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수강신청중

나도 명색이 백수이기에 앞서 학생이라고, 수강신청을 한다.
지난 학기에는 선배들 추천대로 동기들끼리 다같이 들었는데, 다 적당히 균형잡혀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좀 더 내 마음에 드는 과목들을 찾으려 한다.
-라고는 해도, 욕 나올 정도로 개설 과목 수가 적어서 그 안에서 잘 굴려야 하지만.
가능한 만큼 첫 주에 강의를 들어보고 결정한다는 취지로, 어제는 한 시간에 두 군데도 가 보고 동기들끼리 나뉘어서 각 과목을 정탐했지만 딱 이거다! 하는 멋진 강의가 없다.
오늘 마지막 전공수업을 하나 들으면서 또 생각하게 된다.

아 정말, 나하고는 안 맞는 것들이 있구나.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무엇이든 고되어도 헤쳐나갈 수 있는데, 그 마음이 없으면 못 하겠구나.

과제도 발표도 적고 널럴했으면 싶은 마음.
나의 전공에 맞추어 유익했으면 하는 마음.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파고들었으면 했던 것을 다루었으면 하는 욕심.
시간표도 효율적으로 짜였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교수님의 강의실력과 카리스마.

지난 학기에는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이 안에서 평균점 이상을 얻었는데(내가 결과적으로 뭘 얻어냈는지는 차치하고) 이번에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골치를 썩힌다.
화요일의 두 개 수업은 하나는 날로 먹기 하나는 내 흥미의 빡센 수업으로 그냥 확 결단을 내렸는데, 오늘 두 수업은 정말이지 고민된다.

하나는 교수님이 실력파시고, 평소 내가 가졌던 사상과 닮아 있는데, 훨씬 강하셔서 과제 로드가 장난이 아니다.
매주 논문 두 편 요약과 논평에 중간 발표 하나에 기말 발표까지?
그런데 주제는 나쁘지 않지만 지난 학기 수업과 겹쳐지고 아무래도 맛만 보고 넘어가는 식이 될 것 같단 말씀이야.

다른 하나는 또 기업체 높으신 분에, 뜬구름 잡는 선문답이 올 것 같은 경영 이야기. 무엇보다 성과가 중요하다는.
나는,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성과는 무의미하고 나올 수도 없다고 생각해.
틀린 말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걸 전면에 드러내어 놓고 살고 싶진 않아.

그래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여러 가지를 얻어가는 훈련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매 시간 불편한 토론의 분위기 속에서 네가 싫어하는 것들에 머리를 담글 것이냐, 의 문젠데.
후자를,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극복하는 장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결국은 무얼 하든 내 의지의 문제.

어제 늦저녁부터 찾아온 편두통과 씨름하다가 또 지쳐버리고 말았다.
일 때문이란 걸 알지만, 생활비를 못 벌어도 또 아무것도 못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일 거라는 걸 알기에, 더 이상 할까, 하지 말까의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그보다는 좀 더 쉽게, 마음 편하게 병행해나갈 방법을 찾아야지. 유익하게.
아아 그래, 같은 얘기인데도 참,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하느냐, 어느 순서로 말하느냐에 따라 스스로에게도 다르게 들린다.

애초의 계획대로, 그리고 편두통의 도우심으로 개강 파티는 제꼈다.
결정은 한 번으로. 이제 내게 가능한 일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느냐만 생각하자.

by kisa | 2008/09/03 22:50 | I am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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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ndoo at 2008/09/04 00:05
아아 편두통 정말 속을 썩이는구나...
두통이 오는 건 턱과 목때문이라던데.. 잘 만지작 거려보세용.
한 결 기분이 나아질지도...

나는 대학교가면 내가 원하는 수업만 골라서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수업들은 대부분 비인기종목이라...
폐강되버리거나... 수업이 너무 광범위하거나..또는 지루하기 짝이 없더라는 좌절감을 맛봤지..ㅠㅠ

결국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뭔가 배우고자 한다면 남는 것이 있을테고..
그렇지 않으면 [고통]만 남겠지;;?
결정은 결국 스스로 내리게 되어있으니, 네 선택이 후회없기를 바라오.

노트북은 이제 생활의 단짝이 되신게요?

아, 그리고 한 번 만나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소!(대단한건 아니고..ㅋㅋ)
Commented by kisa at 2008/09/06 23:36
목 마사지 굉장히 열심히 하지. 이 날은 그 전날부터 만져줬는데 결국 발병하고 만 것임.
결국은 스트레스랑 비례하는 것 같긴 해.

난 결국 토요일 수업까지 나가게 되었는데 이게 전에 들었던 교수님이지만 수강 인원이 적으니 또 새로워서 오늘 오전부로 고민을 확 덜었음. 대신 주말에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슬픔이 ㅠㅠ
하지만 내가 판단하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걸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노트북을 A4 대봉투에 넣어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나 ㅋㅋ
이것 때문에 육신의 고통은 더해간다오 ㅎ
네 수난의 강도가 요즘 더해가는 것 같던데 연락을 하시오!
보고 싶다 :9
Commented by wbin at 2008/09/04 01:12
수강신청이 하고 싶어라아아...-_ㅠ
그나저나 슬슬 내 생일 다가 오는데 한번 보자고!
Commented by kisa at 2008/09/06 23:41
이직 준비라도 열심히... ㅎ
당일 비워두면 밥 사주는 고야? *'-'*
아님 소라 언니랑 한가운데 생일 해서 두 분이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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