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꿈

4시간이 넘게 잠들지 못하면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정리가 안 돼서
하마터면 물증을 요구할 참이었다.

그렇게
선풍기의 위치와 훈증기와 비싼 모기물림연고와 씨름하다가
간신히 의식 아래로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나는
편지를 뜯기도 하고
사진을 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들은 아직 대학생이었고 왁자지껄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어울렸고
그 중 몇 명은 나와 같이 돌아오는 방학에 해외자원봉사를 나갈 사람이라 했다.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 그래 본 적이 있었지... 하고
약간은 반가운 느낌이 들며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밤새 묘한 어두움과 묘한 불빛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바빠지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돌계단을 폴짝폴짝 걸어 내려오면서
내 가까이에 있은 것은 비쩍 마른 여자애였다.

학번을 확인하고 나는 00, 그녀는 01이라 했다.
얼굴은 하얗지만 그리 매끄럽지 못한 피부에
머리숱은 많고 뻣뻣한 새까만색.
어깨에 닿지 않는 길이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었고
뭔가 주렁주렁한 캐쥬얼 차림에 가방, 뿔테 안경.
미대나 건축학과 같은 분위기.

나는 그녀에게 담배가 있냐 물었고
그녀는 내게 검은색 담배를 한 개피 건넸고,
지하철역 광장을 지나 어딘가의 돌계단에 걸터 앉아
몇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

처음인데 굉장히 익숙하게 피운다 했던가.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그녀가 내게 해준 무심한 듯 무뚝뚝한 듯
다정했던 이야기는
모든 것을 정리시켰고
완벽한 위로가 되었다.

다음에 또 만날 때는 제대로 인사하기 위해- 라고
내 핸드폰을 꺼냈고,
그녀는 한손으로 번호를 찍어주었다.
이름은 익숙치 않은 자판에 몇 번 지우고 고쳤는데
그녀는 조현희라 했다.

この夜が終わる頃
僕らも消えて行く
そう思えば僕にとって
大事なもの何って
いくつもないと思うんだ

2년 만에 月光에서 바뀐 金星의 알람이 울려나오며 잠에서 깨자
꿈을 꾼 시간은 다 해도 2시간 남짓이란 걸 알았다.

아무런 논리도 상황정리도 포기나 다짐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이다.

마지막 글자들을 내려놓자 비로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다.

by kisa | 2008/08/14 09:55 | I am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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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Cre at 2008/08/14 17:58
나 여기있썰..내 얼굴을 보시욥
Commented by kisa at 2008/08/15 00:57
써연 사랑해 :9
Commented by mandoo at 2008/08/31 21:00
나도 여기있소.. 하지만 얼굴은 볼만한게 못되오..-ㅅ-...ㅋㅋ
Commented by kisa at 2008/08/31 23:49
하하하. 몸매라도 보여주쇼 - _ -

담배가 땡기네 큰일났다.
오늘도 밤길에 담배 피우는 사람을 뛰어가서 앞지른 주제에.
Commented by mandoo at 2008/09/03 14:41
금연예찬론자(!)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ㅠㅠ

아, 몸매는 뭐 볼만하겠소이까..-ㅅ-;
걍 만두체형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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