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8일
[물빛사막으로] 물빛사막은 어디에
고대하던 것 한 가지만 좋고 나머지는 다 별로인 것과, 고대한 것 한 가지만 쏙 빼놓고 나머지는 다 좋은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을까. 우유니 소금 사막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했다.
애초부터 우유니 때문이었다. 네팔을 제껴놓고 남미를 꿈꾸게 된 건. 물빛 사막에 하늘이 비치는 저 광경을 본다면, 그건 내 한평생 잊지 못할, 후회없이 '참 잘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여행이, 추억이 될 거라고 믿었다. 우유니가 물빛이 되는 건 12-2월의 우기이기에, 여름방학도 포기했다. 내 50일간의 여행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유니만 보면 그것으로 목적 달성이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물은 1월 말이나 되어야 찬다는데, 20일 정도면 고일까? 앞서 만난 사람들이 물이 무릎까지 찼다, 발목까지 찼다 얘기할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건 물빛이 아닌 새하얀 소금사막.
12시간 동안의 불편한 버스를 감내하고 새벽에 도착한 우유니 마을은 춥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거북한 속, 멍한 머리를 감싸쥐고 여행사를 고르고 골라 달려왔지만 보이는 것은 텅빈 소금사막. 썬글라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뿌옇고 거짓같은 세상. 조금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내가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게 맞을까. 하루 앞선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누구처럼, 물이 고일 때까지 우유니 마을에서 기다리는 게 옳지 않았을까. 언젠가, 다시 와야만 할까.
몸도 마음도 컨디션 저조한 상태에서 궁상의 장단에 맞춰 눈속임 사진을 찍는 건 너무 귀찮았다. 한 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실패의 광경을 그만 바라보고 싶었다.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7명을 태운 지프는 하염없이 하얀 사막을 달린다. 방향이나 제대로 알고 다니는 걸까. 기사가 운전하다 졸아도 아무것도 박을 게 없을 거라는 농담에 조금 웃었다.
저 멀리 작은 산들이 수평대칭으로 보이는 것은 물이 있다는 뜻 아닐까? 궁상은 신기루라면서 내 말을 잘랐지만. 저기 어딘가 물이 있다. 눈 앞에 보이는데 갈 수는 없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보려 애썼다.

이윽고 풍경은 바뀌어 드문드문 풀이 난 거친 사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곳에 밭작물이 가지런히 심겨 있었고 허수아비도 보였다. 지프도 가기 힘들어하는 돌길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 들판의 야마, 그리고 더욱 색을 또렷이 해가는 하늘. 누구도 말이 없고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본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한 길이 아니라, 이 자체가 하나의 여정인 것만 같다. 서울 테헤란로를 여기 가져다 놓아봤자 얼마나 차지할까. 이렇게 광활한 대지를 멈추지 않고 달려본 일이 있을까. 이대로 하염 없이 달리기만 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멈춰선 마을엔 오후의 햇살 아래 야마가 짧은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청년들의 공 차는 소리 외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더운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의 고요한 하루. 오리온 자리 안쪽으로만도 수십 개의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밤하늘. 오히려 우유니의 모습보다 이곳이 더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이번 여행은 스팟과 스팟을 연결한다기보다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있는 기분이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앞을 바라보며 타박타박. 무언가를 놓쳐도 다른 어딘가에서 충족하는.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누리고, 즐기는 마음. 집 생각이 미친 듯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이 내 일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안 들고. 그저 발걸음을 옮기는 하루하루.

# by | 2009/01/18 02:07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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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조금 아쉬웠는지 몰라도.. 나는 뭐랄까. 사진에서 언니가 말한 그 느낌이 풍기는데..
헤헤..
"누나 세로로 한 장만" "누나 땡겨서 오른쪽으로 나오게" "누나 가로로 한 번 더"
ㅠㅠ
저 하늘 반 가득 하얀 사막 사진 너무 멋지다...
내게는 기억도 사진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