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 사람은 고쳐쓸 수 없지만 망가뜨릴 수는 있다

과격한 제목이 되어버렸지만, 고쳐쓸 수 없다는 얘기는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관용구인 것으로.
나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오랜 세월 나의 명제였다고 생각된다.
MBTI를 배워 분석도구를 활용할 수 있게되기 전에도, 후에도 궁금했었고, 지금은 어떤 것을 보편적인 틀로 볼 것인지, 어떤 것을 경험에 의한 특수성으로 볼 수 있는지, 또 그 성격이 나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며 시간을 보내다니 어찌 보면 내가 내 관심사인 셈. 그런 요소들을 나열하며 하나씩 간단히 글로 적어내고 싶은 마음이 뾰로롱 올라왔다 휘리릭 사라지는 경우가 조금 자주 발생하면서, 웬일로 일요일 밤 잠들지 않고 노트북을 열었다. 다만 첫 번째 주제는, 성격은 변하며, 그 원인은 물리적인 한계라는 지점이다.

아마도 출산을 겪으며 토해낸 지난 일기에 언급하지 않았을까 싶고, 누군가의 대화에 여러 번 써먹었던 꼭지인 듯 싶지만 다시 한 번 적어본다. 그렇게나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성격이란 것, 생활습성이라는 것이 변하고 만다. 내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인, 육체의 한계가 올 때. '멍하니 있는 것', '잠깐만 쉬는 것'이 왜 필요한지, 굳이 왜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20대의 나는,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보거나 읽거나 끊임없이 상상하였다. 그것은 요즘에 와서 쉬지도 않고 핸드폰을 켜고 게임을 돌리거나 8시간마다 무료 웹툰을 보는 것과는 굉장히 달랐던 시절이다. 어떤 시간도 허투로 보내기 아깝다고 생각했던 시절. 매일매일 무언가를 내 안에 '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시절. 그것은 제일 먼저 2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는 쪽잠 생활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빼먹지 않고 분유와 기저귀를 조달하고 쑥쑥 커가는 몸에 맞춰 내복을 구입해야 하는 시기에 명백히 희석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갈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홈페이지로 링크를 타며 외로움과 자괴감에 빠져들던 20대의 밤의 시간들과 달리, 가만히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업데이트 없는 한정된 앱을 왔다갔다 하는 시간은 나를 마비시키고, 시간을 죽이고, 내 체력과 멘탈 로드를 회복시켜주었다.그렇게 가만히 1시간씩 예사로 흘려보내는 내 자신에 자괴감을 느낄 때 남편은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처음으로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체력은 사람을 바꾸는구나.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해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던 성격 또한 금새 식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자"고 농담으로 되뇌이던 회사원의 결심 정도가 아니었다. 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 쌓여 있는 빨래, 끈적이는 타일 같은 것을 슬그머니 피해다니며 '못 봤다'고 치부하고 잊어버리자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잊은 상태로 변신할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하루 날 잡고 해치웠을 책상 정리 같은 것도, 한 칸씩 간신히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과의 싸움도, 어떻게든 결판이 날 때까지 입씨름을 했었던 것이, 덮어두고, 넘어가고, 다음에 다시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삼세번 발생하면 그때 가서 그때의 기분으로 고민하자고. 심지어 조금만 치열하게 머리를 돌리다보면 만화적 표현으로 푸쉬식... 하면서 사고회로가 멈춰버리기까지.

26살의 나는, 모든 것을 정비하려 했고, 모든 틈을 끼워맞추려 했고, 회사 일이나 사람의 일로 잠이 들지 못했다. 1년 후배에게 너는 어찌 그리 천하태평이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매번 치고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어떤 일에 대해서 물을 때, 언제 누가 어떤 제목의 문서로 오갔었는지를 기억해서 바로 찾아낼 수 있었고, 팩트를 외우지는 못해도 사실관계와 방향을 기억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36살의 나는 아웃룩을 굉장히 잘 활용하여 제목으로, 사람으로, 키워드로 검색을 해냈고, 10년 넘게 쓰고 있는 위클리 다이어리에는 다 적지 못할지언정 캘린더에 할일을 박아두고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사가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고 전혀 뚱딴지 같은 지시를 내릴 때에는 성질을 내고 몇 번은 면전에다 뭐라 하기도 했었다.

40살의 나는, 메모를 집어 들고 읽을 때 팔을 쭉 뻗고 고개를 뒤로 젖히게 되었다.
한 화면에 쏙 들어오는 엑셀 셀 맞춤을 좋아하던 주제에, 글씨을 읽을 때는 화면 비율을 150%까지 키운다.
아이를 재우다 침대에 오면 2시간씩 시간 낭비하고 잠을 못 잔다고 투덜대던 내가 어디 갔는지,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잠자고 만다.
척추와 관절과 근육의 문제로 허구헌 날 아프고 이제 25킬로에 육박하는 아이를 안는 것은 절대 금지인 건 둘째 치고, 
집에 진통제만 100정 들이를 병으로 사고 종류가 너댓 개인 것도 그렇다 치고,
이명이 왔다. 귀에서 냉장고 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나를 정신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진심으로 심각하게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

출산 때문이다, 육아 이후의 멘탈 로드 때문이다 타령은 많이 해보았다.
외출할 때, 외출해서도 늘 뭔가를 빼먹고 다니는 것은, 남편이 2가지만 챙길 때 나는 10가지를 챙기려고 노력하다가 하나가 빠지는 거라고 말해보았다.
여행의 기억이 섞이고, 호텔방의 모습이 기억 안 나고, 친구들이 어울려 대학 시절 얘기를 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건, 사람마다 남기는 추억이 달라서라고도 우겨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업무 얘기를 하는데, "아 그때 그런 논의를 했었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었더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어슴프레, 한 정도를 넘어서 떠오르지 않을 때도 생겨버렸다.
엑셀 문서를 보다, 아 이건 이렇게 고쳐서 이런 식으로 작업해서 만들어놔야 하는데,,, 하다 저장하려고 폴더를 열면 이미 그렇게 '내가' 만들어두었다든가.
너무나 다양한 꼭지의 일을 저글링 하다보니 일일이 다이어리에 적지 않고도 생각날 때마다 처리하며 그러면서도 대략 놓치지 않고 관리를 해왔고. 인사의 특성상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그 문제가 되었던 일을 기록하지 않고 머리로만 저장해두는 일이 적지 않은데. 큰일이다.
조만간 CPU고 RAM이고 다 느려지고 망가져서 자기가 시킨 일을 기억 못했던 그 상사처럼 되어버리는 게 아닌지.

I know what you're going through, because I'm like you. You're so driven. You feel guilty when you are doing nothing and you tend to do more when there's less.
Now I know that somethings you should just do nothing. Just 'chill' and relax yourself.

이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내 변하지 못한 성격을 강타했던 "먼 윗선에서 내려온, 하등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의 끝판왕인 서류 작업" 때문에 심각한 번뇌에 휩싸였을 때, 레바논 상사가 해준 말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네 성격이 그래서 그래. 좀 쉬어도 돼. 좀 널럴히 해. 지금 생각해보니 전 직장에서의 전무님도 그랬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이명은 돌발성 난청이 아닌 이상 다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은걸요. 요새 재택이라 집에만 있고... 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딱히 아프지도 않고..."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몸에서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지쳐가는 몸이, 성격을 누그러뜨린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잠든 밤에도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맥주를 마신 채로 잠들어, 점점 허약체가 되어가는 나.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데, 기억력을 잃고, 돌파력도 능력도 잃어갈지 모르는.
100세 시대라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일기를 쓰고 있으면서도 운동은 하기 싫은.
사실은 성격이 몸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몸도 성격도, 고치지는 못하고 서서히 망가져간다. 
이런 결론을 쓰려고 제목을 지은 건 아니었다고!!!!

by kisa | 2020/05/24 23:26 | I reckon | 트랙백 | 덧글(2)

[일기] 봄...?




이렇게 벚꽃이 오래 가는 건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든다. 늘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다 마주치는 벚꽃은 가로등불 아래였는데. 그 흔하다는 꽃놀이도 가본 적 없었는데, 올해는 벚꽃을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고,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줄을 서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는 게 금지되었다는 숱한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 앞의 어여쁜 광경을 무심하게 보기보다는 최대한 눈에 담으려, 즐기려 하고 있다.

가끔씩 했던 재택근무는 방해 받는 일 없이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는데, 계속 집에 있다보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되고 흐트러진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없나 생각하게 된다. 어쩌다 사무실에 나가면 어찌나 쾌적하고 효율이 잘 나는지. 2월부터 베트남을 추가로 맡게 되면서 TC를 할 일이 많이 생겼는데, 타국의 팀과 같이 일하는 그 거리감은 오히려 현 상황으로 인해 줄어든 느낌이 든다. 한국 내 동료들도 화상으로 보게 되니까, 비슷한 거리감각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의 방식에 대해 배우는 것은 단순히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틀을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 법인의 사장, 동료, 내가 속한 곳과 다른 HQ의 수많은 다른 파트너들. 인내심을 가지고 알아보고 일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Don’t Panic!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한계는 한계다. 그것을 곱씹을 필요 없이 일해야 한다. 단 내 천성 때문에 답답해지는 것은 비효율성이다. 두 단계로 할 수 있는 일을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일주일의 기한을 모두가 ‘다음 날 당장’으로 요구해야 하는 상황들. 예상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인 구역 분배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얻은 게 있고, 직장인의 로망을 이루었으니. 덤으로 모닝캄이 된 상황에 베트남 출장 갈 때 비즈니스를 잔뜩 탈 것도 기대했으나, 어느 날 벼락같이 비즈니스 기준이 6시간으로 변경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호치민은 5시간 45분. ㅠㅠ

끊임없이 조직변경의 과정을 거치며 심난한 사람들이 많다. 뭐하나 쉽지 않고, 억울함도 생긴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걸 효율적이라고 말하며 뭉치고, 덩치만 커진 조직에 더 높은 사람을 앉히고는 돈을 더 쓰면서 일은 하나도 처리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볍게 여겨진다. 많이 싸워보았다. 하지만 소용 없다는 걸 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욕해준다. 이러다가 또 다르게 바뀔지도 모른다. 내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싶다. 시간을 쏟고 스킬을 써서 일궈내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 단순 작업이 있어도 좋다. 생기지 않았어도 되는 골치 아프고 예민한 갈등상황을 떠안아 해결해야 하는 게 싫다. 누군가처럼 남의 일인 양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어보기나 하면 되려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하나의 답이란 없는 법이니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정성을 담아, 노력하고 시도해보는 수밖에. 그래도 삼천녀는 너무했다. 며칠의 밤을 입맛을 잃고 잠을 못 이뤘는지 모르겠다. 늘,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하루의 연속이다. 점점 꼰대의 정의에 가까워진다는 것도 느낀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막막하다. 어쨌든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옆에서 함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아끼며 도울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근로시간 단축, 그 다음 해에는 휴직을 할 수 있도록. 일궈두고. 도움이 되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1달 정도,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더불어 준이는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명백한 스트레스 증상이었다. 지지난 주부터 열흘 정도, 더 복합적인 증상도 나타났지만 다행히 3일 전부터 사라졌다. 휴원기간동안 시간표를 만들어 오전에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몇 장씩 내준 숙제를 하면 게임도 시켜주고.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하고. 일정한 규칙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 사이에 책을 몇 권이나 떼었다. 아이패드 게임 덕인지는 몰라도 파닉스 문제도 금방 맞춘다. 아직 읽지는 못하지만. 부모로서 너무 부족함을 동시에 느낀다. 어떻게 키우고 싶다, 아이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나의 아들’에 대한 기대의 관점만 있고, 아이의 관점에서 그 애가 필요로 하는 애정이나 관심이나 놀이에 대해서는 도무지 같은 선에 서지를 못한다. 30분 놀아주는 게 너무 버겁고, 자꾸 집중이 안 되고, 아이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할 때는 화를 낸다. 이렇게 시도를 통해 잘 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의 두 배 정도로 나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반성이 된다. 단순히 입학 때 내가 근무를 줄이고 옆에서 ‘일을 처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아이에게 진심으로 심적인 지원을 해줘야 할 텐데. 여전히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전에 없던 유니크한 봄날.
무엇보다 세상이 건강을 되찾기를.

.재택으로 운동은 줄고 잠이 늘었다.
.그리 자주 나가던 여행이 모조리 취소되었다. 그나마 1월말 푸켓에 4박5일이라는 전에 없던 긴 일정으로 푹 쉬고 온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다. 대신 예전이라면 생각 못했을 국내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본다.
.남편이 혼자 지내는 방과 연구실 대청소를 위해 하루 다녀왔다. 먼지를 줄인 만큼 기침도 줄어들기를.
.프로젝트 기념 생일 기념 봄코트를 선물받아 전에 없이 애정하며 입고 있다. 날씨가 딱이다.
.음악적 재능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준이가 어느 날 뚝딱 작사작곡한 ‘배추야 데굴데굴 굴러가지마’가 진짜 멋있다.
.코나 1년. 1700킬로를 탔다. 운전이 능숙해졌다고 칭찬받았다. 아직 초보 딱지는 안 뗄 거다.
.브루클린 나인나인!

by kisa | 2020/04/15 14:21 | I am | 트랙백 | 덧글(1)

[맛] 커피에 지배당하는 것은

나는 원두의 품종이나 로스팅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커알못에 가깝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뭔가에 지배당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유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식탐이 좌지우지되고, 소비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생활패턴과 사회적 관계, 신체와 신경이 종속되게 된다면 무시무시한 지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생 시절, 커피 한 잔은 화폐 가치로 환산되었다. 2000년대 초, 2000원대 커피는 1시간 자릿세, 4000원은 2시간, 그리고 리필이 가능했던 신천의 어느 케익 나오는 고급 카페는 무려 6천원이었지만 3시간동안 내 작업실이 되어주었다. 식대에 비해 현격히 비쌌던 커피 가격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자릿세가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지만, 직장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카페에 죽치고 앉을 시간이 줄어듬으로써 그보다는 분위기, 새로움, 사회적 관계 맺기의 장, 그리고 당연하게도 커피맛이 더 큰 비중으로 매겨지게 된다.
적당한 사회적 관계에서 칼같은 더치페이보다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식대를 낸 뒤 카페로 옮겨 다른 사람이 커피값을 내고, 그 다음 만남에서는 반대로 하는 게 자연스럽게 용인된 암묵적 합의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삶에 침투한 통용된 문화가 됨으로써, 커피 한 잔으로 쉽게 감사나 축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게 커피맛이 중요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커피를 처음 시도한 것은 중2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밤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얘기에, 당시 과립커피에 설탕을 넣고 우유를 부어 마셨으나 정말이지 쿨쿨 잘 잤었다. 그도 그런 것이, 우리 부모님은 밤 10시 드라마를 보시면서 “굿나잇 커피 한 잔 타다오” 하고 시키시는 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끊고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은 커피보다는 초콜렛과 입가심 디저트에 대한 갈망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선릉역에 처음 생겼던 이디야에서 2300원 정도 했던 아이스 카페모카를 시키면, 어떨 땐 빨대로 두 모금만에 다 마실 수도 있었다. 꽤 오랫동안 나는 초딩입맛에 걸맞는 단 음료만 마셨다. 그렇다고 마냥 달기만 해서도 안 됐다. 쌉쌀함과 단맛의 양극은 매우 자극적이라,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가 처음 나왔던 여름,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에 샷 추가를 해서 둘이 나눠먹는 최적의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다.
음식의 맛, 특히 식감에 대해서 열의가 있는 나는 ‘음료맛은 거의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고,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마음에 든다/들지 않는다’ 정도만 구분했다. 2000원짜리는 개의치 않으나 3500원짜리 로즈버드 커피는 마시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려줄 정도?

커피와 관련해 내 인생의 분기점은 2009년 1월, 남미 여행 당시에 찾아왔다. 격한 피로감에 내 몸은 카페모카를 찾아헤맸으나, 페루의 호스텔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믹스커피뿐이었다. 나름 커피전문점처럼 생긴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마추픽추를 구경하기 전 쿠스코 광장에서였는데, 가게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시고 경악했던 내 기분과 밤공기는 기억이 난다. 걸쭉하게 잘 녹지도 않은 가루가 입안에 붙어 커피 맛도 초코 맛도 우유맛도 아닌 것이 내 욕망을 좌절시켰다. 그 후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건 라떼가 최선이었다. 그나마도 놀랍게도, 소가 사람보다 많다는 아르헨티나에 갈 때까지도 생유를 볼일이 극히 드물어, 프림과 비슷한 가루우유를 탄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탄산수를 같이 준다는 신기한 문화도 체험했는데. 어쨌든. 생유를 넣은 진짜 라떼가 내게는 최고의 만족감을 준 메뉴가 되었고, 남미에서 돌아온 나는 드디어 달지 않은, 라떼도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도 까만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쓰단 말이다.)
그후 점차 모카/바닐라/헤이즐넛/카라멜/연유 등등의 커피 대비 라떼의 비율이 슬슬 높아지게 되었을 때 또 하나의 분기점이 있었으니, 내 기억이 맞다면 T 할인으로 그나마 극악스런 가격을 무마했던 폴바셋 아이스라떼와의 만남이었다. (일단 얘네는 단 커피를 팔지를 않았다) 아이스라떼를 시켰는데, 달아! 단 건 하나도 안 들어갔는데. 에스프레소가 우유를 힘껏 껴안아서, 혀끝에 착 감기는 살짝 태운 듯한 카라멜 향에 달짝지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또한 남편을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눠먹는 양이 딱 적당했는데 언제나 아이스라떼밖에 시킬 수 없다보니 점차 맛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콜드브루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기 전 서울 최고라고 생각한 모비딕의 더치라떼도 커피의 풍미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고. 그 후로 새 카페에 가서 커피맛을 알아보고 싶으면 항상 아이스라떼를 기준점으로 판별을 한다. 내게 중요한 건 향보다는 착 감기는 카라멜 향.

2년 전 사무실을 이사하고 나서의 관건 중 하나는 주변에 커피샵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행운이랄까 곤혹스럽달까, 우리 빌딩 1층에는 폴바셋이 있다. 그 라떼맛은 사랑스럽지만, 가격은 착하지 않았다. 예전에 가까웠던 지점이 맛이 들쭉날쭉했던 걸 생각하며,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점이 좀 많이 맛있었다. ㅜㅜ 그리고 점장 아가씨가 너무나 친절했다. 아침에 아이스라떼 한 잔을 마시면 혀끝에서부터 입안 가득 향이 퍼지고, 머리끝까지 상쾌해지고, 몸 전체에 에너지가 솟아났다 ㅠㅠ 500원 할인과 환경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는데, 얼음이 녹지 않은 채로 진한 맛과 차가움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 향도 잡아주어 아침 10시에 산 커피가 오후 5시가 되도록 너무 맛있었다. 입구가 좁아 빨대를 쓰지 않은 채로 입 전체에 단맛과 고소함이 퍼지고 목 넘김도 좋았다. 이제는 텀블러를 내밀면 크루가 바로 메뉴에 “아이스 라떼 스탠더드 사이즈 오리지널 우유 얼음 적게 우유 정량 텀블러 할인 테이크 아웃”을 찍는다. 폴바셋 55% 할인이 되는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아 한 잔에 2,160원에 4번을 마실 수 있다.

문제는 서서히 다가왔다. 카페인 취약성. 아무래도 부모님의 유전자가 끝까지 나를 지켜주지는 못했나보다. 잠자리에 누워도 또랑또랑하거나 얕은 잠으로 피곤하게 깨는 일이 심각해졌다. 금지시간을 정하기 시작했다. 오후 9시, 오후 7시, 오후 4시, 급기야 최근에는 오후 2시로 앞당겨졌고, 이제 나는 점심 먹은 뒤 커피 사는 일 자체를 자제한다. 회사에서 공짜로 얻어먹을 일이 예상될 때조차, 점심 이후 먹지 않도록 내 돈 주고 아침에 사먹어야 하는 슬픔. 더운 여름 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시원하게 아이스 커피를 꿀꺽꿀꺽하지 못한다고 징징대던 내가 부러울 정도다. 어떨 때는 5시만 지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마시지 못해 꾹꾹 눌러참으며, 잠자리에 누워서 내일 아침에는 나가자마자 어느 카페의 어느 커피를 꼭 마셔야지 다짐하고 그 맛을 상상하며 잠드는 꼴이 되었다.
또한 신기한 게, 커피는 내 몸에 한계가 있을 때는 반사적인 반응처럼 마시는 걸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였다. 술 마실 때 엄청나게 안주발 세우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자제를 못하는데, 이상하게도 커피는 이따금씩 손이 안 가고 남기게 되었다. 폴바셋 라떼 텀블러 하나를 몇 시간씩 먹는 것도 그런 이유다. 퇴근할 때 반쯤 버리고 갈 때도 있다. 너무 맛있는데, 몸이 받아주지 못하고, 그래서 손을 대지 않는 반응.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자가진단 시스템을 작동시키게 되었다. 매일 아침, 나는 오늘 커피가 땡기는가? 얼마가 땡기는가? 어느 정도의 진하기가 합당한가? 달콤함이 필요한가 안 필요한가? 충전이 필요한가 벌컥벌컥 목 넘김이 중요한가? 이런 매트릭스에 의해 그날의 커피가 정해진다. 내겐 하루 한 잔밖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한 잔에 맥시멈 만족을 추구하는 일은 몹시도 크리티컬...!
1번 옵션은 폴바셋이지만 카페인 농도가 진하거나 할인수단이 다 떨어졌을 때는 패스. 진한 걸 원하는데 가격적으로 부담이 있다면 살짝 멀지만 그린마일이나 앤써커피 로스터즈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맛이 좋으며 양이 적고 가격이 착하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해야 해서 커피도 단 것도 필요하거나 농도를 낮춰야 하면 슈퍼커피 오렌지 비앙코.(사장님이 나는 늘 사이즈업을 해주신다 ㅎ) 단 건 못 먹겠고 낮은 농도로 벌컥벌컥이 필요하면 새로 생긴 건물 뒤 3500원 아이스라떼. 한여름에 오로지 벌컥벌컥이 목적일 때 지하철역 ‘가성비’에서 2500원 대왕 아이스라떼.
옆자리 사원이 카페에서 오래 일하던 경력이 있고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그녀가 커피를 사들고 오면 늘 쳐다보고 어디 건지 궁금해한다. 단 그녀는 하루에 몇 잔씩 마시기 때문에 가성비가 나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 늘 참고가 되지는 않더라. 나는 일단 이마트 카드로 모든 커피 10%가 되기 때문에 3천원대면 만족.

커피가 없으면 기운이 안 나고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세상 행복하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하다. 새로 괜찮은 카페를 발굴하면 무척 흡족하다. 커피값을 제대로 환산하고 저비용으로 운용하느라 온갖 애를 쓴다. 커피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날 고른 커피가 맛없으면 세상 화가 난다.

토요일 아침, 몇 주 전 캡슐커피 머신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과 마음을 촉촉히 젹셔줄 아이스라떼 한 잔을 마시려고 자유시간쿠폰을 사용해 동네를 헤맸다. 최근 개업한 연하지만 향이 좋은 카페는 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닫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산책 겸 옆 역에 넓었던 카페를 갔는데 커플이 꽉 차고 단체석밖에 안 남아서 문전박대 당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전통시장 옆에 한 번 와봤던 한가한 로스팅카페에 들어와 앉아 아이스라떼를 시켜 안 모금을 마셨는데, 어우야, 너무 좋네 ㅠㅠ 폴바셋보다 덜 진한데 현재 몸상태에서의 만족도는 동일. 100%. 더 바랄 게 없다. 아무래도 저번에 왔을 때는 당도가 필요해 바닐라라떼 덜달게를 시켰나보다. 녹은 얼음이 위에 물층을 만들어서, 젓지 않고 바닥에서 빨대로 빨아들이는 중. 지금은 5시 22분. 오늘도 수면이 걱정되지만, 낮에 나를 괴롭히던 두통은 좀 잊혀졌다. 원래 머리 아플 때 카페인 마시면 혈관이 좁아져서 안 좋다던데, 나는 두통약보다 커피가 좋더라.
자릿세의 개념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카페라는 공간은 일상에서의 탈출, 분위기 좋은 데이트, 힐링, 소확행과 같은 의미로, 삶에 침투한 것은 명백한다.
바이러스 시국에, 카페에 앉아 육아에서 벗어나 겨우 일기를 쓸 시간을 가지며, 써본다.

by kisa | 2020/03/14 17:24 | I lik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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