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골골

며칠 간 무리하다 허리를 부러뜨린 채 비행기에 탄다거나,
여행 중의 시간이 아까워 등허리에 파스를 두 개씩 붙이고 무릎에는 멘소래담을 바른 채로 종일 걸어다닌다거나,
비행기에서 내리면 타들어가는 건조함에 목이 붓고 알레르기가 오는 정도는 일상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일요일 정오, 비행기에서 내리자 목이 좀 따끔따끔했다. 물론 장시간의 비행으로 허리도 아팠지만 출국 시보다는 나았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웬일로 30분 이내에 모든 짐을 풀어 정리해넣었고, 심지어는 외할머니댁에 인사도 다녀왔다.
점심으로는 꼬꼬면, 저녁으로는 영국의 오미야게 막스 앤 스펜서의 스테이크 앤 키드니 파이. 그리고 밀린 케이팝스타 재방과 본방.
이러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새벽 눈을 떠보니 침을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의 고통, 오른편만 퉁퉁 부어버린 임파선, 그리고 열.
미식미식 상태가 정말로 안 좋았다. 그런데 누워 있는다고 더 좋을 것 같진 않아서, 9:30 출근인데 8:50까지 도착하여
돈을 줘도 안 먹겠다던 건물 지하 식당에서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고 9시에 바로 건물 옆 병원에 갔다.
열은 평소 내 체온인 35.9도에서 2.1도 높은 38.0도. 목 치료, 그리고 링겔 40분.
그리고 꾸역꾸역 일을 했다.
휴가를 다녀와서 밀린 일이라기보다는, 이 시기의 문제였다.
1월 마감인 달, 월초 업무가 있는 데다가 월말 업무가 설 때문에 당겨진 사이, 회사의 조직변경으로 부가적인 일이 많았다.
지금 조금씩이라도 쳐내지 않으면, 다음 주에는 더 큰 쓰나미가 몰려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임파선이 조금 가라앉는가 했더니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입 안이었다.
목은 부었다기보다는 부었다 가라앉은 면이 헐고 수포가 생겼고, 모든 잇몸이 퉁퉁 부어 쓰렸으며, 입천장은 곳곳이 헐어 있었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따뜻한 음료를 마실라치면 헐어 있는 잇몸들이 비명을 질렀고,
이건 피곤하고 힘들어서 생긴 병이니까 잘 먹고 쉬어야 해, 라고 해서 밥을 잘 먹으려고 하면, 이와 잇몸 사이에 무언가 닿을 때마다 찌르는 고통과 배어나오는 피맛이 점점 식욕을 잃게 했다.
그 와중에 회사일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 참고로 마법도 함께 왔다.

너덜너덜해진 입 안, 너덜너덜해진 마음,
"그다지 심해보이지도 않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한다"는 의사를 증오의 눈빛으로 째려보며 링겔을 한 번 더 맞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금요일을 보냈다. 차라리 굶고 입 안을 쉬게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뱃살 좀 빼보겠다고 빵 며칠 참으면 그 다음을 폭식으로 지새우는 내가, 금요일 밤 8시에 밥 한 공기, 토요일 오후 4시에 밥 한 공기를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고통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날부터 현재까지 2.8kg가 빠져주었다.
약속도 웬간한 건 취소하고 집에 앉아 있는 연금생활이다. 밖에는 햇살이 너무 좋다. 그런데 집에서도 싸짊어지고 온 일을 해야 한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그 와중에 즐겁지 않은 채로 잠들었더니, 또 복잡한 꿈을 꾸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고민투성이다.

꼭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아프고 힘든 얘기를 적고 가는 것도 우스워 관두려고 했는데, 그래도 뭐든 적는 게 나답다고, 그게 정말 나중에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거라고 격려해준 친구의 말을 듣고 적어내려간다. 여행기든, 푸념이든, 자랑이든, 뭐든. 내가 살아 있기는 했다고 남길 수 있는 것들. 적는 것 자체로, 나를 생산해낼 수 있는 것들. 뭐든. 하나씩. 여전히. 나는 발버둥치고, 살아가려 애쓴다.

by kisa | 2012/01/15 11:59 | I am | 트랙백 | 덧글(2)

[Vancouver] Victoria에서의 고상한 휴일

혼자 외딴 곳에서의 고즈넉함을 느껴보겠다고 어드메의 누가 그랬더라...? 호스텔의 common room에서,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나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며, 어 나 어제 어디 갔었는데 거기 참 좋더라, 오늘은 여기 갈 생각인데 함 가볼텨? 그거 좋지! 뭐 이런 시트콤을 막연히 떠올리며, 처음 만난 누군가와 나를 잊는 시간을 보낼 상상을 했던 나. 물론 그래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럴 뻔뻔함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단은 장소가 틀렸다. 내가 고른 호스텔은 다운타운 한 중심에 있다는 유명한 세 곳과는 일단 떨어져 있었는데, 싼 가격과 젊음의 향기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접은 건 "주말엔 잠들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밤새 시끄럽다"라는 코멘트 때문이었다. 왁자지껄함과 재미를 택하냐, 안락함과 개인주의를 택하냐, 하면 결국 후자인 것이다. 세인트 클레어 호스텔은 내 방 아가씨 이외의 사람을 마주친 적이 화장실 앞에서 딱 한 번인가 있을 정도로, 정말이지 복도에서 서성이며 지도를 보는 사람조차 없는 곳이었다. 두 번째로는 내 상태가 영 글러먹었다. 막연히 혼자 있을까 해보긴 했지만 결국은 캐나다 1년 살았던 나까뎅 양한테 코스 추천을 받은 것 외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고, 딱 하루 퇴근 후 도서관에 가서 여행기 세 권을 훑고 나온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심지어 한 권은 록키 카 캠핑에 대한 책이었고, 한 권은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캐나다 읍내에서의 생활을 그린 에세이였다). 그렇게 나는 또 막연하게, '아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멍하게 흘러와 밴쿠버란 도시, 2층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럴 때 밍쓰군의 문자가 왔다. [피곤할 테니 실컷 자고 일어나면 연락을 해라(영어임...!)]. 난 빙긋 웃으며 답문을 찍는다. [됐다 고마 난 여행 다닐 때는 아까워서 일찍 일어난다(카톡이 없어...!)]. 그렇게 일요일 아침 호스텔 문을 열자 밍쓰군이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지난 겨울 캐나다에 오셨던 부모님을 모시고 다닌 일정을 바탕으로, 밍쓰군은 아주 총체적인 플랜을 짜두었다. 오늘은 밴쿠버 아일랜드, 빅토리아에 가는 날이란다. 난 손에 음료수를 한 병 들고 시키는 대로 한다. 표를 찍으라면 찍고, 점심꺼리를 사라면 사고, 동전을 준비하라면 준비하고. 물론 그 와중에 밍쓰는 핫도그, 나는 부리또라는 식으로 내 취향을 주장하거나, 버스 기다리는 동안 옆 건물이라도 구경하고 오자는 제안을 덧붙이거나, 별 거 아닌 거에도 사진기를 들이댄다. 여행을 즐기는 피는 따땃이 데워져가는 것이다.
의외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먼 여정에서, 어쩌면 무심코 흘려보냈을 20분의 delay 때문에 이후 1~2시간을 손해봤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시간표를 보고 간들, 중간중간의 환승대기 시간은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그러나 우리는 더는 아둥바둥 뛰기가 귀찮았고, 여유의 값어치도 알고 있었으며, 미묘한 시간이 남아도 그것을 활용할 줄 안다. 빅토리아에서 타고갈 버스를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저기 앞쪽에서 애들이 펜스에 기대어 뭘 하나 본다. 밍쓰가 총총 쫓아가더니 알사탕만하고 탱글탱글한 블랙베리 딱 한 알을 따온다. 헤헤 웃으며 손가락으로 슥슥 닦아 새콤함에 얼굴을 한껏 찌푸려본다. 숲 한 가운데인 듯한 정류장, 내려서 20분은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노느니 몇 걸음 걸어가자 정말 작은 마을에 폐업 예정인 비디오 가게에서 세일을 하고 있어서 굳이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찾아본다. 이층 버스의 맨 앞좌석에서 햇빛 부서지는 해변가 마을 풍경이 부러워 빠져들듯 바라보기도 하며, 오후 4시가 거의 다 되어 첫 번째 목적지인 Butchart Garden에 도착했다.

사실 밍쓰군이 챙겨온 팜플렛만 봤을 땐 유치찬란한 색색가지 꽃들이 무슨 꽃 박람회 같이 전시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나, 싶은 입구를 지나 살짝 숲길 같은 골목을 지났을 때, 어엇, 하고 눈 앞에 펼쳐진 Sunken Garden을 봤을 때 절로 터진 감탄이란. 아아 표현도 유치찬란해. 하지만 정말 마법에 걸린 비밀 장소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는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울기의 햇빛, 적당한 온도와 바람, 그런 것들이 모두 마법을 함께 걸어준 것이 아닐지. 꽃 하나하나가 예쁘고 신기하고 탐스럽고 보송보송하고 그렇기도 했지만, 그 속을 거니는 그 기분이란, 그래, 햇빛이 절반이었다. 불타는 듯한 노랑의 나무. 조각해놓은 듯이 섬세하게 포개진 꽃잎들. 여기를 지나면 분수, 저기를 지나면 연못, 장미덩굴의 아치를 지나, 일본식 다리를 건너, 풀밭을 한 번 뒹굴고, 그렇게. 잠시 앨리스가 되어. 맨손에 가방 하나를 달랑 맨 기분을 만끽하며 떠나고 싶지 않더라. 뭐 그 와중에, 그 옛날 그 귀부인께서는 얼마나 자산이 넘쳐나셨길래 개인적으로 이런 정원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면서 질린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또 그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곳을 나에게도 공개해주셨다는 사실이. 단순이 땅의 넓이와, 꽃의 종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는 공간으로 매일매일 가꿔간다는 것이 얼마만한 정성과 배려의 결정체인가 싶다.


빅토리아 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1898년 세워진 주의사당 건물과 1908년 세워진 빅토리아 최초의 호텔, 엠프레스 호텔이 바라보고 있는 석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그 두 건물을 설계한 전도유망했던 건축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옛날 이야기처럼 들었다. 아름다웠던 아내가 병들자, 어린 여자와 눈이 맞아 가혹하게 굴었던 사람, 그리고 후회와 쓸쓸한 죽음. 이번엔 마치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간 듯, 담쟁이가 뒤덮고 있는 낡았지만 아름다운 호텔과, 위풍당당한 주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그 인물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더불어 한가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넓은 잔디밭에 잠시 드러누워 역사의 무대 속에 잠시 머물러보았다. BHC 치킨 돗자리를 챙겨온 밍쓰군 센스쟁이...!(2)
아무리 여유를 부리고 싶은 여행이라고 해도, 몸이 온전한 상태로 숙소로 들어가기는 해야 할 것이다. 전철이 끊기기 전에, 버스가 끊기기 전에, 무엇보다 배편이 끊기기 전에. 항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려는데 잔돈을 안 거슬러주는 캐나다 버스를 타기엔 동전이 모자라다는 걸 깨달은 나는 3분 이내에 길 건너 자판기에 가서 적당한 종류의 잔돈을 받을 수 있는 가격을 계산, 그 와중에 안 먹어본 맛으로 과자를 고르고 달칵달칵 철컹 집어들어 무단횡단을 감행하여 돌아온다 세이프...! 기대하던 애프터눈티는커녕  저녁도 못 먹었지만 또 2층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바라본 바다쪽의 하늘색이 너무 고와서 배부른 듯 웃음 지으며 행복해한다.

밤 9시의 페리 안은 선내가 굉장히 넓어서 더 그런지 어쩐지 이민선 같았다. 피곤해서 여기저기 지쳐 쓰러진 사람들. 식당 안엔 축축한 공기. 어린이 놀이공간도 썰렁하게 비디오만 돌아가고 있다. 바깥에 나와 본다. 밤바람이 무섭게 차다. 빛이 없어 나는 몇 개의 밧줄 더미와 선체 부속을 마치 망해서 문을 닫은 극장식 레스토랑의 피아노와 원탁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다. 바다를 바라본다. 새까맣다. 거기에 하얗고 둥근 달. 달빛이 물 위에 만드는 궤적. 작은 불빛 외에는 새까만 공간을 바라보며, 잠시 바람 소리만 듣는다. 텅 비었다고 생각한 내 안에 아직도 덜그덕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몸이 차게 식는다. 소리도 가라앉는다. 누구도 보채지 않는 이런 고요를, 원했던 것 같다. 선내에 돌아오니, 온기가 손끝부터 돌아온다. 완방, 완충. 밴쿠버에서 나는 온기를 채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by kisa | 2011/12/03 23:24 | I remember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Vancouver] All the way to Vancouver


입을 앙다물고, 어금니를 깨물고 버텼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게 스르르 빠져나가고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7월 8일 논문을 제출하고, 털어버렸다. 털기로 작정했다,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지만. 떠나고 싶어졌다.
난 집이, 학교가, 회사가, 내 자신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할지라도 무작정 청량리역에 가 기차표를 끊고 남쪽으로 떠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부유하는 듯한 마음 속에서 한 쪽 발에는 족쇄가 매달려 있었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앓을 만큼 앓고, 다 책장 위에 서랍 속에 정리해둔 다음 떠나기로 결정했다. 시끌벅쩍 사람들이 행복한 여름을 피해서, 가을에 떠나야지. 스스로에게 주었던 지갑 선물 하나, 그리고 여행 선물 하나. 졸업, 여행.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누구 하나 나를 알아보지 않고, 지금의 내 얘기를 꺼낼 필요 없이 그냥 나인 채 부딪히고,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려오지 않고, 정말로 떠나왔다는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보았다. 2008년 계획했던 스페인 여행의 아쉬움도 있고, 이제 슬슬 까먹어 가는 스페인어 실력의 불안함도 있어서 우선은 스페인이 1차 목적지로 떠올랐다. 그런데 기력이 바닥인 상황에서, 늘 하던 만큼 여행을 계획하고 공부해 떠날 자신이 없었다. 삿포로에서처럼 또 혼자 남아, 멍하니 우울함에 목덜미를 잡힌 채 아무것도 못하고 빙빙 헤매기만 하는 모습도 떠올라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밴쿠버에 1년째 계신 4000자 쪽지 테라피님과 오랜만에 네이트온 대화를 하는데, 부모님 모시고 캐나다 록키를 다녀왔단 얘기를 한다. 너도 와라, 올래? 응. 그렇게 두 마디로 결정됐다. 덥썩. 토레스 델 파이네가 내게 줬던 감동만큼, 큰 산을 보고 뻥 뚫리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던 게 하나, 그리고 아무 생각 않고 내맡기고 싶었던 게 하나. 그래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중에, 그나마 싼 왕복 3번 환승의 비행기표를 끊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스마트폰 하나 없는 나 때문에 시차 14시간을 극복하고 얘기라도 나누려면 국제문자를 보내서 네이트온을 들어오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 컴퓨터에는 네이트온이 깔리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 나는 바빴다. 2008년 후쿠오카가 생각날 정도로 절망적인 척추 상태로 캐나다 여행을 준비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짐에 파스와 케토톱을 봉다리봉다리 싸 챙겼으니까. 게다가 지난 며칠간 체온이 치솟았다 차게 식었다 오락가락하면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늦게 잠들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아침에 마지막 숙면을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새벽에 뾰로롱 나를 깨우는 문자 소리.

"안녕하세요? OOO 아시는분이세요?ㅎ 오늘 같은 비행기 이신거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띄어쓰기 그대로 옮김)

...넌 누구니? 새벽 7:43에 나를 깨우는 너는 대체?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짜증과 함께 다시 잠들지도 못하고 설치고 있는데 8시가 넘어 테라피님의 문자가 왔다. 메일 확인 요망. 확인했더니 친구의 동생이 같은 비행편인데 덜 심심하게 같이 오라고 연락처 가르쳐줘도 되겠니? 라는 메일이었다. 테라피님은 최소한 나에게 먼저 물어보는 제스쳐를 취하려고 했고(결과적으로 답과 관계 없이 미리 알려준 셈이지만ㅋ) 늦잠쟁이 나를 아침 8시까지 기다려주었는데. 이 가시나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문자를 흰새벽(내 기준엔!)에 보내면서 자기 신원은 하나도 밝히지 않고 연하인 주제에 테라피님에게 존칭도 안 붙이고 문자 내용은 꼭 답장을 뭐라 보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보내냐! 결정적인 건, 난 비행기 탈 때, 아니 이동할 때 친구 외의 사람이 옆에서 말동무 하는 걸 전혀 즐기지 않는다는 점. 말동무 없어도 저어어언혀 심심하지 않다는 점. 고속버스 안 내리고 23시간 타봤어? 비행기 10시간 정도야 껌이라니까? 내 공항 허세의 궁극을 뭘로 보는 거야?
마을버스를 타고 삼성역에 가 15분마다 반드시 출발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리무진을 탄다. 일찍 도착하여 미리 지정한 좌석으로 무인 체크인, 그리고 자동 출입국 심사 등록. 면세품을 찾고, 테라피님 담배 심부름을 하고, 평소엔 쓸 일 없는 스타벅스 상품권으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지난 번 여행에서 얻은 크라제 공항쿠폰을 사용해 거기서 1시간 여 죽치고 여유를 즐긴다. 비행기는 일찍 탑승하여 캐리어 공간을 확보하고 반드시 미리 추가 베개를 달라고 말해놓는다. 자리에 앉아 등 뒤에 베개 두 개와 바람 불어넣는 허리 베개, 목 베개를 위치와 두께 조정하여 배치해야 내 화성인 뒤통수가 꺾이지 않거든.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수면양말로 갈아 신고 지난 여행에서 챙겨온 1회용 슬리퍼를 신은 뒤, 그 껍데기 비닐을 바닥에 깔고 내 가방을 올려놓고 MP3를 귀에 꽂으면 갈 준비는 완료...!

그런데. 전화로 크라제 옆 KFC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 알고보니 체크인도 안 한 채 2층이 아닌 1층에 있어서 찾으러 내려가게 만든 데다가 자기는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네. 배고파서 먹었다더니 반쯤 먹다가 버리네. 체크인 하는 데 문제 생겨서 그것까지 기다려주고 들어가려 했더니 자기는 동화면세점 물건 찾아서 들어가야 한다고 먼저 가라네. 나는 비행기에 일찍 타고 싶은데 그녀가 면세품 봉지봉지 뜯어서 정리하는 동안 줄은 저만치 길어져버리고. 환승 지점인 샌프랜 공항에 내려 웬일로 입국심사 줄이 내 줄이 제일 빨라!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아! 쟤는 옆줄에서 한 없이 뒤처져 있거든! 난 곧 오빠와 만나야 하는데! 나와서 아무리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는 그녀. 공항 앞은 정차 금지. 산호세에서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와준 오빠. 난 신경질을 팍팍 내다 차에 올라타버렸다. 시내까지 데려다 주기라도 하려 했드만. 한참 뒤 전화가 와서는 어디냐더니 자긴 짐을 부치고 왔단다. 왜 내가 죄책감을 느낄 상황에 처해야 하느냐고! 내 3명의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편견 가득찬 말은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공대에서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손가락 까딱 안 하고 지내다 S전자 들어가 안락하게 지낸 마이페이스가 눈에 보인단 말이지...!(자폭) 한국에서 신경 써야 했던 수많은 것을 내려놓고,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려 떠난 여행길이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었다. 쟤는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물어봐야 하나 무시해도 되나. 아예 처음부터 "난 혼자 다니는 게 좋아, 너도 여행 잘 하렴" 그러고 인사하고 혼자 체크인 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아아,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의 정반대 상황이라고! 여행일정이 거의 같다고 했는데 설마 테라피님은 넷이 어울려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산호세에서 근무중인 오빠는 살이 좀 쪘다. 지난 5월 가족여행에서 오래 타고 돌아다녔던 그 차를 몰고, 샌프랜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가니 햇살이 반짝반짝. 자기도 서너 번 정도 와봤다는 이 도시에서 둘이 뭘 해볼까 고민하며 우아해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산물이 싱싱한 도시! 지나가는 길에 Folsom Street 간판을 보았지만 우리 회사 본사가 어느 건물인지는 못 알아보겠더라. 오빠가 대강 구상한 코스대로 마켓 플레이스에 가고, Pier39를 구경하고. 몇 달 전 산타 모니카에서 봤던 풍경과 비슷하다. 아기자기하고 재밌는 간판들, 외국인들이 있지만, 미묘하게 여행을 떠나왔다는 느낌은 안 든다. 익숙한 영어에, 익숙한 서양사람... 이미 화려해진 서울거리 때문일까? 이번엔 언덕길을 올라 지나가는 전차를 보고 부에나비스타에서 아이리쉬 커피를 마신다. 따끈따끈... 원탁에 서로 모르는 여행자들이 모여 앉아 고향 얘기를 하고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오후가 되자 금세 안개가 끼고 chill이 느껴지는 이 기후에 썩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자연환경과 사람의 습성이 맞아떨어지는 여행지의 모습에 즐거워하곤 한다. 그리고 철 든 뒤로는 이미 함께 지낸 시간보다 따로 지낸 시간이 더 긴 것 같은 오빠와 나는, 그래도 친구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혼자만 빨리 먹고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지만. 또 대체 언제쯤 이런 랑데부가 가능할까 싶다. 서로에게 낯선 장소에서, 둘만 있는. 서로에게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 이럴 기회가 또 있을까?

샌프랜에서 밴쿠버까지의 이동은 길지 않다. 싼 표를 찾은 탓에 미국항공을 이용했는데, 정말이지 이럴 때 국적기 생각이 나나보다. "이 가방 좀 위에 올려주실래요?" "싫어." 으에엥? "나는 못하겠고, 남자 한 명 불러다줄게." 어엄... 다가온 남자 왈. "엄청 무거워보이는데?" "미안, 나 등이 아파서.. ^^"  "나도 등 아파! 이런 거 맨날 들어주다가 골병 드는 거라고. 자기가 들 수 없는 가방이면 들고 오질 말아야지!"라며 웃는 낯으로 미간은 찌푸리고 실어주는 승무원... 괜찮은 상태였으면 웃어줬을 수도 있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보니 역시 국적기가 그립다. 게다가 안내방송은 영어를 내 말투로 해석해서 들으니 코미디다. "...이륙할 땐 말이야, 전자제품 전원 좀 꺼줘. 전화나 와이파이 기기는 물론이고, MP3든 비디오든 대기보드든 비행중 모드든 상관없이 ON/OFF 버튼이 달려 있는 물건이면 몽땅! 이착륙할 때 10분씩은 OFF에 놓으란 말야. 쓸 수 있을 테는 얘기해줄 테니까, 응?"

한밤중,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밝은 데도 적막한 느낌. 여동생이 언니한테 전화를 하니, 둘이 마중하러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처음에 밴쿠버에서 시내 가는 교통편 좀 알아달라고 했을 때 테라피님은 "에엥? 마중하러 가려고 했는데" 했고 나는 "에엥? 그런 거 기대해본 적 없는데"라고 하다 웃었다. 거의 한 1년 만에 보는 거든가... 원래도 1년에 한 번이나 많아야 두 번, 모임에서 다 같이 보는 사이였는데 그러고보니 둘만이서 보는 것도 처음...아니 두 번째구나. 한밤중, 새벽에 네이트온에서 까만 밤과 음악만 있을 때 나눴던 테라피 대화들 외에는 둘이서 얘기해본 적도 별로 없다. 여행 직전, 부모님이 "그런데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니?"하고 물어보셨을 때 순간 "영미.....ㄴ이요"하고 성전환을 시켜버릴 뻔했는데, 지켜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왠지 어색한 기류가 흐르지 않을까, 테라피님...! 하고 걱정했는데 친구와 나타난 Minx군의 얼굴은 너무나 환했다. 너 정말 여기 생활이 맞는구나...;; 살도 찌고 아주 화색이 돌아;; 악수도 절도 없지만, 서로 얼굴로 인사하고, 내 짐을 끌어주고 지하철을 타려고 한다. 이미 여행 동안 쓸 회수권도 구입해주어서 바로 쓸 수가 있다. 이런 센스쟁이...!(1) 자매를 버려두고 무인 지하철의 맨 앞에 앉아, 여행 갔다가 술병 나서 며칠 연락이 끊겼던 안부도 묻고, 밴쿠버 시내 지하철의 역사도 들으며 간다. 자정을 넘긴 시간, 다운타운의 내 호스텔까지 바래다 준 뒤, 내일 만날 약속을 정한다. 오늘 하루의 걱정이나 짜증은 싹 녹아내린 채, 아주 평화로운 마음으로, 달달한 기대로, 밴쿠버 여행이 시작되었다.

by kisa | 2011/11/20 11:49 | I remember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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