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산 너머 산

운동은 한 달을 지속하지 못했고,
출장 가서 아프기 시작한 건 한 달을 넘겼고,
공석 없는 상태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만두는 사례들이 정말 매번 놀라움을 갱신한다.
나는 사람이 이기적으로,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선택하는 것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선택해야 할 때는 선택해야 하니까.
하지만, 나이 40 넘어서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하고, 나중에 자기한테 화로 돌아올 행동을 저지르는 건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그 정도로 자기 감정을 주체 못하고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생활을 하면 안 된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무리 고되어도, 
가는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이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데,
그 믿음이 탁해지기 시작하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한 번에 끝나는 고민이 없다는 걸 알기에 도리도리 고개를 휘저어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떨 때는 다 그만두고 싶어진다. 
아니 그냥, 너무 애쓰지 말고, 잘못 될까봐 조마조마하지 말고, 
사람들이 괴로워해도 못 본 척하고 그렇게 일할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
말이 안 되는 걸 못 견디고, 비효율적인 걸 가만 못 놔두고, 못된 걸 참아넘기지 못하니까.
이제 역할 자체가 그런 거에 관심 가지고 조율하며 잘 굴러가도록 하는 역할인데.

내 손에서 떠나 있는 사안들이 있다면, 내 손으로 가능한 것들에 집중하는 수밖에.
일단은 물건이 많이 팔려야 분위기가 뜨는 법 아니겠나.
내가 믿었던 원칙들이 나를 배신한다면, 나도 목을 매지 말고 살 길을 찾아야지.

보약을 먹고, 비타민도 먹고, 운동도 하고.
이제 점심 넘겨서 커피를 먹으면 깊은 잠을 못 자니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고.
즐겁게 여행 다니고.
티비도 보고 책도 읽고.

준이는 날마다 예쁜 말도 더 많이 하고 미운 표정도 더 많이 짓는다.
어제는 나랑 놀이터에서 시소 타다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돼서 병원에 갔지만 금방 회복했다.
보드게임을 잔뜩 마련해 배틀사다리게임을 하루에 몇 판씩 하고, 
지면 우울해하지만 이제 "우리가 같이 무찌르자" 같은 말도 할 줄 안다.
"엄마 투표가 뭐야?" 같은 질문에 사물에 대해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되고
자기 전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필생의 창작력을 동원하게 된다.
한동안 WHO 뽀로로 or 폴리 WHERE 공사장 or 여행 WHAT 공항 or 호텔 등등 단어를 제시해주면 대충 지어냈는데,
얼마 전 최고의 햄버거를 찾으러 여행길에 떠났던 크롱이 돌아와 뽀롱뽀롱 마을이 햄버거 마을이 되고 그 때 우주인이 침공해 모든 마을과 사람들을 초콜렛으로 만들어버리는 막장으로 흘러갔더니 자지러지게 웃으며 좋아하는 거라.
아 역시 애들은 이런 게 좋구나, 내가 졸려서 앞뒤 맞춰서 대충 끝내는 것보다 어이 없이 웃음 터지는 얘기를 좋아하는구나, 직시하지 않았던 꺠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태권도 파란띠가 되었고, 아직 목요일의 줄넘기 시간은 안 가겠다고 하지만 친구 초대 파티는 참석한다. 
티비 보며 춤추기도 좋아하고, 레고도 뚝딱뚝딱 마음껏 조립한다.
허구헌 날 뽀뽀하며 엄마와 친한 아들로 키워가려고 한다.
좀 더 크면 같이 자전거 타고 산에도 가고 새로운 것들을 보는 여행도 하고 싶다.

그리고 에어팟, 분홍색 애플워치, 코나.
친구들도 집에 초대하며.
즐기면서 살아야지.

by kisa | 2019/03/24 15:29 | I am | 트랙백 | 덧글(1)

[일기] 새해2

구정을 기해서 정말 오랜만에 업무가 business as usual로 돌아왔다... 
즉 물에 빠져 죽을 거 같은 만큼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빠뜨린 것들 확인하고, 미뤄둔 것들 꺼내보고, 새로 할 일들을 구상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신경 못 쓰던 것들을 들춰보다보면 다시 쌍욕이 나오긴 한다. X발 하는 일 드럽게 많네......
하긴 누가 한가하게 놀으라고 월급 주는 거 아니니까...

명절 연휴 잘 보내고 왔냐는 질문들엔 아래 일기의 내용으로 "집에 와서 새벽 2시까지 남편이랑 진지한 대화하며 눈물 흘렸어요"라고 답해주고.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최근 계속 못 자긴 했다.
원래 12시 전에 잘 못자던 나지만, 최근에는 체력이 떨어지면서 준이 재우고 같이 잠들며 간간이 긴잠을 '투여'하기도 했었는데.
남편 없이 혼자 침대를 차지하며 잘 자면 되는데, 좀처럼 '졸림'이 오지를 않아서 최근 1-2주는 심하게는 1-2시까지도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눈꺼풀이 감겨올 만큼 되지 않으면 잠에 들질 못했다. 그러고 아침엔 커피를 흡입하니 악순환.
그러던 게 이제는 아예 몸 속의 카페인 용량이 다 찼는지, 커피가 마시고는 싶은데 먹히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
아 몸의 순환이 엉망이 됐구나. 음식도 맛있지 않고, 커피도 못 먹겠고, 살은 찌고, 잠은 안 오고.
그래서 드디어 운동을 등록했다. 
결국 아파트 헬스를 등록할 것을 왜 이리 미뤄왔는지... 
토요일 오전에 헬스를 하고, 주 2회 정도는 회사에서 샌드위치 먹고 퇴근해서 8시 필라테스를 하고 9시에 귀가할 계획.
그간 운동을 안 한 핑계는, 아침잠은 포기할 수 없고, 점심밥도 포기할 수 없고, 저녁에 준이 보는 것도 포기할 수 없어서였는데.
그 중 세 번째를 포기가 아닌 투자로 보라고, 그래서 더 아이에게 quality time을 제공하는 게 낫다고 하는 10월의 설득과,
준이의 밤잠이 점점 늦어지는 경향과, 내 컨디션의 난조와, 써브웨이 샌드위치가 자꾸 아른거리는 현상까지 연쇄효과를 일으켜 결국 결심을 시키고 말았다.
뭔가 새해다운 일을 해버렸네.
근데 역시 그거 가볍게 운동했다고 기분 좋게 배도 고프고 몸이 순환하는 느낌이다.
플라시보 효과면 또 뭐 어떠랴. 

빠진 게 있다면 즐거움이다.
만화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책도, 만남도, 활동도, 콘마리 식으로 말하면 "설레는 느낌"이 있는 게 없다.
무언가에 즐겁게 열중하는 그 느낌. 소시적 내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 것. 
일상은 순간적 소비에 잠식당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하게 만든다.
여행도 가지만 쉬는 게 제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늘어나는.

다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쉬운 활동으로는 목록 쓰기. 
그렇게라도 시작해봐야지 :)

by kisa | 2019/02/10 14:42 | I am | 트랙백 | 덧글(0)

[이런생각] 명절의 비합리 불합리 부조리

단연코 이번 설 명절의 화두는 이 세상의 불합리함...
남자와 여자가 평소에 둘 다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는데 왜 명절 음식은 여자가 다 하는가?
왜 여자는 시댁에서 죄인마냥 뛰어다니며 일하고 남자는 방에 들어가 자고, 처가댁에서 남자는 손님 대접 받으며 받아먹기만 하는가?

결혼한 지 근 7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간 better the devil you know라고 익숙한 대구 풍경이라 '만일에 제사 안 지내는 집이면 좋았을 텐데' 정도로 받아들여 왔건만 이번 명절에는 특히나 열폭하게 되었으니 역시 세상의 진리는 expectation management 되시겠다.
지난 추석, 시아버지께서 삼촌들과 합세하여 시할머니께 명절을 간소화할 것을 허락받으셨기에, 이번에는 차례상도 4개 아니고 1개, 음식도 50인분 이렇게 안 하고 먹을 만큼만 하고 가족끼리 더 이야기 많이 나누고 하길 기대하고 내려갔던 것이다.
허나 설 전전날 대구에 내려가보니 으음...? 재료의 양이.......? 

어머니 재료가 전혀 줄지 않았는데요? - 적게 하면 싸갈 게 없단다
싸갈 필요 없이 적게 하자고 하지 않았나요? - 지난 주 제사 때도 다들 싸가더라
지난 주에 싸갔으니 이번에 같은 음식 더 싸갈 필요 있나요? - 냉장고에 너무 많아서 그렇다
많이 사셨으니까 냉장고에 많죠 덜 사셔야죠 - 있으니까 이럴 때 같이 먹자는 거 아니냐
아니 그렇게 힘들게 간소화 허락을 받으시고는... - 그래도 통닭은 한 마리만 시켰다
통닭은 10마리 시키셔도 상관없어요!!! 손이 가는 음식을 덜 해야죠 - 허허허...

결국 음식은 고스란히 같은 양으로 준비되었고(줄어든 건 통닭뿐) 심지어 차례상을 놓는 과정에서 시할머니 열폭하시고 떡국 8그릇을 따로 준비하여 위패와 수저와 함께 올렸다 내렸다 올렸다 내렸다 드시길 기다리는 시간 포함 총 20번의 절을 하며 평소의 4배로 절을 하고 4배로 오래 걸린 것이었다....(줄어든 건 바닥에 깐 상의 갯수뿐)
기대했던 만큼 심각하게 실망하며 분을 삭이려 애썼지만 그 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은 풍경에 다시 한 번 부조리에 몸을 떨게 되는 것이었다. 즉, 어머니는 부엌에서 쉬지 않으시며 먹을 걸 갖다 주시는데 아버님은 방 안에서 바둑 TV만 보지 손주들 노는 걸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아들들은 어슬렁어슬렁 누워 있다 오락하다 애랑 한두 마디 할 때 며느리들은 밥 차리고 입에 마지막 술 넘기지도 못한 채 싱크대로 뛰어가 설거지를 시작하는 풍경 말이다. 
도대체 왜??

내가 바라는 풍경은(연휴에 여행 가는 걸 미뤄두면)- 
친척들 모여 앉아 평소에 못 먹는 음식, 전 부치며 지내온 이야기 하고,
요리 못하는 사람들은 앉아서 만두를 빚든 송편을 빚든, 끝나고 설거지도 돕고 청소도 돕고,
차례상 하나 정갈하게 차려서 예를 표하고,
다 같이 앉아서 한 상에서 밥 먹고,
한쪽에서 설거지 하면 한쪽에서 과일도 좀 깎고,
그렇게 같이 먹고 같이 치우고 한 번에 마무리하는 그런 정도다.
대단한 개혁을 바라는 게 아니잖아?
쉽게 말하면 남자들 엉덩이 좀 떼고 손에 물 좀 묻히면 된다.
여자들 앉지도 못하고 손 팅팅 붓고 까지면서 일하는 동안 반쯤 누워서 과일 갖다달라 시키면서 놀지 말고.
일년에 하루이틀이라서 괜찮은 거 아니고, 며느리보다 시어머니가 더 고생하셔서 괜찮은 거 아니다.
애초에 이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다.
누군가가 싫어해서, 눈치 보느라고 그런 거라면 더더욱 옳지 않다.
억울해서가 다가 아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울화통이 터진다.
왜 남녀가 역할이 다르냐고! 아들들은 엄마 고생하는 거 아무렇지도 않냐고?!
음식을 많이 사서 많이 차리고 남겨서 버려지는 게 싫다고!!
대체 왜,
귀한 휴일에 다같이 모여서 바로 냉동실에 들어가 몇 달 묵혀서 어쩔 수 없이 맛 없이 꾸역꾸역 먹다가 버릴 음식을 하느라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냐?


그래서 올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소소한 반항이라곤,
맨날 싸가라 싸가라 하시던 제사음식을 단 하나도 싸오지 않은 것.

추석 때 20번 앉았다 일어섰다를 또 해야 하면,
그 다음 설에는 독감에 걸리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고 싶다.

by kisa | 2019/02/10 14:20 | I am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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