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기술] 다름에 대한 위협

사실은, 모두들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다름을 비웃거나 수준 아래의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 아니면 그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고개의 갸웃거림.
실제로는 이해해 무엇할 일이더냐.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놔두면 될 것을. 그러나 나의 길과 너의 길을 비교하고, 그것을 갈라놓은 가치와 판단기준을 시뮬레이션해서 너의 것은 답이 나오지 않고 나의 것은 옳다고 믿고 싶어한다.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믿음에 의지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실제로는, 맞는 길도 틀린 길도 없을 터인데. 표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벗어난 것들을 질책하는ㅡ남을 혹은 스스로를ㅡ 행동은 특히나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 굶어 죽어도 선비여야했던 도리, 혹은 명분들. 무엇무엇다워야 함. 아주 깊게 뿌리박혀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의지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또한 다른 수많은 가치들과도 연결되어 있어 무작정 바꿀 수도 없겠지.
나는 오늘 다른 사람의 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나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로 구현되는지 변명을 늘어놓았으며, 그 말들에 대해 후회하다가 갑자기 스스로를 변호하고는 허탈해 했다. 내가 선택한 다름을 인정해주길 바라면서 그들의 다름은 생각없음으로 치부했고, 세상엔 수많은 다름이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대의 시선에 얽매여 위축되었고, 그 모순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음에 굴복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위협당하고 있음을. 그러나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결론이 존재하는 시점이란 없으며 끊임없이 소소한 것에서부터 자기 생각에 당당하게, 관용과 상냥함,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현재 조금도 그러하지 못하다면 내일은 약간 더 그럴 수 있게 다짐만이라도 골백 번 하자고. 생각하며 오늘의 면죄부, 혹은 참회록을 쓴다.


*덧붙여.
그러면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이해받기를 갈구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눈빛을 보내고. 이해받고자 하는 욕심.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어하는 갈망. 고독에 대한 두려움.
다른 채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언제쯤 영혼의 단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by kisa | 2008/09/23 22:21 | I recko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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