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 초콜렛 가게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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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렛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ㅡ라는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다. 누군가 해외여행을 갔다가 손에 들려준 수제 초콜렛 상자는 갖가지 모양에 숨겨진 재료를 설명해주는 설명서가 신기했지만 그게 꼭 크런키나 새알이나 블랙로즈보다 맛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거대한 과자 회사에서 이런 초콜렛 저런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해보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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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초콜렛 전문ㅡ이라는 개념을 접한 건 우습게도 배낭여행 첫날 터키에서 만난 배 나온 한국아저씨 두 명 덕분이었다. 초콜렛 상품 개발을 위해 출장을 왔다는 소리는 내겐 "초콜렛 회사에서 일하면 해외로 공짜 여행도 오고 새 제품 시식도 잔뜩 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아아 그런 데 취직한다면 나의 초콜렛에 대한 집착열정을 한껏 발휘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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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그리스를 지나 헝가리의 작은 마을 센텐드레에 들렀을 때 또 한 번 열의는 불타오른다. 뜨거운 햇빛 아래 종일 걸어다니다가 마치 홀리듯 들어간 과자 가게. 
"각국의 초콜렛과 구멍가게에나 있을 법한 과자, 수제 초콜렛, 각종 재료 등 너무나 많은 게 있고
주인도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부인'상이고 가게도 시원하고."
(2003. 05. 29 여행 노트 中)

당시 나의 감격 포인트는 초콜렛이 가득하다는 것 외에 "초콜렛이 녹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빵빵하다"에 맞춰져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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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일 카카오는 내게 쉼터이자 보물상자 같은 곳이었다. 협소한 공간과 비싼 가격 때문에 누군가 데리고 오기에는 좀 곤란하고, 혼자서 시끄러운 강남 한 복판에서 조용한 시간을 가질 타이밍은 잘 없기에, "뿌듯하게 잘한 일이 있으면 스스로에게 주는 상"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크리스마스 전날 산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회를 노리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이런저런 동선을 고민하고 여러 번 검토한 끝에, 처음으로 간 스페인어 학원 수강을 마치고 일 카카오에 들르기로 했다. 학원에서 3분도 걷지 않는다. 쨍쨍한 햇빛 아래 땀이 나지 않도록 살살 언덕배기를 올라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런데, 달라하스트가 가득한 쉐이드가 전부 내려져 있는 게 아닌가? 오늘은 휴일이 아닌데-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설마 폐업? 또 가게 하나를 말아먹은 건 아니겠지??
"일 카카오 여름휴가 6.27-8.05 날짜 변동 가능하니 홈페이지를 확인해주세요-"
oTL
뎅장 부럽다!
처음 찾아갔던 날도 봄 휴가라면서 일주일 쉬더니만... ㅠㅠ 여름휴가가 40일이냐.....
이로써 초콜렛 업종에 대한 나의 망상과부러움로망이 정점을 쳤음은 말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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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주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자면, 사람이 전문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어야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기 쉽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것이 MBA나 고시 합격증이나 화려한 커리어일 필요는 없다. 자기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기술 하나. 세상이 변하는 것과 큰 관련 없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솜씨. 특히 애정을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내게 최고의 업이란, 억대 연봉에 개인 사무실에 기사 딸린 세단과 명품 컬렉션에 화려한 파티가 아니라, 내 손 끝에서 만들어져 즐거움을 주고 사람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무언가와 발산과 충전이 적절하게 교차하는 나날이다.

by kisa | 2008/07/01 22:43 | I reckon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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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nigmaBox at 2008/07/03 08:54
헙...저도 휴가 날짜를 처음 보고 Kisa님께서 잘 못 적은 줄 알았다는....
완전 부럽다. 근데 주인이 몇살인지 모르지만 강남에 작지만 사람도 없는 가게를 가지고 있고, 휴가를 40일 떠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웬지 전문기술에 의한 것보다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富가 더 많았던 듯...역시 사람은 돈이 많아야돼
Commented by kisa at 2008/07/03 22:23
프하하하 마지막 문장에서 뿜;
싸이에서 봤던 카툰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선대로부터의 부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 _-;
고개를 끄덕이면 끄덕일수록 슬프군요... ㅜㅜ
Commented by mandoo at 2008/08/04 03:35
헐.. 무슨 휴가가 저렇게 아름답소..ㅠㅠㅠㅠㅠㅠㅠㅠ
전문직종만 살아남는 세상이라 무섭다.
나름 전문(!)분야지만 먹고 살기 힘든 한국.ㅠㅠㅠ

수제초콜렛..정말 맛도 맛이고 모양도 그렇고...비싸도 사먹을 수 밖에 없어..ㅠㅠㅠㅠ
Commented by kisa at 2008/08/09 00:46
...며칠 전 갔더니 8월 12일부터 연다고 재공지 oTL
아름다운 삶이오☆

큭 쇼콜라쇼 마시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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