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2일
[영화] 그레이시 스토리 "여자라서가 아니라 근성이 없어서란다 얘야"
칼리 슈로더,엘리자베스 슈,더못 멀로니 / 데이비스 구겐하임
어떤영화 : ◇
예고편에서부터 그레이시의 오빠가 멋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굉장히 매력적이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완벽한 오빠"다운! 그래서 역시, 어디서든 이렇게 완벽하게 그려주는 인물은 죽이기 위해서 키우는 거구나 하는 공식이 맞다는 걸 재삼 확인한다. - _ -
자 그럼 그레이시는 어떤 캐릭터일까. <슈팅 라이크 베컴>처럼 축구를 열렬히 좋아하는 소녀인가? 처음 그녀는 오빠를 굉장히 좋아하는 동생으로 나온다. 아들 셋에 딸이 하나, 축구팬인 아버지는 딸은 안중에도 없고 아들들에게만 축구로 대화를 한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아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바로 오빠인 것이다. "You can do it."하면서 속삭여주는 사람이 그녀에겐 필요하다.
그런 오빠가 죽었다. 누구보다 상실감을 느끼는 그녀는 오빠의 자리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선언하지만 격려를 받기는커녕 비웃음을 당하고 레즈비언 취급 당하고 소외당한다. 그런 그녀가 방황하다가 결국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승리의 감동실화"를 이루어내지만 글쎄,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영화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실패한 영화의 특징은 장면을 찍어놓고 아무렇게나 편집해놓은 거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전혀 이어지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한다. 특히 주인공인 그레이시를 관객들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대단하거나, 아니면 축구는 사실 잘 못하지만 오빠를 위해 그리고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이거나. 어느 쪽이든 이런 영화는 주인공이 일반인을 넘어선 "집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아니면 극단적으로 불쌍하거나)
그러나 그레이시는 누가 못한다고만 하면 홱 토라져버리고 이불속에 들어가고, 며칠쯤 열심이던 아침훈련도 어느날 그만두고, 좀 힘들면 토하겠다고 하고, 코피가 나면 울면서 도망간다. 단 한번도 눈을 번뜩이며 자기 힘으로 일어서질 않는다. 뭘 해도 팀에는 만날 어슬렁거리며 늦게 나타나고, 출전한 시합에선 자기 포지션이 뭔지는 생각도 없이 무조건 자기한테 공을 패스하랜다. 대체 누가 이 아가씨한테 응원을 보낸단 말인가? 기껏 보여준 씬 하나도 연습 후 혼자 슛연습을 하는 건데, 장애물 하나 없는 텅빈 골대에 공을 찬다고 그게 무슨? 난 최소한 옆에 왔던 친구가 연습을 돕겠다며 골 앞에 설 줄 알았더니 주저앉아 햄버거나 물어뜯고 말야.
누구보다 먼저 와서 연습을 한다거나, 아무리 넘어지고 얻어맞아도 근성으로 맞받아친다거나, 죽도록 시합 비디오를 돌려본다든가, 남자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악다구니같이 그 틈에 끼어서 연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실력도 내보이지 못하는 주제에 "난 충분히 강해요"라고 외쳐봤다 한숨만 나온다.
오히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건 그녀의 엄마다. 엄마는 물론 유일한 딸이 좀 더 안온하게 자라주었으면 하지만 부모인 자기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딸이 가장 원하는 길을 가도록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건 좋아. 하지만 남이 그걸 정하도록 내버려두진 마." 축구에 집착하고 뒤늦게 딸(혹은 축구를 하는 딸)에게 집착하는 남편이 회사를 때려쳐도 그저 자기의 일을 늘리는. 엄마 최고. 배우 자신(엘리자베스 슈)이 이 실화의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훌륭한 연기를 펼쳤지만 이 영화의 완성된 편집본을 보고 뭘 느꼈을지는 글쎄, 걱정이 된다. 왜 하필이면 축구였을까? 딸을 대변하기 위한 자리에서 그녀는 딸이 자기와는 달리 스포츠를 너무나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영화에서 축구에 대한 그레이시의 애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빠가 죽고도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화끈하게 노는 것도 잘 못하고 그렇다고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도 없는 틴에이지 소녀가 조금 떼쓰고 발버둥을 쳤다고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여자를 축구팀에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은그녀에게 오히려 자신의 불쌍함을 강조하는 난관이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의 그레이시는 쉽게 들어갔으면 조금 하다가 제풀에 떨어져나왔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어설픈 그녀였기에 사실은 팀의 어떤 남자도 그녀를 인정해줄 기회가 없었고, 설욕의 승리 후에 누구도 그녀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부딪혀주지 않았다. 그레이시는 그저 아빠에게 달려가 껴안겼을 뿐이었다.
좋게 보려고 시작했지만 영 이입할 수 없었던. 축구를 하든가 가족화해를 하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해라. 어른이 되든지.
예고편이 훨씬 재밌다. <보기>
(2008.04.01 / 메가박스 코엑스)
# by | 2008/04/02 01:20 | I lik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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