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시간

*
정말이지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했던 일을
몇 분 남겨두고 그냥 손에 맡겼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센티멘탈한 기분으로, 가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생일 축하해요-
무엇이 어쨌건 간에, 태어난 날이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함을 기뻐해주고 싶으니까.
먼 길을 돌아돌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
지칠 대로 지친 여름 밤, 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
발이 조금 아파도 평소에 걷지 않는 언덕길을 함께 돌아가준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생겨난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행복할 때, 그 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
그냥 아무 말 묻지 말고 토닥여달라고, 칭찬해달라고 요구하고 다정한 손길을 기다린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이 받으면서도 미안해 하지 않고 곁에 있길 다짐한다.

몇 달을 얼마든지 문자를 씹어도, 약속을 바꾸고 연기하고 취소해도,
앞뒤 설명 없이 야 시간 되냐 얼굴 보자라고 말을 거는 친구가 있다.
아쉬움도 섭섭함도 없이 반가움으로 만나 아무런 위로 없이도 손은 보드랍다.

멀리 있어도, 자주 보지 못해도, 마음으로 궁금해 하고 지켜봐주는 친구들이 있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이 그런 느낌일까.
그 시절의 햇빛을 담았고 그 시절의 향기가 남아 있다.

*
잊는 법을 배웠다.
덮어두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열고 상냥함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나이를 먹고-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사람도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의 경험을 하고 성공이든 실패든 남게 된다.
그런 것들을 딛고 서서 하나라도 다른 것을 깨닫는다면, 그걸로 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 몸을 움직이면, 마음은 가라앉을 수 있다.
못 보던 것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살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
8월에 접어들면서
내 생애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들도 연거푸 일어나고
1년치를 다 합쳤을 법한 삽질도 생겨나고
일복도 터지고 머리도 터지고
회자정리 거자필반
도마 위에 온갖 재료를 늘어놓고 썰고 뒤집고 섞고 난리를 치는 기분.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 치워야지 :9

비야 좀 그쳐라.
나는 오늘 헤엄 좀 쳐야겠다.

by kisa | 2008/08/15 00:55 | I am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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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뱀냥 at 2008/08/15 08:55
날씨가 더할나위없이 좋은데-_-?
나 밤새 한 열번도 넘게 일어난거같어-_-
더워서 못잔걸까 긴장해서 못잔걸까-_-;;
Commented by kisa at 2008/08/15 10:42
으힛 날 덥네!!
난 혼자 거실에서 퍼져 잘 자다가 아침에만 여러 번 깬 듯.
한동안 침대서 자다가 요 깔고 자니까 아무래도 익숙치 않아서 허리는 좀 쑤시고;;;

뭐 아무리 나빠도 팔당댐에서 1200톤 방류하면서 비까지 오던 그 날보다 나쁘겠냐?! ㅋㅋ
힘내자 > _ <
Commented by mandoo at 2008/08/31 20:59
비빔밥 얼른 먹어치우고 이제는 정갈한 반찬을 하나씩 집어먹는 여유도 누리길.

이제 곧 9월, 가을이니까.^^
Commented by kisa at 2008/08/31 23:49
하나씩 정갈하게. 조신하게. 주변을 보면서.
그렇게 가자꾸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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