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30일
[일기] 여름 동네 마실
이르지 않은 저녁, 외할머니댁에 심부름을 갔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기간동안, 할머니께선 길건너 아파트에 혼자 사셨다. 독실하신 할머니를 위한 성경잡지와 지방출장에서 사온 황남빵. 할머니댁에는 큰이모님과 그 외손녀인 제은이가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퀴의자에서 버둥대더니 쪼로로 쫓아와 빵봉지를 빼앗아간다. 사촌언니를 꼭 닮은 얼굴에 바가지머리가 너무나 귀엽다. 나랑 만난 적이 거의 없어서 아직 눈을 안 마주쳐주지만, 앞으로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야한단다 얘야.
지하철역까지 계속 마을버스 환승을 애용해오던 탓에 오랜만인 골목길을 걷는다. 여름저녁의 여중여고 운동장은 동네주민들에게 훌륭한 운동시설이자 나들이터가 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너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발걸음을 옮긴다. 학교앞 슈퍼와 문구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허투로 길을 건너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학교 앞 보도를 쭉 따라가다 보면 큰길 횡단보도가 나오는데 그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보도 반대편에 있었던 탓에 늘 중간에 길을 건너야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던 몇 년을 겪고, 드디어 습관을 고쳤다. 고3때 그 도중을 건너다가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래로, 그 자리에는 자그마한 횡단보도가 그려졌다.
지하철역 주변은 직장인들의 유흥가로, 식당과 술집들은 흥했다 망해서 사라지기 일쑤이기에,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비손과 점보오락실을 빼고는 향수에 잠길 일도 없다. 그러던 골목을 지나가는데 예쁘장한 카페가 눈에 뜨인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아기자기한 장식을 한, 모퉁이 카페. 겉보기엔 크지만 내부에는 스툴 몇 개만 놓여있을 뿐이다. 직장인들에게 커피란 식후에 위장을 채울 카페인이나 동료에게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이지 이 푸근한 공기는ㅡ게다가 앉아서 향유할 수도 없는ㅡ 불필요한 것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의 꿈ㅡ 로망을 불태운 느낌이 들어 괜히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아파트 정원을 훔쳐 즐겨보자 한다. 널찍했던 한 곳은 입구에 육중한 쇠문을 달아놨고 내가 3년간 신세졌던 그곳은 여전히 월요일 분리수거의 날이다. 변한 것이 없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보니 돔 위의 등나무 줄기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변한 것들, 변하지 않은 것들. 구분없이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어쨌거나 우리의 추억이 어려있기 때문이겠지.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 365일 그리고 살아온 한 해 한 해가 어딘가의 공간과 마주하고 남아 있다. 가끔은 간판이 변한 가게 앞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절로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우연히 책장 뒤에서 건져 올린 먼지 쌓인 책 속에. 공간과, 시간과, 물건과, 너와, 나의 기억이, 네가 그걸 바라는 동안은, 계속 머물러 준다.
지하철역까지 계속 마을버스 환승을 애용해오던 탓에 오랜만인 골목길을 걷는다. 여름저녁의 여중여고 운동장은 동네주민들에게 훌륭한 운동시설이자 나들이터가 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너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발걸음을 옮긴다. 학교앞 슈퍼와 문구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허투로 길을 건너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학교 앞 보도를 쭉 따라가다 보면 큰길 횡단보도가 나오는데 그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보도 반대편에 있었던 탓에 늘 중간에 길을 건너야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던 몇 년을 겪고, 드디어 습관을 고쳤다. 고3때 그 도중을 건너다가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래로, 그 자리에는 자그마한 횡단보도가 그려졌다.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아파트 정원을 훔쳐 즐겨보자 한다. 널찍했던 한 곳은 입구에 육중한 쇠문을 달아놨고 내가 3년간 신세졌던 그곳은 여전히 월요일 분리수거의 날이다. 변한 것이 없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보니 돔 위의 등나무 줄기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변한 것들, 변하지 않은 것들. 구분없이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어쨌거나 우리의 추억이 어려있기 때문이겠지.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 365일 그리고 살아온 한 해 한 해가 어딘가의 공간과 마주하고 남아 있다. 가끔은 간판이 변한 가게 앞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절로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우연히 책장 뒤에서 건져 올린 먼지 쌓인 책 속에. 공간과, 시간과, 물건과, 너와, 나의 기억이, 네가 그걸 바라는 동안은, 계속 머물러 준다.
# by | 2008/06/30 20:22 | I am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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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기억 끝에 매달려 있는 나의 모습이 밉지 않아요 : )
비손의 순대볶음 먹고 파 나 아직도 주인아주머니 얼굴 생각난다 ㅋㅋ 이제 할머니시구만
비손은 정말 안타깝지. 아직도 폐업 전날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고마웠다고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건강하셨으면 좋겠는데...
학교앞 문구점은 꼭 학교랑 계약이라도 맺은 냥,
관련 문제집이나 준비물이 꼭 상비되어있잖아(웃음)
비손과 점보오락실은 제일 안타깝지만..
역시 오랫만에 가보니 길은 그 길인데 내가 아는 그 길이 아니더이다..
이제 남아 있는 추억이 거의 없다... ㅠㅠ
바이더웨이에서 브리또 사먹던 기억은 있는데 브리또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