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기술] 계단을 없앤다면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징병제, 군 의무 복무가 사라진다면 뭔가 조금 달라질까?

자기가 아래에서 당한 만큼 위에서 갚아주겠다고 생각 안 하고
힘 있고 지위 있는 자에게 칼을 숨긴 채 복종해야 한다고 암시 걸지 않고
조직사회에서도 똑같이 무조건 yes라 답하는 사람만 예뻐하지 않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술만 마시며 가정을 파탄내지 않고
누구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면 다음 날부터 안 보이게 하라고 하지 않고
옳고 그른지 따져볼 새 없이 말 한 마디에 전봇대를 뽑든 언론의 입을 막든 하지 않고
여자들은 군대를 안 다녀와서 모른다고 하거나 자기가 다녀온 만큼의 억울함을 무기로 삼지 않고
대담하고 강하고 빠른 것이 최고라는 착각이 없어지게 될까?

내가 태어나기 전의 옛날에는
어떻게든 빨리 변화를 일궈야 했고 누군가는 앞장 서고 누군가는 따라야 했고
그래서 의문 제기따위는 허용되지 않는 상명하복의 조직이 중요했지만
그래서 분명 얻은 것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분명 잃은 것도 많고 지금도 말썽을 일으키는 데 더해 영영 뿌리 뽑지 못할 문제도 만들었고
이제는 너무 빠른 변화를 계속 따라잡으려고 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방향성 있는 흐름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터인데
이제는 힘이 센 것도, 경험이 조금 더 많은 것도 결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데
선배와 후배, 사수와 부사수, 상사와 하사, 지배와 피지배 그런 조직의 위계가 머릿속에 박힌 채로
우리의 행동과 문화에서 묵직하게 녹아든 채로
과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양성이 존중받고 사려 깊게 논의 하고 최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펼쳐볼 수 있는 사회.
계단이 없는 슬로프의 사회.

그런 광경 속의 일부가 되어 본 뒤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by kisa | 2008/06/01 12:30 | I reck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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