보통 미드 폐인이라 하면 밤을 새서 보는 걸 얘기하는데
저는 잠은 잠대로 다 자고 다른 일 해야 하는 시간에 미드를 보고 앉았으니 이런 폐인이 없습니다.
사실 배틀스타 갤럭티카 시즌3이 종방인 줄 알고 오늘 오전에 남은 3화를 해치우려고 헬스도 포기했는데
오는 3월 20일날 시즌4가 끝이라고 해서 좌절했습니다. 신경을 끊어야 하는데. 하우스5도 남아 있네요.

일단 집을 나서면, 여러 가지 사무를 해치우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할 시간을 얻는데.
벌써 노트 반 권이 가득 찼는데.
하루에도 포스팅할 이야기가 몇 개씩 넘쳐난다고 뭘 쓸까 고민하다가 일주일간 글 하나 못 쓴 저는 바보라고 해도 싸지요.

왜 박차고 일어나는데 뭔가의 계기를 늘 필요로 하는 걸까요.
새해가 되기를. 새 달이, 새로운 일주일이 되기를. 시침이, 분침이 12시를 가르키기를. 
그리고는 늘 내일부터는, 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이러지 말자고 다짐도 못하겠어요. 반복될 걸 아니까.

하지만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긴다고 해서 바뀌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니까 그냥 무심결에 일어서버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조금 더 햇빛이 비추면, 어느 순간 나아져 있을 거예요.

by kisa | 2009/03/06 16:30 | I am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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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그림자 at 2009/03/06 17:17
하하하하, 미안 미안해.
언제 깐쇼새우가자. 나도 일하고 싶은데 어렵다. 으하하하.;ㅁ;
Commented by kisa at 2009/03/09 00:34
달자> 아니 사과는 아니 하셔도 됨.
깐쇼새우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입수하여 언니를 부르거라!
Commented at 2009/03/06 19: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kisa at 2009/03/09 00:38
S>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시키느라 쉬지를 못...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했으면서도, 이제 와서 그런 명확한 생활을-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노는-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지. 결국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과 반을 왔다갔다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믿어주는 여러분을 의지한 채 머리 텅 비우고 놀아볼게!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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