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9일
[이런습관] 가게 말아먹는 여자
지난 목요일, 회사 근처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바로 튀겨낸 얄팍한 튀김옷, 선명한 다홍색에 새콤함이 혀를 찌르는 훌륭한 깐풍기의 주인공, <용용방>의 문에는 "영업 안 합니다, 신문 넣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성의 없는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아뿔싸. 또 한 군데 골로 보냈구나. 중국집 치고 세련되면서 팬시한 디자인에, 깐풍기는 물론 쟁반짜장과 사천굴탕면, 그리고 땅콩소스가 고소한 중국식 냉면이 무척 맛있었던 곳인데. 회사 회식을 여기로 끌고와서 도장 30개를 채워 깐풍기를 한 번 먹고, 또 다 채운 도장 30개가 내 지갑 속에 2년째 묵어 있었는데. 뱀경, 중국집 회동은 물 건너갔구나. 하긴, 얼마 전에 팀원이 한다는 말이, "언니, 언니 가고 나서 우리 용용방 끊었잖아~"랬다. 저녁 시간엔 참 분위기 괜찮고 조용해서, 내 송별회를 했던 곳인데.
그 전인 수요일은, 사장이 바뀌고 주방장이 바뀌고 메뉴가 바뀌고 가격이 바뀌고 맛이 바뀌어버린 인도카레 전문점 <탄>이 바로 옆골목에서 비슷한 맛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서 달려갔다. 강남역 뒷골목은 요즘 카레점으로 넘쳐나고 있는데, 그 중 카페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강렬한 향으로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던 [vin103]이 바로 그곳이라는 거다. <탄>과는 전혀 다른 컨셉의 모던한 인테리어에(하긴 <탄>은 파스타집 인테리어를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했었다) 메뉴도 커리, 꼬르마, 마살라밖에 모르는 나를 헷갈리게 만드는 용어들 난무여서 미심쩍어 했지만, 새우 꼬르마의 건데기 조금 소스 철철 그 맛은 제대로였다. 게다가 런치세트에 난 1/2조각이라니 이런 센스. 잃어버렸던 가게가 살아돌아오는 경험은 처음이다. 행복했다.
조용한 카페로 가자! 대체 강남역 어디서? 지난 달부터 세 번째, 나는 [cafe ROJU de]에 전화를 걸어봤다. 자동연결음만 흘러나오고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시티극장 뒤편, 3층으로 직접 올라가려 했더니 1층이 널부러져 있는 소파와 나무조각.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은 스티커를 떼어버리고 검정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진짜로 망했구나. 하긴. 그 넓은 공간, 그 편안한 인테리어, 야외 테라스, 6인용 ㄷ자 푹신한 좌석,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좁은 책장 10개쯤 가득 채운 책+만화책, 공용의 컴퓨터가 무려 두 대, 무한리필 자기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원두커피, 홍차는 티백이 아니라 주전자째로 우려주는 이곳이 늘 한가롭고 여유로와서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는 내내 노트북도 안 들고 와서 알바할 수 있어서 애용했는데. 다음에 친구들이랑 오면 저녁에도 꼭 와주겠다 결심했는데. 손님이 없어서 좋았는데. 손님이 없어서 망했구나. 7개만 채우면 음료가 하나 공짜여서 6개를 채웠는데, 강남에서 유일하게 맘에 들던 보금자리가 한 곳 없어졌구나.
하긴 우리 회사 앞에서 유일하게 밥밥밥을 벗어나 샌드위치나 볶음면 등을 먹을 수 있던 <프랭키즈>도, Lavazza 커피가 맛있어서 애용했는데 도장 10개를 찍고 타이밍을 벼르고 있었으나 휴직 후에는 너무나 회사에 가깝다는 이유로 못 갔더니 어느 날 빠져 있었다. 그래도 5년은 넘게 버티고 있던 가게였는데. 실내가 밝고, 좁지만 아늑해서 좋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다 망해"라는 걸 처음 인식한 건, 역시 명동의 [pamian]때였다. 때는 2002년.
"우동국수, 쌀국수, 튀김국수 중 하나를 선택한 후, 기호에 따라 싱가폴, 태국, 베트남, 몽골, 일본, 말레이시아, 중국의 7가지 맛 중 하나를 선택,
마지막으로 요리에 들어갈 재료 야채모듬,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해물모듬 중 하나를 선택한다 *^^* 이런 걸 바로 골라먹는 재미라고 하는 거다~"
매일이라도 가고 싶다고 열광했던 이 가게가 단 두 번 방문만에 문을 걸어잠글 줄이야. 나는 본사까지 수소문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문 열 예정이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사라지는 거야?!
생각해보니 때는 2000년으로 거슬러올라가야겠다. 선릉역 <비손>이라고 하면 아직도 "아아...!"하고 먼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를 먹여살리셨던 사장님. 고소한 쫄면 순대볶음, 산뜻한 라볶이, 살얼음 동동 냉면, 떡이 쫄깃한 시큼 김치찌개, 가끔씩의 사치 돌솥불백, 두부와 계란의 합체 순두부, 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밥의 맛. 그 작은 가게에 한뼘만한 의자에 옹기종기 끼어앉아 3000원으로 야자할 에너지를 얻었던 곳. 마지막 날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셨는데. 그 얼마 뒤에는 재건축으로 <현이네> 포장마차도 철거당하고 나는 맛있는 쫄면볶음을 먹을 곳을 영영 잃고 말았다. 신장 때문에 몸이 퉁퉁 부으셨던 현이네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던 직접 끓인 쇼콜라쇼와 레이디그레이밀크티를 팔던 [cafe A]도 사라졌다. <카오산>은 좌석 4개였을 때의 맛을 잃고 말았다.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 멋진 스카이뷰의 <딜마티룸>도 그 다음번에 클로징 파티를 했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나에게 "좋은 가게"란 당연히 음식 맛이 좋은 게 기본이지만, 한적하고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앞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소리를 질러야 하고, 심한 소란에 온 정신을 빨려버리고 공기가 탁해지고 좌불안석이 되어 얼른 자리를 떠야만 할 것 같은 곳이 아니다. 포근하고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상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편안해지고, 정성을 들인 음식이 입을 즐겁게 해주고, 그 맛을 나누면서 모두의 소중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곳. 그런 곳은 아주 친한 이들에게만 귀띔해준다. 그 분위기를 소중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그러다 손님이 안 늘어서,
망하는 것이다. oTL
P.S. 그래도 이제 인디밴드까지 말아잡숫기 시작한 모 누님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중이다.
그 전인 수요일은, 사장이 바뀌고 주방장이 바뀌고 메뉴가 바뀌고 가격이 바뀌고 맛이 바뀌어버린 인도카레 전문점 <탄>이 바로 옆골목에서 비슷한 맛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서 달려갔다. 강남역 뒷골목은 요즘 카레점으로 넘쳐나고 있는데, 그 중 카페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강렬한 향으로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던 [vin103]이 바로 그곳이라는 거다. <탄>과는 전혀 다른 컨셉의 모던한 인테리어에(하긴 <탄>은 파스타집 인테리어를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했었다) 메뉴도 커리, 꼬르마, 마살라밖에 모르는 나를 헷갈리게 만드는 용어들 난무여서 미심쩍어 했지만, 새우 꼬르마의 건데기 조금 소스 철철 그 맛은 제대로였다. 게다가 런치세트에 난 1/2조각이라니 이런 센스. 잃어버렸던 가게가 살아돌아오는 경험은 처음이다. 행복했다.
조용한 카페로 가자! 대체 강남역 어디서? 지난 달부터 세 번째, 나는 [cafe ROJU de]에 전화를 걸어봤다. 자동연결음만 흘러나오고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시티극장 뒤편, 3층으로 직접 올라가려 했더니 1층이 널부러져 있는 소파와 나무조각.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은 스티커를 떼어버리고 검정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진짜로 망했구나. 하긴. 그 넓은 공간, 그 편안한 인테리어, 야외 테라스, 6인용 ㄷ자 푹신한 좌석,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좁은 책장 10개쯤 가득 채운 책+만화책, 공용의 컴퓨터가 무려 두 대, 무한리필 자기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원두커피, 홍차는 티백이 아니라 주전자째로 우려주는 이곳이 늘 한가롭고 여유로와서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는 내내 노트북도 안 들고 와서 알바할 수 있어서 애용했는데. 다음에 친구들이랑 오면 저녁에도 꼭 와주겠다 결심했는데. 손님이 없어서 좋았는데. 손님이 없어서 망했구나. 7개만 채우면 음료가 하나 공짜여서 6개를 채웠는데, 강남에서 유일하게 맘에 들던 보금자리가 한 곳 없어졌구나.
하긴 우리 회사 앞에서 유일하게 밥밥밥을 벗어나 샌드위치나 볶음면 등을 먹을 수 있던 <프랭키즈>도, Lavazza 커피가 맛있어서 애용했는데 도장 10개를 찍고 타이밍을 벼르고 있었으나 휴직 후에는 너무나 회사에 가깝다는 이유로 못 갔더니 어느 날 빠져 있었다. 그래도 5년은 넘게 버티고 있던 가게였는데. 실내가 밝고, 좁지만 아늑해서 좋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다 망해"라는 걸 처음 인식한 건, 역시 명동의 [pamian]때였다. 때는 2002년.
"우동국수, 쌀국수, 튀김국수 중 하나를 선택한 후, 기호에 따라 싱가폴, 태국, 베트남, 몽골, 일본, 말레이시아, 중국의 7가지 맛 중 하나를 선택,
마지막으로 요리에 들어갈 재료 야채모듬,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해물모듬 중 하나를 선택한다 *^^* 이런 걸 바로 골라먹는 재미라고 하는 거다~"
매일이라도 가고 싶다고 열광했던 이 가게가 단 두 번 방문만에 문을 걸어잠글 줄이야. 나는 본사까지 수소문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문 열 예정이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사라지는 거야?!
생각해보니 때는 2000년으로 거슬러올라가야겠다. 선릉역 <비손>이라고 하면 아직도 "아아...!"하고 먼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를 먹여살리셨던 사장님. 고소한 쫄면 순대볶음, 산뜻한 라볶이, 살얼음 동동 냉면, 떡이 쫄깃한 시큼 김치찌개, 가끔씩의 사치 돌솥불백, 두부와 계란의 합체 순두부, 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밥의 맛. 그 작은 가게에 한뼘만한 의자에 옹기종기 끼어앉아 3000원으로 야자할 에너지를 얻었던 곳. 마지막 날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셨는데. 그 얼마 뒤에는 재건축으로 <현이네> 포장마차도 철거당하고 나는 맛있는 쫄면볶음을 먹을 곳을 영영 잃고 말았다. 신장 때문에 몸이 퉁퉁 부으셨던 현이네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던 직접 끓인 쇼콜라쇼와 레이디그레이밀크티를 팔던 [cafe A]도 사라졌다. <카오산>은 좌석 4개였을 때의 맛을 잃고 말았다.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 멋진 스카이뷰의 <딜마티룸>도 그 다음번에 클로징 파티를 했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나에게 "좋은 가게"란 당연히 음식 맛이 좋은 게 기본이지만, 한적하고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앞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소리를 질러야 하고, 심한 소란에 온 정신을 빨려버리고 공기가 탁해지고 좌불안석이 되어 얼른 자리를 떠야만 할 것 같은 곳이 아니다. 포근하고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상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편안해지고, 정성을 들인 음식이 입을 즐겁게 해주고, 그 맛을 나누면서 모두의 소중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곳. 그런 곳은 아주 친한 이들에게만 귀띔해준다. 그 분위기를 소중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그러다 손님이 안 늘어서,
망하는 것이다. oTL
P.S. 그래도 이제 인디밴드까지 말아잡숫기 시작한 모 누님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중이다.
# by | 2008/12/19 11:16 | I reckon | 트랙백(1)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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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친구들 만나면 뭐해?
요즘 친구들 만나면 뭐하나?(남자 친구들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이제 소주와 새우깡 그리고 친구들만 있다면 마냥 즐거운 청춘은 끝났다치더라도 이건 좀 심하......more
말아먹는 게... 낫나요?!
좋아하는 가게는 아는 사람이 많기보다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ㅁ;
물론 나와 혁정이 같은 경우에는 음식점이라기 보다는 술집이지만,
어쨌든 이유나 정황이 모두 나와 똑!같!아!
정말 마지막 두 단락은 캐공감이라고나 해야하나...?
우리 같이 다녀서 좋아하는 가게 몇개 찾으면 다 망하겠는걸~
오늘 이 비슷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kisa님 이글루에 트랙백 주소 따갑니다.ㅋㅋ
청해수산도 망했구 ㅠㅠ
마담밍도 맛이 변했구 ㅠㅠ
스테키판 없어진 지 오래구 ㅠㅠ
양이 줄었으면 줄었지....
초코칩 쿠키에 초코칩 줄어드는 것도 나쁘죠!
우리 미츠루군 ㅠㅠ
..맛이 변하더군요 -_-
갈 때마다 혹시 맛이 변했으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는 것도 지겨워요 ㅠㅠ
제가 좋아하는 삼각김밥, 컵라면, 샌드위치, 과자, 음료수...
뭐 하여간 다 일년을 못가고 절품되데요...
다행히 전주비빔이랑 소고기고추장 삼각김밥은 장수 아이템인가 봅니다 T~T
요즘은 대학 다니면서 간간히 밥을 사먹는데, 4000원에 우동과 유부초밥을 주는 모 우동집이 망해서 와플을 팔고 있었다능...OTL
...돈 없으면 무리죠.
그런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격을 받으면서 행복을 베풀고 있는 게 아닐까요 =)
그래도 망하지만.
ㅎㅎㅎ
역시나 그 점 때문인지 결국 가게 접더군요. 문득 들렀다가 공감이 들어 적어봅니다.(OTL)
체인임에도 불구하고 Tullys랑 더불어 한가하고 좋은 곳이었는데 아쉬워요..
콩다방 별다방은 완전 청세포파괴공간 같아서;;;
한적한 몇몇 지점은 언제나 비밀이죠 ㅎㅎ
=_= 그 시간속에서만 존재하던 곳이 되어부렀등
쫄면 면발도 oTL
하아... 손님 없고 옆계단으로 올라가면 현관문을 거치지 않고도 2층으로 올라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었.... 그래서 망했죠... ㅇ<-<
옆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또 저희들의 천국이죠 ㅎㅎ
콜라 하나에 빨대 6개 꽂고 코믹 전날 코팅 오리기 ㅎㅎㅎ
이제 1시간쯤 아무것도 안 시키고 친구 기다리는 건 기본인데...
그래도 전 말아먹진 않았어요 ( '')>
좋아하던 이유는 사라져가..
(예를 들면 한적한 분위기와 맛있는 요깃거리가 저렴하게 팔던 카페!!였는데
어느새 북적거리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던지..)
나도 좋아하는 가게들이 발길을 끊자 망했을 때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야 그래도 발길을 끊고 나서 망하는 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