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25일
[도서] 에베레스트의 작은 거인들
에베레스트의 작은 거인들고든 코먼 지음, 남문희 옮김 / 달리(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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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간간히 당첨되는 걸 보고는 "나도 렛츠리뷰!"하고 클릭했더니, 이런, 단번에 당첨.
소설을 읽고 싶었고, 늘 읽는 그런 이야기와는 다른 작품을 접하고 싶었다. 안타까운 사랑이나, 세상에 대한 냉소나, 뿌리깊은 가족간의 애증이 없는.
"산"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 끌렸던 것 같다. 내 다리로 오르는 것보다는 그저 바라보거나, 기계에 몸을 실어 올라가 그 위에서의 경치를 즐기는 나지만 그래도 산은 좋다. 물론 숨이 턱턱 막히게 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물을 꿀떡꿀떡 마시는 것도 좋다. 내려온 뒤의 고기맛도 물론 꿀맛이다. 그저 거기에 무게 잡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고, 세상이 한없이 작아보이고 나 또한 작아보이게 된다는 점도 좋다. 그런 느낌이 왠지 필요한 때여서, 이 책을 골랐다. 사실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또 혹시나 <에너지 버스> 같은 처세술 우화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살짝 했는데, 웬걸, 예상치 못한 청소년 도서다. 문장이 짧고 술술 읽힌다. 번역의 감칠맛은 없는 편인데, 차라리 영문이었으면 좀 더 위트가 넘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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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반부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행운의 아이들이 당첨되고, 탈락되고, 최종 선발되는 과정이다. 주인공인 도미니크는 후원사의 음료수를 먹어치우며 당첨권을 따낸다. 그 안에서 아이들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얘는 이래서 돼, 얘는 이래서 안 돼 하는 과정은 흥미롭긴 하지만 소설에 빠져들게 하진 않았다. 정말이지 <찰리와 초컬릿 공장의 비밀> 영화판을 보는 것과 비슷한 전개와 가벼운 분위기. 무슨 일만 있으면 몇 년도에 누구와 어느 산 정상에 오르며 고생하던 때를 떠올렸다-는 식의 이야기는 좀 거슬리기까지 했다. (세계의 유명한 산들을 알고 있다면 좀 달랐을 거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하프돔과 엘 캐피턴 얘기가 나올 땐 슬며시 웃었으니까.)
반면 청소년 도서-라고 하기엔 후원자의 홍보 욕심과 산악인으로서의 기록에 대한 욕심 등으로 누구를 최종선발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인 논쟁이 드러날 때는 의아하면서도 그 리얼한 맛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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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격의 캐릭터, 그리고 그저 산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을 둘러싼 팽팽한 이권갈등, 이런 것도 상당히 좋았지만 내가 진짜 책장을 덮지 못하도록 한 것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 대한 묘사 그 자체였다.
산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은 높이에서 안구가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뇌는 제대로 사고하지도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 도구들을 가지고 한 번에 10cm씩, 20cm씩 발을 차고 줄을 붙드는 것만 생각해야 하는 그 혹독한 상황에서 집중하는 인간, 거기서 느끼는 희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는 것이 그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깃발을 꽂는 것만이 아니었구나. 헬리콥터로는 접근도 불가능해 시체를 수습할 수도 없는 높이. 고소의 희박한 공기에 적응하기 위해 몇 주를 보내야 하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해야 한다. 등반이 가능한 날씨도 제한되어 있는 데다가 예측하기도 어렵다. 반면 이런 순수한 등반에의 의지가 자본과 언론을 동원해가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 그리고 등반하는 사람들을 돕는 셰르파들이 미리 가서 길을 준비해놓는다는 사실은 의아하기도 하다. 그저 높은 곳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속속들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듯 읽어내려가니 '이게 정말 사람들이 인생을 거는 일이구나-'하고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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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또래보다 체구가 작지만 누구보다 감각과 의지를 지닌 소년 도미니크! 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팍팍 밀어주고 있다. 세속적 성공과 상관없이 산에 열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식이랄까. 눈앞에 절벽이라는 '문제'가 있으면 끝내 올라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하지만 내게는 도저히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다. 열정이 지나쳐서 규칙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는 물론 주위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그런 모습을, 처음엔 대장도 못마땅해하다가 나중엔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밀어주게 된다. 하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것과 무모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극한 상황-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서로를 돕기 어려운-에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 소설로서 늘 쭈뼛쭈뼛거리며 사회의 수많은 제약에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이런 정열적인 캐릭터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은 잘 알겠다. 소설의 주인공은 헌신적인 영웅에서 이기적인 영웅으로, 그리고 이제는 순수한 영웅으로 계보가 이어져 내려가고 있다. 꼭 곤 같은 캐릭터다. 선악에 대한 판단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서 눈 앞의 일에 몰두하는. 그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 소설에서 도미니크를 그렇게까지 추켜세우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도미니크를 끌어내리려고 쓰는 말은 "너무 어리고 약하다"뿐이다. 하지만 난 "주변 사람들은 생각 안 하는 제멋대로의 철부지"라는 점에서 충분히 욕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결말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그의 탓인 것처럼 오해하게 내버려두지만, 그건 실제로 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덧붙여, 도미니크가 그렇게 위기의 상황마다 초인적인 체력과 회복력을 보이며 "신이 에베레스트를 만들 때 아마도 너를 생각하고 만들었나 보다"라는 말까지 해주는 건 독자의 몰입을 더더군다나 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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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초반부터 흥미롭게, 중반부터 끝까지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고 마른 침을 삼키며 즐겁게 읽어내려갔기 때문에 소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싶지만, 결말은 정말이지 약했다. 산의 정상에 다 갔는데 길이 뚝 끊기고 "자, 돌아가자"하는 느낌? 그렇게나 살아 숨쉬던 캐릭터들이 겪은 생생한 드라마를, 조금은 더 깊은 시선으로 해설해주길 바랐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그렇게 결론지어주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술로든 장면으로든 '그래서 그것은 전부 이런 의미를 지닌 것이다'라고 독자가 되돌아볼 수 있을 만한 현관을 마련해주는 게 어떨런지. 특히나 그저 긴박감과 재미를 주려 한 게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든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나 '일상에 대한 반성' 같은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면 말이다.
# by | 2008/03/25 16:48 | I like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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