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10일
[여행일기] 궁상질
원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면 거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항공편이 없어지는 바람에 시계반대방향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루트를 타게 되어 예정일로부터 3일 경과-
나는 완전히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2월 6일까지 간신히 참아누른 것이었는데-
압력밥솥처럼 자글자글 김이 피어오르는-
그래서 부에노스에 가기 전 마지막 도시 이곳 코르도바에서 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떨어지기로 했다. 궁상은 남미의 버스를 욕하며(갓 도착한 버스가 "시트도 안 갈고" 새로 승객을 태우려 한다고 분노하셨음) 얼른 부에노스로 넘어가고 싶어했기에, 나는 하룻밤 묵고 간다고 해야지 싶었다. 여차하면 얘를 10시 버스에 태우고 난 11시 버스를 타면 된다.
얼른 헤어지려는데 ATM에서 돈이 안 뽑힌다. 얘는 여전히 내 돈을 최대한 늦게 갚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환율 떨어지길 기다리며 머리 굴라다가 인출 수수료만 엄청 날리지 싶은데. 결국 20만원 정도만 먼저 받고 나머지 25만원쯤은 부에노스의 민박(우리가 만난 ㄴㅇㅂ카페에서 운영하는)에서 만나서 받는 엄청 귀찮고 불확실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버스표를 사려면 돈을 뽑아와야 때문에 기다리고 등등 알아보다가 터미널에서 2시간이 지난다. 돈을 갖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이에 표가 다 팔려서 얘랑 같은 버스를 타야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라고 걱정하며 터미널 안에서 헤어지기 위한 시나리오를 연구했다. 나는 터미널 바로 옆의 숙소에 체크인을 할 테니 넌 먼저 가서 관광하라고 해야지. 그럼 얘를 보내고 난 천천히 표를 구입하고 코르도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 누나 숙소에 짐 맡기고 가려고."
∑=ㅁ=!
끈질긴 녀석!
할 수 없이 내일 표를 사고 숙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숙소를 보고 나서 별로면 센트로로 가려 했는데 무조건 거기서 묵고 샤워를 해야겠다. 체크인을 하며 "그럼 민박에 언제 도착할지 메일 보내줘"라면서 얼른 인사를 하고 보내버리려는데 돌아오는 대답.
"나 여기서 와이파이 쓰고 가려고."
∑=ㅁ=!
방심할 수 없는 녀석!
게다가 정말 왕싸가지인 게, 늘 남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쓴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사는, "누나 에버런 좀 쓰고 가도 돼?"가 될 것이다. 근데 꼭 집에서 "밥 먹고 나가려고"라면서 엄마한테 밥상 차릴 것을 요구하듯이(물론 이런 일은 우리집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말한다. 저번에도 내가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엽서 쓰고 나간다고 먼저 나가서 기념품을 사든 하라고 했더니 "나도 인터넷이나 하고 있지 뭐" 이러면서 내 개인적인 시간을 망쳐놓으며 말하길래 그 말이 내포한 의미-네 컴퓨터를 내놓아라-를 무시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어쨌거나 이 녀석을 쫓아내야 하는 나는 "쓰고 싶으면 달라고 제대로 말을 해!"라며 갖다주었다. 윈도우 계정을 관리자와 손님으로 분리해놓았기에 켜서 와이파이를 잡은 다음에 로그아웃해서 주지 않으면 안 된다.(이 녀석은 바탕화면에 네이트온이 없으면 그 프로그램이 없다고 생각하는 녀석이다. 게다가 아깐 왜 접속이 안 된다는 거야? 멀쩡히 잘 되는구만) 그리고는 쓰고서 내 사물함에 잠가넣으라고 말하고 샤워를 하러 올라갔다. 자, 이제 개운하게 씻고 나오면 낮잠을 자든 뭘하든 해방이다!
그런 내게 시원하게 샤워실 계단을 내려와 목도한, 여전히 그 녀석이 앉아 있는 장면이 얼마나 묵직하고 더운 온도로 뒷덜미에 내려 앉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순간의 내 표정은 관리가 안 되었으리라) 그런데 더한 뉴스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는 지금껏 만난 사람들이 어울리기 좋다고 추천한 싼 민박에 먼저 갔다가 합류한다고 하더니, 예정을 바꿔 내 행선지에 먼저 오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루만 자고 간다더니, 자기 아는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에 며칠 더 머무를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다!!
젠장, 내일 하루만 쉬고 저 녀석 얼굴을 또 보고 계속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아아, 하늘이시여!!!
감히 주성치 영화를 "쓰레기"라고 단언하고 1.5L짜리 물을 2천원에 사 놓고 자긴 싼 숙소에 가야겠다고 주장하면서 조만간 남미에도 호텔팩이 생기겠다며 그럼 넌 호텔팩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호텔팩은 "비싸지 않다"고 말하는 이런 녀석이랑 끝까지 어울려야 한단 말입니까?!
Shooooooooot!!!
...그 민박 가서 필히 나올 질문에 어떤 얼굴로 대답해야 할지 심히 고민하고 있는 나.
모처럼 받은 하루의 휴일을 이런 녀석 얘기로 30분이나 타자치고 있다니!
얼른 기분을 바꿔 밖에 나가야겠다.
# by | 2009/02/10 04:01 | I am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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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전에 영화라도 한 편 보면 좋겠네. 영화 고파!
일주일남았 [두근두근]
근데 나 6일 야도카리&카리유시/ 7일 츠토무아저씨/ 8일 만게츠
로 벼락치기갈거같애 ㅇ<-<
나두 가서 다이묘에서 크레페 한 접시 먹고 싶당........................... ㅠㅠ
난 그냥 네 글이나 좀 읽고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