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8일
[일기] 쿠킹☆
누군가 요리를 잘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는 남이 만들어준 요리 갖고 요렇다 저렇다 뭐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해."
같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라도 지점마다의 맛을 가리고 주방장이 바뀌면 알아채고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티를 내는 나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에 세 끼밖에 못 먹는다는 사실과 나이를 먹을수록 소화능력이 떨어져간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식도락가다. 입맛이 고급스럽진 않다. 재료의 본연의 맛에 충실한 프랑스 요리보다는 맵고 짜고 지지고 볶은 길거리표 순대볶음이 더 좋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호우주의보가 내린 주말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대전 궁동까지도 내려가고 디저트 하나에 끼니 몇 배의 금액을 지불하기도 한다.
내가 요리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음식 솜씨 좋으신 어머님을 둬서 너무나 불행하다고. 앞으로 내가 어떤 요리를 하든 간에 어렸을 때 감동받았던 그 맛을 잊지 못해 비교할 것이고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평생 맛없는 요리만 먹고 살게 될 거라고. 구차하게 피곤해서,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재료와 훌륭한 솜씨를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먹는 것에 대해서는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어쨌거나, 나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백수생활 계약서에는 식사 준비라는 항목이 있었다. 어차피 식구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게 된 지 여러 해가 지난 가정이기에 크게 부담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젠 시간도 질릴 만큼 많겠다 그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란 밖에서는 팔지 않는, 그러나 나는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맛. 항상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쇠고기 고추장 떡볶이였다. 보통 고기를 비롯한 많은 재료가 들어간 것은 궁중떡볶이로, 감칠맛 나는 간장+참기름의 맛. 그리고 빨간 떡볶이라 하면 보통은 싸구려 오뎅과 깻잎과 미원의 배합인 게 정석이다. 그러나 나는 쇠고기를 듬뿍 넣고 온갖 야채가 어우러져서 떡 먹는 것보다 국물 먹는 게 더 좋은 그 어린 시절의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반년 동안, 온갖 떡볶이를 시도해보았다.
곁눈질로 배운 게 있어서인지, 대강 소금 후추 설탕 간장 터무니 없게 넣진 않고, 특별히 경악할 만한 맛으로 요리를 망치는 일도 없다. 게다가 나도 신기할 정도로 초보자인 주제에 각각의 재료양의 비율을 잘 맞춘다. 그래서 나의 요리법은 이렇다. 떡 적당량. 쇠고기 있는 만큼. 양파 한두 개. 당근 적은 부분. 고추 하나만. 다른 재료 있는 대로. 가끔 피망. 가끔 버섯. 적당한 모양으로 썰고. 고기는 소금 조금 후추 많이 간장 적당량 설탕 약간 마늘 상당히 넣고 버무려서 재워두고. 야채 달달달 잘 볶고. 고기도 볶고. 물 붓고 고추장 대강 던져 넣고 눈대중으로 갖은 양념 또 더해서 떡이랑 끓인다. 마지막으로 맛보면서 미진한 거 넣고. 요리를 계속 해온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대강대강 하는데 또 맛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뭐 이 정도의 재료를 때려붓고는 맛 없는 게 나오기도 어렵겠지만. 아직까지 미묘하게 부족한 맛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지만 아무렴. 나의 "떡 곁들인 쇠고기 볶음"은 행복의 맛이다. 간장맛으로도 해보고, 다른 재료를 넣어보기도 하고, 어묵 깻잎으로도 해봤지만, 맛을 볼 때마다 그리워하는 건 역시 쇠고기맛 진한 고추장 국물!
암울 모드까지는 아니지만 총체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나는 어제 술 한 잔 해보려다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한 방황을 한 방에 갚아주기라도 하듯 오전 나절에 나를 찾아 불러내준 친구를 만나 4시간 여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하기가 이토록 힘든가에 대한 토로를 하다 헤어졌다. 들어주는 것뿐이라도 누군가의 위안이 되어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동네에 있으나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우아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에 와플을 먹고 집으로 가는 언덕을 넘는 길. 아, 떡볶이 만들어 먹자, 하고 생각을 했다. 오늘은, 쫄면을 넣어볼까? 마트에 가서, 평소엔 양념이 잘 배고 먹기 편한 떡국떡 대신 말랑말랑한 떡볶이떡을 사고, 쫄면 면은 안 파는데 잘라놓은 작은 당면이 있기에 그걸로 샀다. 피망 한 봉지랑 행사가격이었던 새송이 버섯도. 당근은 전에 남겨둔 1/3짜리가 있고, 양파는 상자에 가득하고, 고추는 아마 밭에서 따온 게 또 있을 거다.
어떤 맛을 내볼까? 하고 머릿속에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한 과정을 상상하는 시간. 서투른 손이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재료를 하나하나 씻고 써는 시간도 재밌다. 아직도 어느 야채를 어떤 식으로 써는 게 가장 좋은지 탐구중이다. 한번은 이렇게 해봤다가, 한번은 저렇게 해봤다가, 아니야 역시 이게 낫겠어, 생각한다. 맛을 보고 섭섭해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오늘은 기합을 약간 넣은 거에 비해선 안타깝게도 조금 실패였다. 그런데 밤 늦게 밭에서 부모님께서 들어오셨다. 식사를 안 하셨다기에 맛은 없지만- 하면서 맥주 한 잔씩과 차려드렸다. 시장이 반찬일 테지만, 그래도 맛이 좋다는 따뜻한 말과 함께 싹싹 비워주신다. 금방 한 음식을 나눠 먹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영웅본색2>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날을 기억한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는지 "토요일 밤은 즐거워"였는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얼굴 넙데데한 아저씨가 이쑤시개를 입안에서 굴리자 사람들이 좋아 까무라치는 걸 보고 너무 이해가 안 갔었는데. 스크린 안에는 음식을 만들던 남자와, 그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겨우 입에 넣고는 울던 남자가 있었다. <어른의 문제>에서 요리를 하던 에비 고로님이 좋았다. 손루이가 좀 불쌍하긴 하지만, 오클레르 선생님과 치아키가 이해가 간다. 음식은, 치유의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먹는 사람에게도, 만드는 사람에게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일까. 하고 싶은 것과, 그걸 하기 위해 밟아나가는 한 단계씩의 과정. 마음의 여유를 두고 누리는 시간. 실패와 발전.
하루는 남은 밥을 갖고 쇠고기를 넣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내가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저번에 싼값에 사다가 1회 분량씩 나눠서 냉동실에 쟁겨놓은 것들을 한 봉지씩 꺼내어 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 때문에 밭 작물들이 다 망가져서 집에 남은 야채라고는 양파 반쪽과 감자밖에 없었다. 감자도 넣자. 처음으로 굴소스를 써볼까? 잘 안 나와서 툭툭 치다가 확 부어버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떠냈지만, 맛은 괜찮았다. 하루는 냉장고가 진짜 텅텅 비어서, 3분 카레조차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딱 하나 밭에서 딴 야들야들한 오이가 남아 있었다. 댕강. 서걱서걱서걱. 간장 식초 고춧가루 마늘 깨 조금 조금 조금 조금 적당히. 뚝딱 오이무침을 만들어 최근 반해버린 값이 일반보다 50%나 더 비싼 1450원짜리 인도카레랑 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제대로 갖추어진 재료와 제대로 계량된 수치가 없으면 못하던 내가 무언가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뿌듯하다. 다음에는 뭘 해볼까 생각한다. 솜씨는 조잡할지언정, 요리는 내게도 치유의 힘을 발휘하고 있나보다.
"아니, 나는 남이 만들어준 요리 갖고 요렇다 저렇다 뭐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해."
같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라도 지점마다의 맛을 가리고 주방장이 바뀌면 알아채고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티를 내는 나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에 세 끼밖에 못 먹는다는 사실과 나이를 먹을수록 소화능력이 떨어져간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식도락가다. 입맛이 고급스럽진 않다. 재료의 본연의 맛에 충실한 프랑스 요리보다는 맵고 짜고 지지고 볶은 길거리표 순대볶음이 더 좋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호우주의보가 내린 주말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대전 궁동까지도 내려가고 디저트 하나에 끼니 몇 배의 금액을 지불하기도 한다.
내가 요리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음식 솜씨 좋으신 어머님을 둬서 너무나 불행하다고. 앞으로 내가 어떤 요리를 하든 간에 어렸을 때 감동받았던 그 맛을 잊지 못해 비교할 것이고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평생 맛없는 요리만 먹고 살게 될 거라고. 구차하게 피곤해서,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재료와 훌륭한 솜씨를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먹는 것에 대해서는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어쨌거나, 나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백수생활 계약서에는 식사 준비라는 항목이 있었다. 어차피 식구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게 된 지 여러 해가 지난 가정이기에 크게 부담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젠 시간도 질릴 만큼 많겠다 그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란 밖에서는 팔지 않는, 그러나 나는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맛. 항상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쇠고기 고추장 떡볶이였다. 보통 고기를 비롯한 많은 재료가 들어간 것은 궁중떡볶이로, 감칠맛 나는 간장+참기름의 맛. 그리고 빨간 떡볶이라 하면 보통은 싸구려 오뎅과 깻잎과 미원의 배합인 게 정석이다. 그러나 나는 쇠고기를 듬뿍 넣고 온갖 야채가 어우러져서 떡 먹는 것보다 국물 먹는 게 더 좋은 그 어린 시절의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반년 동안, 온갖 떡볶이를 시도해보았다.

암울 모드까지는 아니지만 총체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나는 어제 술 한 잔 해보려다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한 방황을 한 방에 갚아주기라도 하듯 오전 나절에 나를 찾아 불러내준 친구를 만나 4시간 여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하기가 이토록 힘든가에 대한 토로를 하다 헤어졌다. 들어주는 것뿐이라도 누군가의 위안이 되어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동네에 있으나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우아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에 와플을 먹고 집으로 가는 언덕을 넘는 길. 아, 떡볶이 만들어 먹자, 하고 생각을 했다. 오늘은, 쫄면을 넣어볼까? 마트에 가서, 평소엔 양념이 잘 배고 먹기 편한 떡국떡 대신 말랑말랑한 떡볶이떡을 사고, 쫄면 면은 안 파는데 잘라놓은 작은 당면이 있기에 그걸로 샀다. 피망 한 봉지랑 행사가격이었던 새송이 버섯도. 당근은 전에 남겨둔 1/3짜리가 있고, 양파는 상자에 가득하고, 고추는 아마 밭에서 따온 게 또 있을 거다.
어떤 맛을 내볼까? 하고 머릿속에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한 과정을 상상하는 시간. 서투른 손이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재료를 하나하나 씻고 써는 시간도 재밌다. 아직도 어느 야채를 어떤 식으로 써는 게 가장 좋은지 탐구중이다. 한번은 이렇게 해봤다가, 한번은 저렇게 해봤다가, 아니야 역시 이게 낫겠어, 생각한다. 맛을 보고 섭섭해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오늘은 기합을 약간 넣은 거에 비해선 안타깝게도 조금 실패였다. 그런데 밤 늦게 밭에서 부모님께서 들어오셨다. 식사를 안 하셨다기에 맛은 없지만- 하면서 맥주 한 잔씩과 차려드렸다. 시장이 반찬일 테지만, 그래도 맛이 좋다는 따뜻한 말과 함께 싹싹 비워주신다. 금방 한 음식을 나눠 먹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영웅본색2>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날을 기억한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는지 "토요일 밤은 즐거워"였는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얼굴 넙데데한 아저씨가 이쑤시개를 입안에서 굴리자 사람들이 좋아 까무라치는 걸 보고 너무 이해가 안 갔었는데. 스크린 안에는 음식을 만들던 남자와, 그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겨우 입에 넣고는 울던 남자가 있었다. <어른의 문제>에서 요리를 하던 에비 고로님이 좋았다. 손루이가 좀 불쌍하긴 하지만, 오클레르 선생님과 치아키가 이해가 간다. 음식은, 치유의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먹는 사람에게도, 만드는 사람에게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일까. 하고 싶은 것과, 그걸 하기 위해 밟아나가는 한 단계씩의 과정. 마음의 여유를 두고 누리는 시간. 실패와 발전.
하루는 남은 밥을 갖고 쇠고기를 넣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내가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저번에 싼값에 사다가 1회 분량씩 나눠서 냉동실에 쟁겨놓은 것들을 한 봉지씩 꺼내어 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 때문에 밭 작물들이 다 망가져서 집에 남은 야채라고는 양파 반쪽과 감자밖에 없었다. 감자도 넣자. 처음으로 굴소스를 써볼까? 잘 안 나와서 툭툭 치다가 확 부어버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떠냈지만, 맛은 괜찮았다. 하루는 냉장고가 진짜 텅텅 비어서, 3분 카레조차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딱 하나 밭에서 딴 야들야들한 오이가 남아 있었다. 댕강. 서걱서걱서걱. 간장 식초 고춧가루 마늘 깨 조금 조금 조금 조금 적당히. 뚝딱 오이무침을 만들어 최근 반해버린 값이 일반보다 50%나 더 비싼 1450원짜리 인도카레랑 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제대로 갖추어진 재료와 제대로 계량된 수치가 없으면 못하던 내가 무언가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뿌듯하다. 다음에는 뭘 해볼까 생각한다. 솜씨는 조잡할지언정, 요리는 내게도 치유의 힘을 발휘하고 있나보다.
# by | 2008/09/08 00:41 | I am | 트랙백 | 덧글(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