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4일
[자동기술] 하루짜리 컵 속 시간의 소용돌이
오늘은 갑자기 몇 년의 시간을 한 컵에 부어놓고 막 뒤흔들어 거품을 낸 기분이야. 정말 신기한걸?
너의 방명록에 글을 남길 때면 늘 뭔가 기합을 빡 넣어야 할 것 같지만 이내 포기하곤 해.
결국 나는 내가 쓰는 방식대로밖에 못 쓰는걸.
방명록을 뒤로 넘기다보니 근 반년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들 해놓으셨더구나. 그래도 반복해볼래.
주인 없는 빈집에 드나들다 전화기도 전파가 닿지 않다가 만나지 못한 졸업식 이후로 우리끼리 너의 행방을 궁금해하다가.
3년간 같은 사무실에 출근하다가 대학원 시험을 쳤다가 드디어 퇴직금을 받겠거니 했다가 오늘 갑자기.
만화편집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를 않나 5년 만에 뵌 분이 똑같은 얼굴이질 않나 12년간 알고 지낸 애가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질 않나.
블라블라의 로그가 어딘가 없을까 백업씨디를 뒤적이다가 오래 전 어느날 행방이 묘연해지셨던 분(별점게시판의 프로그래머 분)의 홈페이지가 최근 1개월 사이에 열린 걸 발견하지를 않나.
나도 "귀찮다 그냥 다보자"라는 메뉴와 이곳 방명록의 여러 낯익은 이름들을 보고 너라는 걸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이 방명록에 6개월간 쌓인 글들만큼 페이지 사이사이로 시간이 밀려들어왔다가는 빠져나가는 느낌이 너무나 묘해.
3년간의 메트로놈 같은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
백업씨디에는 무려 2003년 즈음 너와 내가 존대말로 방명록에서 주고받았던 이야기까지 text로 저장되어 있더구나.
그래, 너한테 이야기를 하다보면,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던 묘한 비유랄까 이상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지.
이따금씩 너를 떠올리며 "기린이라는 아이가 있었지"하고 지나가다 얘기를 하곤 했는데.
네가 바뀌었단 말들이 많이 오가지만 너의 환경이나 너의 생활이나 너의 글쓰기나 너의 가치가 바뀌었고 바뀌어서 좋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있는 너답다-는 생각이 든다. 일관성을 지닌 변화, 혹은 진화. 무슨 소린지.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기를 좋아하고 아직도 과거의 것들에 많이 집착하고 있다.
그래서 블라블라 로그 같은 걸 찾고 있는 거지.
추억을 곱씹는 일이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될지는 몰라도
한편으로는 현재를 그만큼 빛나게 일구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니까, 내게는.
돌고돌아 어디에 와있을까.
오늘 하루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넘나들어서 핑핑 도네. 후훗.
내가 여전히 네게 궁금한 존재로 남아있을까?
얼굴 마주보지 않아도 그곳에서 잘 살고 있겠지, 문득 떠올리며 홀로 웃음 지어보는 그런 친구관계도 있으려나, 하고 생각해본다.
# by | 2007/12/04 00:45 | I reckon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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