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습관] 상상블로깅

일단은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놀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만화를 그리거나 스토리를 쓰는 게 꿈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 대한 가정,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이야기 전개.
이런 것들을 쓱싹쓱싹 다듬어서 하나의 보따리로 묶어두는 것이 습관이다.
그게 뭐 대단한 이야기가 되어주거나 하지는 않아도
작게는 하나의 대사
혹은 어떠한 장면이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두 가지가 하나로 묶이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어떤 황당한 경우를 당하거나 재미난 일이 있으면
그 사건에 어떤 코멘트를 달아서 이러한 일기를 써야지-하고 생각한다.
가끔은 타이밍을 놓쳐 실제로 쓰지 못하는 동안 일련의 시리즈가 되어
혼자 머릿속에서 몇 화씩 진행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손을 놓은 동안 다시 1화를 풀어내기가 구질구질해지고 모든 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단순히 소재를 생각해둔다는 차원이 아니라
마치 상상블로깅 같다.
이미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판단하는 것부터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인식해버린다.

이를 테면,
오늘 돌아오는 길에 지하주차장에서 감히 두 개의 공간 한가운데에 떡하니 주차하고 있는 대형승용차를 보았는데,
그런 교통규범위반자 혹은 얌체 운전자-특히 횡단보도 한중간에 서거나 하는-를 보면
운전자를 마주보고 제대로 째려보면서 지나가는 게 내 나름의 응징인지라
어이없어 하면서 째려보고 입구쪽으로 몸을 틀다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 세워져 있던 피자 배달 오토바이에 배와 가슴을 제대로 들이받아 주었다.
진짜 창피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엘리베이터를 탔건만 약간 숨이 막힌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같은 반 남자아이한테 복부를 강타당해 호흡곤란을 겪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나는 꽤나 주먹을 쓰는 여학생이었다.
어제는 현관 앞에서 팔에 모기가 앉았나 하고 들어올리는 순간
앞에 계시던 아버님이 움찔, 하고 방어 자세를 취하시더라.
딸이 한폭력합니다.
했던 과거사를 골자로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밀려 있는 포스팅이 한둘이 아니다.
크랭크 파일처럼 머릿속에 쌓여만 간다.
이쯤 되면, 그런 식으로 떠올린 거 자체를 내 나름 하나의 포스팅으로 여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포스팅의 욕구가 아주 강렬하거나 상황이 받쳐주는 경우 이제는 모블로깅도 가능하긴 하지만.
언제쯤이면 내 안에서 형태를 갖춘 것들을 편하게, 모두 끄집어내 줄 수 있을까?

by kisa | 2008/06/19 23:18 | I reckon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kisa.egloos.com/tb/443400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비트손 at 2008/06/20 00:08
저도 그런식으로 놓쳐버린 생각들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요즘엔 닥치는대로 메모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잃어버린 글감들이 더욱 많은것 같네요.
Commented by kisa at 2008/06/21 00:08
그 순간의 감정만은 절실한데, 하나의 글로 써놓기에는 너무 앞뒤끝이 없어서 못 쓰는 경우도 있죠. 그게 완성될 무렵에는 감성이 사라지기도 하구요. 하여간 쉽지 않네요! (뭐 쉬웠으면 우리 모두 작가가 되었겠지만요 ^^;)
Commented by mandoo at 2008/06/27 00:26
머릿속에 떠도는 기억들을
멋지게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ㅠㅠ
막, 글을 써야지 하고 느끼다가도.. 어느새 그런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못쓰는 것도..참..ㅠㅠ
Commented by kisa at 2008/06/27 23:47
정말정말-
내가 원하는 발명품 중 하나야.
상념을 언어로 기록하는 기계.
...그럼 난 수영하면서 단편 하나씩은 쓸 수 있을 거야 ㅋ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