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4일
[자동기술] 누군가로부터
내 싸이에 아주 가끔씩 글을 올리는 [복화술]이란 게시판에는 "꼭 내가 하고 싶었던 말" 같은 대사나 문구를 담아두고 있다. <나나>나 <후르츠 바스켓>,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줄기차게 감동받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코드의 중심에는 한 가지가 있다.
혼자로는 자신이 없어요. 누군가로부터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나도 누군가의 의미가 되었으면 해요.
여전히 나는, 어린애다.
나쁜 일이 하나 생기면 '역시 때려치기로 하길 잘했어'라고 한다거나, 쌓여있는 불만을 여과없이 토로한다거나,
퓨즈가 짧아져서 달아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 요즈음의 나는, 전혀 봐줄 만한 상태가 아니지만,
오늘은 정말 기쁜 일이, 뿌듯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장문의 메일.
지금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애의 긴 문장들.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고, 예의를 차린다거나, 확실한 thank you나 확실한 good bye와도 상관없어 보이던.
언제나 자유롭고, 가볍고, 저 먼곳의 산 너머 바다 너머만 보고 있을 것 같은 그 아이.
그래서 눈부셔 보였고, 나 대신 언제까지고 날아오르고 뛰어오를 것 같았고,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의 해묵은 고민이나 무거운 짐들도, 그 앞에서는 솔직함으로 꺼내어놓을 수 있고,
나의 부풀은 꿈이나 형체 없는 소망도, 그 앞에서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순수하게 기원할 수 있었다.
좋은 것들, 싫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꽤 행복했던 것 같다.
기분이 내키면 연락을 하고, 우연이 닿으면 얼굴을 보는, 그런 약속따윈 없는 인연 속에서.
어쨌거나 우린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 한 번의 봄을 공유했고.
그것들은 채도 낮은 칙칙한 세상에서 동동 떠오른 비눗방울처럼, 알록달록하고 반짝거리고, 금세 터지는 시간 같았다.
그 애가 무얼 하든, 그 애가 한여름의 빛남이었고, 그저 나는 꺅꺅거리는 팬이었는데.
처음으로 본 그 애의 긴 문장들은, 나를 추운 겨울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 같은, 그런 온기로 보아주고 있었기에,
어색함과 쑥스러움 속에서, 나는 발그레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또 하나는 언제나 멋진 문장을 쓰는 친구의 답글로,
언제나처럼 나의 정신사나운 방명을 어떻게든 이해하여 멋지게 풀어내준 것이었다.
몇 년 만에.
그 속에는 우리가 공유했던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끈끈하지도, 그렇게 깊숙히 파고들었던 것도 아니건만,
뭐라고 단번에 규정할 수 없는 형태를 갖추고
오로지 하나,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채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그곳에 있지만
분명히 그 시간은 존재하였고
그래서 우리의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아주 소심한 발상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의 시간을 훨씬 소중히 여겨준 모습에,
나는 또 한번 수줍게 미소지었다.
지금 내 곁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고 있고,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한 번이나 두 번쯤은,
살아오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혼자로는 자신이 없어요. 누군가로부터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나도 누군가의 의미가 되었으면 해요.
여전히 나는, 어린애다.
나쁜 일이 하나 생기면 '역시 때려치기로 하길 잘했어'라고 한다거나, 쌓여있는 불만을 여과없이 토로한다거나,
퓨즈가 짧아져서 달아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 요즈음의 나는, 전혀 봐줄 만한 상태가 아니지만,
오늘은 정말 기쁜 일이, 뿌듯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장문의 메일.
지금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애의 긴 문장들.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고, 예의를 차린다거나, 확실한 thank you나 확실한 good bye와도 상관없어 보이던.
언제나 자유롭고, 가볍고, 저 먼곳의 산 너머 바다 너머만 보고 있을 것 같은 그 아이.
그래서 눈부셔 보였고, 나 대신 언제까지고 날아오르고 뛰어오를 것 같았고,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의 해묵은 고민이나 무거운 짐들도, 그 앞에서는 솔직함으로 꺼내어놓을 수 있고,
나의 부풀은 꿈이나 형체 없는 소망도, 그 앞에서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순수하게 기원할 수 있었다.
좋은 것들, 싫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꽤 행복했던 것 같다.
기분이 내키면 연락을 하고, 우연이 닿으면 얼굴을 보는, 그런 약속따윈 없는 인연 속에서.
어쨌거나 우린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 한 번의 봄을 공유했고.
그것들은 채도 낮은 칙칙한 세상에서 동동 떠오른 비눗방울처럼, 알록달록하고 반짝거리고, 금세 터지는 시간 같았다.
그 애가 무얼 하든, 그 애가 한여름의 빛남이었고, 그저 나는 꺅꺅거리는 팬이었는데.
처음으로 본 그 애의 긴 문장들은, 나를 추운 겨울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 같은, 그런 온기로 보아주고 있었기에,
어색함과 쑥스러움 속에서, 나는 발그레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또 하나는 언제나 멋진 문장을 쓰는 친구의 답글로,
언제나처럼 나의 정신사나운 방명을 어떻게든 이해하여 멋지게 풀어내준 것이었다.
몇 년 만에.
그 속에는 우리가 공유했던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끈끈하지도, 그렇게 깊숙히 파고들었던 것도 아니건만,
뭐라고 단번에 규정할 수 없는 형태를 갖추고
오로지 하나,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채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그곳에 있지만
분명히 그 시간은 존재하였고
그래서 우리의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아주 소심한 발상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의 시간을 훨씬 소중히 여겨준 모습에,
나는 또 한번 수줍게 미소지었다.
지금 내 곁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고 있고,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한 번이나 두 번쯤은,
살아오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 by | 2007/12/04 23:10 | I reck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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