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4일
[이런느낌] 선택지 자체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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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가 않다"-고 분명 말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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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의 속성은 변화가 없는데, 자리 잡은 타이밍만으로 모든 것이 변화해버리는 상황은 언제나 의아하다.
"이게 일어난 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다른 상황이었다면..."이란 가정은, 보통의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것보다 더 실현가능성이 높고 비껴나간 정도가 적을수록 더 억울한 심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를 테면 흔히들 웃으며 말하는, 애인이 없을 때는 주변에 눈에 띄는 이성 한 명 없다가 애인이 생긴 후에 갑자기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얘기나, 배를 움켜쥐고 굶주리는 백수시절에는 그렇게도 채용 공고가 안 나더니 간신히 어디 한 군데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헤드헌터들이 전화를 걸어오는 상황이랄까. 내가 절실하고 필요로 하는 순간 나타나면 그 효용과 반가움의 정도가 원래 속성의 200%는 될 텐데, 내가 흥미가 없을 때는 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는 더 나쁜 타이밍에 다가왔을 경우에는 좋은 기회가 나를 기분 나쁘게도 만든다. 쇼윈도에서 보고 점찍어둔
채 군침만 흘리던 드레스를 숙고 끝에 질렀는데 다음 날 반값으로 세일을 하고 있다든가, 아이폰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거금 들여 뉴초콜렛을 질렀는데 액정 스티커도 떼기 전에 아이템이 풀릴 경우라든가.
이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의 가치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정도가 낮을수록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만족하고 있다고 해서 반대편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그게 단순히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지 못했으나 내가 큰 가치를 둔 사안일수록. 게다가, 물건처럼 막 생각하면 어떻게든 "질러버릴 수 있는" 품목이 아닌, 내가 한 순간에 단 한 가지의 경우밖에 선택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현재에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러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닌가.
가치를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대한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서 번민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최단화 시키는 것이 나름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게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미치겠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때가 있다. 소소하게는 주말에 방바닥에 누워 '오늘은 차를 마시러 갈까 영화를 보러 갈까 쇼핑을 하러 갈까?'라는 선택지를 빙글빙글빙글 돌릴 때가 그렇고, 크게는 사표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가 그렇다. 가벼운 사안이면 몰라도, 무거운 사안일 때 내게 선택지가 여러 개 주어졌던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학교를 여러 군데 붙어서 골라간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할 때도 물론 아니었다. 연애에 관해서도 두 말 할 일 없네. 선택 자체가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우선순위가 92와 8 정도로 명확해서 순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구분이 명확하거나. 편두통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을 상황이 오자, 답은 일을 그만두는 것밖에 없었지, '다른 쪽으로 갔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싶은 기로에 선 적이 없었다.
가장 최근에 봤던 면접에서 어쩌다보니 내가 경험을 넓히고 열심히 사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시간을 쉽게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알차게 활용해서 뭐라도 하나를 더 획득하면, 나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숫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흔하게는 부모님들이 자식한테 "일단 대학은 가고 보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지금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안 했는데 나중에 그게 없으면 억지로 포기해야만 하는 선택지가 나타날 때 무지막지하게 후회하지 않도록. 선택지가 여러 개일수록 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요지였는데, 면접관은 껄껄 웃으면서 "I don't think so"라고 화답했다. 그때 난 웃으며 "어 그런가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도로만 말했지만, 이제와 그 말을 실감한다. 선택의 여지가, 나를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단순히 그냥 선택지가 하나 더 주어진 게 아니라, 3개월 전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놓고, 행복의 최고조로 끌어당겨놓고는 서서히 짓누르다가 어느 순간 바닥으로 추락시켜버린 그 선택지가, 그걸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지금 상황에 쭈뼛쭈뼛 다가와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분통이 터질 지경이 되었다. 마음을 다독이고 접고 안주하려 했는데, 왜 이제 와서? 간신히 현재의 소소한 일상에 행복해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 순간에 모든 걸 버리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일생의 찬스가? 차라리 반 년 뒤면 모르겠는데 왜 지금?
그 기회란 것도 내가 "응"이라고 해서 바로 내 손에 떨어지는 건 아니기에, 모두들 미리 고민하지 말고 일단 내 손에 떨어진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고 말을 한다. 옳은 얘기고, 내가 늘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정에 그치는 지금도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괴로운데, 실제 그 처지에 서서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오면 얼마나 괴로울까? 단순히 아까워하고, "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손가락을 빠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죄어오듯 마음을 비비 짜듯 고통스러운데.
어제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은 완전히 저조한 기분으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눈 앞은 침침하고 생각도 제대로 흘러가지 않아 간신히 뒤죽박죽일지라도 단어를 뽑아내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쥐어짜내면 머릿속이 가벼워질까. 어째서 한쪽을 포기한다고 생각해? 한쪽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더 좋잖아? 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어느 한 쪽이 평소의 것보다 가치의 정도가 살짝 뛰어나다든가 어쩌다 다가온 행운 같은 게 아니라, 지금 놓치면 평생 다시 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기에 도저히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심정으로는 전환되질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면 내 머릿속의 셈틀이 던져놓는 질서 없는 문장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강해진다. 응석을 부리며 "그건 안 될 거야" "하지만 잘못되면 어떡해"라고 말끝마다 부정을 해도 찬찬히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준다. 네 눈 앞의 그게 전부는 아니야. 마음 편하게 다른 방식의 계기로 삼아봐. 가지고 있는 걸 포기해야만 하는 큰 기회는 좋은 기회가 아니야.
마법의 주문 하나로 깔끔하게 훌훌 털어버릴 만한 일은 아니기에, 아직도 눈꺼풀은 무겁고 나로서는 드물게 식욕도 없다. 열중할 업무도 없고 폭발하는 화도 없다. 아기가 요람에서 잠들 듯, 포근하고 보드라운 속에 파묻혀, 자장가 같은 흥얼거림으로 위로받고 싶다.
# by | 2009/11/24 16:46 | I reckon | 트랙백 | 덧글(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