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5일
[이런생각] 선택, cost
"Life's full of tough choices, 'init~"
10살때 30번도 넘게 본(혹은 보았다고 기억하는) 디즈니 Little Mermaid에 나오는 마녀 어슬라의 대사다.
살면서 선택을 할 일은 진짜 많다.
당장 아침에, 알람에 맞춰 일어날지, 5분 더 꿈틀거릴지, 걸어갈지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선택을 하면서 하루는 시작.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란 절대명제.
특히 돈이나 여건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선택하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식당 메뉴를 고르는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한밤중 배고플 때 초콜렛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졸린 일요일 아침에 수영장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훌륭한 답안은 알고 있으면서도 평생 실행하기 어려워하는 문제,
꿈과 현실과 편안함과 혹독함과 현재와 미래가 뒤범벅이 되어 1~2개월 가지고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문제까지
인생은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다.
선택은 결국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취하느냐의 문제다.
돈도 많이 주고 집에서 가깝고 일도 널럴하면서 재밌고 사람도 좋고 휴가도 쉽게 쓸 수 있는 회사는 드물다.
그러기에 이중에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OX형이냐 총점형이냐에 따라 하나의 요소씩 판단하고 나면 답을 고를 수 있다.
휴가를 쓰기 어려운 회사는 일단 안 된다고 제외하고, 나머지에 가중치를 감안한 점수를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치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뭉뚱그려서 생각하고 있을 뿐 늘 거치는 선택의 과정이다.
값도 싸고 맛있는 밥과 값은 비싼데 맛없는 밥이 있다면 그건 이미 선택할 필요가 없고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목적, 우선순위, 취사선택.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적절하게 계량하는 것.
선택의 가치에 값을 매기는 것.
물론 가장 큰 목적과 자기 안에서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평소에 꽤 많이 생각을 해두지 않으면 뭐가 더 중요한지 쉽게 서열을 지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회사 같은 곳에서는
"임원 12명이 부부동반으로 각자 차를 몰고 6시에 퇴근해서 우아한 저녁식사를 하고 7시30분에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코스를 구상해라"
따위와 같은 과제를 내주고 여러 선택안으로 구성된 답을 내놓으라고 하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우아하게 하고 싶으면 소극장에 가질 말든가 소극장에 갈 거면 가벼운 분위기를 내든가
대학로 7시30분 연극을 볼 거면 5시에 퇴근하든가 6시에 퇴근할 거면 역삼역에서 연극을 보든가
대체 대학로에 차 12대를 어떻게 세울 것이며 15분만에 우아한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 건데?!
(현실에서는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나머지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킨 덕에 주차장 두 군데에서 엄청 헤매고 누구는 늦어서 연극을 못 보고 엉망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선택을 그래도 아슬아슬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적당히 잘, 잽싸게 하는 편으로,
어쩔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곧잘 하곤 했었다.
그러나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은, "사람"에 관한 문제다.
같은 조건에 같은 결과값이 나온다고 말할 수가 없고, 감정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의 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다.
또한,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서 판단기준이나 지향점이 심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선택의 전도사"처럼 지내던 나는 최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모순을 인정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직에서 사교적으로 지내려면 술을 먹고 내 시간을 줄여야 하고, 술을 먹지 않고 내 페이스로 살려면 조직에서는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저울질과 시행착오 결과, 나는 여전히 시간 들여 술 먹는 것도 싫고, 소외당하는 것도 싫다.
까놓고 말하면, 나를 껴서 술 마시는 것도 싫고, 나를 빼놓고 술 마시는 것도 싫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며 사람의 감정에 관한 일인 이상, 그렇게 잘라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대로 이 조직 내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끙끙대면서 갈지,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든지,
아니면 이 고민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변화를 꾀하게 되겠지.
선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선택의 보류란 없고, 이미 하루하루 다른 한쪽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10살때 30번도 넘게 본(혹은 보았다고 기억하는) 디즈니 Little Mermaid에 나오는 마녀 어슬라의 대사다.
살면서 선택을 할 일은 진짜 많다.
당장 아침에, 알람에 맞춰 일어날지, 5분 더 꿈틀거릴지, 걸어갈지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선택을 하면서 하루는 시작.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란 절대명제.
특히 돈이나 여건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선택하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식당 메뉴를 고르는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한밤중 배고플 때 초콜렛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졸린 일요일 아침에 수영장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훌륭한 답안은 알고 있으면서도 평생 실행하기 어려워하는 문제,
꿈과 현실과 편안함과 혹독함과 현재와 미래가 뒤범벅이 되어 1~2개월 가지고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문제까지
인생은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다.
선택은 결국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취하느냐의 문제다.
돈도 많이 주고 집에서 가깝고 일도 널럴하면서 재밌고 사람도 좋고 휴가도 쉽게 쓸 수 있는 회사는 드물다.
그러기에 이중에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OX형이냐 총점형이냐에 따라 하나의 요소씩 판단하고 나면 답을 고를 수 있다.
휴가를 쓰기 어려운 회사는 일단 안 된다고 제외하고, 나머지에 가중치를 감안한 점수를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치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뭉뚱그려서 생각하고 있을 뿐 늘 거치는 선택의 과정이다.
값도 싸고 맛있는 밥과 값은 비싼데 맛없는 밥이 있다면 그건 이미 선택할 필요가 없고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목적, 우선순위, 취사선택.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적절하게 계량하는 것.
선택의 가치에 값을 매기는 것.
물론 가장 큰 목적과 자기 안에서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평소에 꽤 많이 생각을 해두지 않으면 뭐가 더 중요한지 쉽게 서열을 지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회사 같은 곳에서는
"임원 12명이 부부동반으로 각자 차를 몰고 6시에 퇴근해서 우아한 저녁식사를 하고 7시30분에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코스를 구상해라"
따위와 같은 과제를 내주고 여러 선택안으로 구성된 답을 내놓으라고 하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우아하게 하고 싶으면 소극장에 가질 말든가 소극장에 갈 거면 가벼운 분위기를 내든가
대학로 7시30분 연극을 볼 거면 5시에 퇴근하든가 6시에 퇴근할 거면 역삼역에서 연극을 보든가
대체 대학로에 차 12대를 어떻게 세울 것이며 15분만에 우아한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 건데?!
(현실에서는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나머지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킨 덕에 주차장 두 군데에서 엄청 헤매고 누구는 늦어서 연극을 못 보고 엉망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선택을 그래도 아슬아슬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적당히 잘, 잽싸게 하는 편으로,
어쩔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곧잘 하곤 했었다.
그러나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은, "사람"에 관한 문제다.
같은 조건에 같은 결과값이 나온다고 말할 수가 없고, 감정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의 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다.
또한,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서 판단기준이나 지향점이 심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선택의 전도사"처럼 지내던 나는 최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모순을 인정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직에서 사교적으로 지내려면 술을 먹고 내 시간을 줄여야 하고, 술을 먹지 않고 내 페이스로 살려면 조직에서는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저울질과 시행착오 결과, 나는 여전히 시간 들여 술 먹는 것도 싫고, 소외당하는 것도 싫다.
까놓고 말하면, 나를 껴서 술 마시는 것도 싫고, 나를 빼놓고 술 마시는 것도 싫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며 사람의 감정에 관한 일인 이상, 그렇게 잘라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대로 이 조직 내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끙끙대면서 갈지,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든지,
아니면 이 고민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변화를 꾀하게 되겠지.
선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선택의 보류란 없고, 이미 하루하루 다른 한쪽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 by | 2007/10/25 00:15 | I reck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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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선택의 문제에서는 아니겠지만
크고 굵직굵직한 인생의 선택에서본다면
선택의 질과 양을 up하는 것도 역량이겟다...
옵션이 없거나. 비리비리하면 어쨰.
그러기 위해 네 말대로 24시간을 쪼개나.
그럼에도 노력과 상관없이 세상이 결정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