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일기]는 남은 걸 소진하려는 꼼수지만 어쨌든

지난 일기처럼 한바탕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새 직장을 찾으려는 액션 몇 개를 취하고 11월 1일에 당장 입사할 사람을 찾는다는 곳에 화상 인터뷰를 본 뒤 거절하고 나니 조금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었다.
10월엔 출장 대신 남편 친구 가족과 베트남 나트랑에서 휴가를 즐겼고,
11월 가을방학 때는 아들 데리고 롯데월드를, 부모님 모시고 화담숲을 다녀왔다.
일본 무비자 자유여행이 풀린 다음 날 12월 다카마쓰행 표를 끊었다.
2월에 친구 아들들과 스키 강습 계획을 박고 나니 웬만큼 퐁당퐁당 일정이 정해져서 약간 마음이 닻을 내릴 수 있었다.
그새 freezing이고 뭐고 윗ㄷㄱㄹ들은 다 호화 출장을 즐기고 있길래 어이가 탈출했지만, 대신 매니저에게 우리팀 워크샵을 빨리 결정해달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결국에는 1월 둘째주 출장이 잡혔다.
그리고 2월 셋째주에는 아시아 전체 워크샵이 일단은 예정되고 있으므로, 4월말까지 재직중일 때 베트남을 두 번은 출장가고 싶지만 약간 무리지 싶다.

INTJ는 심한 스트레스 하에서 말초적인 자극에 집착하게 되고(폭식 등) 약간의 흥분이나 이탈 상태에서는 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한동안 내 상태가 그랬다.
갑자기 귀신이라도 들린 듯, “이것도 해야 해” “저것도 해야 해” 이러면서 머리로는 자이로스핀만큼 빠르게 온갖 기획을 구상해댔고, 실제 서면이나 보고서로 다 구현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비과세 식대 인상에 따른 식대 수당 신설, 타국 대비 낮은 평균 임금 분포율에 의거한 보완 계획, 장기적인 인재 수급을 위한 인턴십 또는 매니저 프로그램 도입, 내가 없을 때를 보완하기 위한 백업 및 팀원 승진 플랜, 연말파티를 겸해 예산을 소비할 수 있는 단체복 제작…과 같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 데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일들.
심지어 몇 번의 질문에도 “나는 공부를 더 하지는 않겠다”고 칼같이 답했던 내가 갑자기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다. 사람의 심리와 행동하는 원리, 기업 조직 안에서의 길잡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10년 장기관점에서 공부할까…? 하고 처음으로. 최근 10년 사이에는 없었던 마음이라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 와중에 코로나 거리두기가 많이 해제된 덕인지 3년간 멈춰있었던 온갖 단체와 기관들의 세미나가 재개되어서, 가능한 것은 모두 신청해서 팀원과 시내도 나가보고 맛난 식당도 찾아가고 업계 또는 동종직종 사람들도 만나고. 그간 못 만났던 업무관계자도 보자고 하고, 팀간 회식도 하나하나 날짜를 잡는다. 극 내향형으로서 2시간이면 번아웃될 자리들이지만 워낙 오래 쉬었으니 하나하나 즐겁다. 적당이 휴식을 취할 줄도 아니까.

연차휴가는 이미 다 써버려서 12월 일본 여행 때 쓸 휴가가 아슬아슬할 정도다.
늘 5일 이월, 5일 환급을 위해 남겼었는데, 내년엔 육아휴직이라 휴가가 고스란히 남으니 이월할 필요가 없다. 중간중간 쉬면서 컨디션 매니징 하는 것도 중요했고.
병가가 3일 정도 있는데 우울증 약 타러 갈 때도 쓰고, 치과도 좀 가봐야겠다.

참, 안경도 오랜만에 새로 맞췄다.
냐쨩 파도에서 비싼 안경을 잃어버린 남편을 따라 갔다가 내 맘에 쏙 들면서 예전과 너무 똑같지는 않고, 가볍고, 또 비싼 ㅎㅎ 안경테와 운명의 만남을 하여 남편의 재가를 받아 질렀다.
나로서는 파격적인 변화인데 보는 사람은 전과 거의 똑같다고…
아니야 잘 봐 내가 20년간 쓰던 마젠타 색이 아니라 이건 제비꽃 색이라니까!?
전 직장에서 상사에게 8만원? 주고 샀던 유니클로 패딩과(약 13년 전), 영국 여행 갈 때 무릎 덮는 따뜻한 걸 사서 소매를 세 번이나 고쳐 입은(11년 됨) 패딩을 대체해야겠다 싶어 1년 정도 물건을 보던 중 내 분홍 버버리와 매우 비슷한 색깔의 너무 두껍지 않은 롱패딩이 있어서 또 질렀다. 반값 이하로 세일! 엄청 추울 때는 엄마 드리려다 거부 당해 내게 떨어진 침낭같은 애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다”로 분류됐던 경량 패딩도 하나 삼…
이제 넘 추워…
척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게 13.3인치 랩탑이 간신이 쏙 들어가는 배낭을 찾던 나는 이제
노안으로 13인치는 업무가 불가능해 모니터 없이는 일을 못하는 내가 되었다.

‘예측되는 끝’과 미래가 없음으로 촉발되었던 나의 ‘코로나 블루’가, 3년의 중단기 계획이 쏙쏙 박히면서 많이 회복되고 있는 듯하다.
약도 6단계 중 2단계를 줄였고, 내년 7월이 될 때까지는 단약하는 게 목표.
부디 영국에서의 적응이 어렵더라도 신나는 일이길. 너무 험난해서 무너져버릴 정도가 아니길. 극복하거나 즐길 만큼 심신의 건강을 길러갈 수 있도록.

by kisa | 2022/11/19 11:44 | I am | 트랙백 | 덧글(0)

[병가일기] 는 코로나 때문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일기가 무엇인지 읽어보았다.
6월의 부산 나이스!
7월의 뉴욕 언포게터블!!
8월의 베트남 그뤠잇!!
그리고 10월엔 말레이시아, 12월에 또 베트남을 갔었어야 하는데......

출장을 다녀온 날이 8월 26일 금요일.
그리고 8월 29일 월요일에 상사는 우리들을 불러모아 대대적인 비용 삭감 정책이 발효되었다고 얘기했다.
아니 2년 간 죽 쑤다가 올해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왜...?
출장 가지 말라는 것은 속 쓰려도 흔한 레퍼토리니까 괜찮아, 근데 사람도 뽑지 말라고...?
지금부터 빈 자리 안 뽑으면 있는 사람들 쓰러져 나갈 거고 내년에 소는 누가 키워?

위기가 닥쳤을 때 충격과 감정적인 좌절이 덮치기 전에 적극 피해 수복 작전에 나서는 내 지난 역사들.
이번에도 나는 공식 문서가 도달하기 전에 회사 이메일이나 메신저 사용을 피하면서 마무리 되지 않았던 6개의 자리 중 4개를 이틀만에 계약서 날인해버렸다.
이거 내가 잘 되자고 하는 거 아니야. 팀원 빈 채로 일도 안 돌아가고 괴로워할 사람들 위하는 거지.
내 초점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최소한의 피해로 타개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고 
그렇게 뼈와 살을 발라 일하는 동안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 같은 감정을 붙들어 맬 수 있었다.
회사 일이 어그러졌는데도 상태가 괜찮다는 말에 의사쌤은 의아해 하셨지만
"전 어차피 5월이면 육아휴직을 쓰고 도망가버릴 거니까요 우훗★"이라는 말에 끄덕끄덕하셨는데.

진화가 어느 정도 되고 나자 그때서야 봉해놨던 감정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대체 왜? 안 될 때도 졸라매고 잘 될 때도 졸라매야 하면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열심히 노력해서 비용 아끼고 좋은 아이디어 내 놨더니 그럼 그 다음 해는 그것보다 더 적게 쓰라고 하면 어쩌라고?
단기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장기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너희의 장기적 플랜을 위해 단기적으로 지금 당장 무조건 돈을 쥐어 짜내라는 뜻이었어?
지난 8년간, '우리 회사는 참 좋은 회사야'라고 믿으며 감사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사실 그 이면에는 그저 오너 패밀리를 위해 고행하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환각이 떠오른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7-8개월만 참으면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감이
7-8개월은 꼼짝도 못하고 여기서 묶여 있어야 한다는 절망감으로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매일같이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나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 했고 링뜨인을 구직중으로 표기했다.
이러다 기분이 풀면 말겠지, 어차피 새로운 거 하느라 에너지 쓰느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농땡이 치며 버팅기는 게 해법으로는 정답이겠지 싶으면서도, 썩어들으간 마음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지난 2년반 동안 여러 가지로 구상했던 시나리오 중에 1번은 물론 걸리지 않는다였고, 2번은 위력이 줄었을 때 어차피 걸릴 거면 다같이 한 방에 걸려서 격리도 한 방에 끝내자였는데, 2번 프로토콜에 따라 병원에서 양성 뜨자마자 집에 와서 아들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래서 다음 날 양성으로 뜬 아드님과, 그 전 주에 양성 뜨셔서 댁의 방 한 칸에서 격리중이던 이모님을 모셔와 셋이 오순도순 집에서 같이 밥 나눠먹으며 일주일을 지냈다.
개중 안타까운 일은 내가 뽑기운이 나빴는지, 열과 기침, 가래, 인후통으로 증상이 제법 셌다는 것이었다.
밀린 영화를 보며 깔깔대는 휴가같이 안락한 격리는 못되었고, 약기운에 몽롱하게 하루에 2/3을 자는 격리가 되었다.
그 와중에 여행기를 쓴다든가, 대청소를 한다든가,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린다든가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아침에 건전하게 집 치우고 씻고 맘 잡고 노트북을 켰는데 약기운에 잠이 몰려와 다른 건 못하고 
그래, 최소한 하나라도 하자 싶어서 블로그를 쓴다.

지금 맘 같아선 안 입는 옷, 낡은 물건들 전부 갖다 버리고,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최대한 홀가분한 기분이 되고 싶다.
아들이 만 9세 되기 5일 전인 5월 1일부터 육아휴직을 개시하고, 7월이면 남편따라 안식년을 떠나는 것이 인생 목표인데.
아들의 상황이나, 지긋지긋한 카르텔이나, 맥이 빠져버린 커리어나, 모든 것이 나를 그냥 대한민국에서 탈출하여 새 나라에 당도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그 새로운 곳도 임시일 뿐이고, 머릿속에서 구상한 대로 모든 게 잘 흘러가거나 문제 없진 않겠지만.
나는 너무나 지쳤다.
내 성향상, 8년을 넘게 버티기만 하는 것은 고역이고, 새로운 걸 당면했을 때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은 본능이며, 우울증 치료와 코로나 상황으로 기진맥진하여 어떻게든 골칫거리를 피하고자 하는 것은 숙명이니, 
나는 떠나는 것이 맞겠다.

뉴욕에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내가 떠안아야 하는 책임과 결정의 문제가 잊혀진 상태에서
오롯이 모든 에너지의 분배를 보고 즐기는 것과 새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시작과 끝이 정해진 일탈과 유예의 기간.
내년이 나에게 그런 시간이 되기를, 모든 방도를 동원해서라도 꼭 누리고 싶다.

by kisa | 2022/10/02 12:23 | I am | 트랙백 | 덧글(1)

[병가일기] 병가가 끝난 후

두 달의 병가로 마음껏,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10-11월 내가 집에 있고 침대에 누워 있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아들의 증상은 많이 좋아졌다.
나도 좋아져서 12월 1일 복귀 할 수 있었다.
복귀 후 우려했던 것처럼 바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나의 웃는 얼굴이 좋다며 전염성이 있다고 했다.
자동반사로 얻은 패시브 스킬이 이런 식으로 비추면 좀 씁쓸하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한다.
연말파티를 팀원에게 맡겨버리고 아예 당일에 참석을 하지 말까 했는데,
다행히 저녁 9시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이겠지.

다만, 준이는 틱 증상이 전보다 더 심해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 10월에 미리 예약을 했으면 12월에 바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예약하려니 다시 두 달을 기다려 2월말이란다.
몇 번씩 다시 전화해서 간신히 1월말로 앞당겨 필요한 검사를 다 받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부모가 우울증일 때 자녀가 소아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당연한 상황이라고 하신다.
문득 내가 방을 껌껌하게 한 채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내 방문을 슬쩍 열었다가 조용히 닫고 나가던 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가 감정을 쏟아주지 못하고, 받아주지 못한 채로 망가져버려 아예 생존을 이유로 노력을 포기했을 때,
그 불똥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튀고 있었구나.
불안, 공포, 우울, 충동.
꼭 아이가 학업성취도가 높다고 해서 ADHD가 아닌 건 아니라고 하셨다.
틱은 주변에서 눈치 채고 본인이 인지하기 전까지는 놔두어도 된다고 하셨다. 조절은 할 수 있어도 치료는 불가능하기에.
일단 감정을 이끌어내고 표현하는 훈련을 위해 놀이치료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가깝고 꾸준히 갈 수 있는 곳으로.
40분 놀고 10분 상담을 하는데, 아이만큼이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10분이 되었다.
나의 잘못된 육아방법 중에 가장 놀랐던 것은, 아이의 감정 자체를 통제하려 했다는 점이다.
게임에 졌는데 분해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웃으며 상대방을 축하해주라든가
이건 울 만한 상황이 아니다, 억울해 할 상황이 아니다, 무서워하지 마라 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했다.
계속해서 무섭게 큰 소리 내지 말고, 아이를 보듬어 안아주는 연습.

22년 5월.
하루 50만명 확진에 육박했던 오미크론 발 코로나19 상황은 급격히 올라간 만큼이나 급격히 내려와 이제 거리두기도 거의 해제되었다.
복귀 후 일로 인한 불안 증상으로 다시 폭세틴을 30mg으로 올린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지난 일기의 분류법에 의하면 1번에 가깝다. 매일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먹고 있지만, 평소에 내 우울증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슬슬 줄여볼까도 했지만 의사선생님은 ‘유지될 때 섣불리 변화를 주지 말자’고 하셔서 동의했다.
10시에 자고 6시에 깨는 패턴이 형성되었다. 아직 아침에 생산적으로 뭘 하지는 못하지만 조급해하지 않는다.
5월 4일, 평일일 줄 알고 준이와 둘이 롯데월드를 갔는데 중고딩 시험 끝 소풍기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13시간만에 돌아왔고, 준이는 눈 꼭 감고 겨우 탔던 후렌치 레볼루션을 담에 또 타보고 싶다고 했다.
한번도 힘들다고 찡찡대지 않았고, 나도 돌아와서 의외로 피곤하지 않았다.
준이의 생일이자 결혼 10주년인 5월 6일에 우리는 시할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안동 산골에서 이틀을 보냈다.
초코머핀 세 개를 한 접시에 놓고 촛불을 켜준 것만으로도 준이는 행복해했다. 예쁜 것.

풀린 날씨, 풀린 거리두기, 사무실로 사람들이 복귀하고 우리는 묵은 겨울옷을 안 보이게 치워놓고 봄맞이 청소를 한다.
앞날이 기대되는 즐거운 계획을 세운다. 꿈을 꿔본다.
5월말엔 3년 만의 전직원 행사를 열고
6월엔 MBTI워크샵을 자발적으로 열고,
그에 연동해 부산에 가서 워크샵 겸 팀 단합도 하고.
7월엔, 꿈에 그리던 결혼 10주년 여행을 간다.

2020년 가을,
나는 더 이상 꿈꾸어볼 미래가 상상되지 않아 마음의 병을 앓았다.
2022년 초여름.
드디어 앞날을 그려보고 계획하고 뛰면서 생동감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싫은 일은 외면하고 뭉개는 스킬도 탑재했다.

기대된다,
내일이.


by kisa | 2022/05/15 15:49 | I am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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